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상조 "재벌 다 고발하겠다"..개혁 칼날, 대기업 실무직원까지 겨냥

박종오 2017. 11. 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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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10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실. 약 50분에 걸쳐 ‘공정거래 법 집행 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논의 결과를 브리핑하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한 기자가 “재벌 개혁이 너무 더디다”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답했다. 준비한 자료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공정위가 앞으로 적극적으로 고발권을 행사하고, 이제는 행위 주체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려 합니다. 재벌들, 법 위반 행위하면 다 고발할 겁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정부 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재벌 저격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5개월 만에 ‘개혁 본색(本色)’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일 삼성·현대차 등 5대 그룹 간담회에서 “기업의 자발적 개혁 의지에 의구심이 있다”며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 전수조사를 예고한 데 이어 이번엔 고발 확대라는 칼을 빼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공정위가 불법 행위를 적발해도 법인만 고발하거나 법인과 함께 기업 임원만 고발하는 것이 사실상의 관행이었다”면서 “지침을 개정해 앞으로는 의사 결정과 실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실무자도 원칙적으로 다 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행 ‘공정거래법 등의 위반 행위 고발 지침’은 법인(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공정거래법·표시광고법·가맹사업법·대규모유통업법 등 법 위반 점수가 기준 점수를 넘으면 의무적으로 고발토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담합은 법 위반 행위 내용과 정도에 따라 2.5점,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정 위반 행위의 경우 2.7점 이상이면 반드시 고발해야 한다. 공정위 조사 거부·방해·기피, 시정 조치 및 금지 명령 불응,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 등도 고발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반면 지침은 법인이 아닌 회사 대표자·대리인·사용인·종업원 등 자연인의 경우 이런 의무 고발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위반 행위 가담 정도 등을 주관적으로 판단해 고발 여부를 결정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법 위반 행위를 적발해도 공정위가 법인만 검찰에 고발하거나 책임자 격인 대표자·임원까지만 함께 고발하는 데 그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발 지침’ 중 법인의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법 위반 점수표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그러나 김 위원장은 앞으로 법인이 아닌 자연인도 구체적인 법 위반 점수표를 만들어 주관을 배제하고 고발을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발 대상도 기존 대표자·임원 등에서 담합 등 불법 행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챙기는 회사 종업원, 실무자까지로 대폭 확대한다.

김호태 공정위 심판총괄담당관은 “지금까지는 권한 있는 사람을 주로 고발하고 지시를 받은 실무자는 면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함께 죄를 묻겠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실무자가 상부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실행하지 않게 돼 위법 행위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은 법을 어긴 개인에게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과할 수 있도록 벌칙 규정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기업 실무진은 재벌 총수 일가 등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따라도 별다른 법적 처벌 없이 사내 승진 등 되레 혜택을 입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 법 위반에 따른 ‘채찍’(비용)이 기업 오너가 제공하는 ‘당근’(편익)보다 강해지면 부당한 상부 지시를 거부하는 직원이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방향의 고발 지침 개정안이 다음달 중 위원회 전원회의를 통과해 이르면 12월 말부터 본격 시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요구 등도 지금까지 위원회가 가진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라며 “공정위가 우선 가진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어느 법에서 어느 만큼 전속고발권을 폐지할지도 제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처벌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정위의 ‘법 집행 체계 개선 TF’에 참여하는 한 민간 전문가는 “공정거래법 위반 시 형사 처벌을 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미국과 우리나라 정도로, 유럽 등 다른 대부분 국가는 손해 배상 등 민사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미국이 형사 처벌 조항을 둔 것도 1차 제재인 과징금 제도가 없기 때문인데, 우리는 지금도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미국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고 상당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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