김상조 "재벌 다 고발하겠다"..개혁 칼날, 대기업 실무직원까지 겨냥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10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 약 50분에 걸쳐 ‘공정거래 법 집행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논의 결과를 브리핑하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한 기자가 “재벌 개혁이 너무 더디다”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답했다. 준비한 자료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공정위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고발권을 행사하고, 이제는 행위 주체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려 합니다. 재벌들, 법 위반 행위하면 다 고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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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공정위가 불법 행위를 적발해도 법인만 고발하거나 법인과 함께 기업 임원만 고발하는 것이 사실상의 관행이었다”면서 “지침을 개정해 앞으로는 의사 결정과 실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실무자도 원칙적으로 다 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행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 행위 고발 지침’은 법인(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공정거래법·표시광고법·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 등 법 위반 점수가 기준 점수를 넘으면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담합은 법 위반 행위 내용과 정도에 따라 2.5점,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정 위반 행위의 경우 2.7점 이상이면 반드시 고발해야 한다. 공정위 조사 거부·방해·기피, 시정 조치 및 금지 명령 불응,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 등도 고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반면 지침은 법인이 아닌 회사 대표자·대리인·사용인·종업원 등 자연인의 경우 이런 의무 고발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위반 행위 가담 정도 등을 주관적으로 판단해 고발 여부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법 위반 행위를 적발해도 공정위가 법인만 검찰에 고발하거나 책임자 격인 대표자·임원까지만 함께 고발하는 데 그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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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태 공정위 심판총괄담당관은 “지금까지는 권한 있는 사람을 주로 고발하고 지시를 받은 실무자는 면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함께 죄를 묻겠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실무자가 상부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실행하지 않게 돼 위법 행위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은 법을 어긴 개인에게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과할 수 있도록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 실무진은 재벌 총수 일가 등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따라도 별다른 법적 처벌 없이 사내 승진 등 되레 혜택을 입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 법 위반에 따른 ‘채찍’(비용)이 기업 오너가 제공하는 ‘당근’(편익)보다 강해지면 부당한 상부 지시를 거부하는 직원이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방향의 고발 지침 개정안이 다음달 중 위원회 전원회의를 통과해 이르면 12월 말부터 본격 시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요구 등도 지금까지 위원회가 가진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라며 “공정위가 우선 가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어느 법에서 어느 만큼 전속고발권을 폐지할지도 제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처벌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정위의 ‘법 집행 체계 개선 TF’에 참여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공정거래법 위반 시 형사 처벌을 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미국과 우리나라 정도로, 유럽 등 다른 대부분 국가는 손해 배상 등 민사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미국이 형사 처벌 조항을 둔 것도 1차 제재인 과징금 제도가 없기 때문인데, 우리는 지금도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미국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고 상당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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