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47주기 "봉제산업, 노동환경 그대로..20년후 사라질것"

2017. 11.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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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바지 만들어온 봉제업체 '대운사' 허진욱 대표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근로자 평균 연령이 50대이고, 40대가 최저 연령층입니다. 이대로라면 한때 우리나라 주요 산업이었던 봉제산업은 20년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서울 신당동에서 봉제업체 '대운사'를 운영하는 허진욱 대표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1970년 11월 13일, 재단사였던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지 47년이 지났지만 봉제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대운사'가 있는 서울 중구 신당동과 건너편 아리랑 고개에는 1천200여개의 패턴·봉제·디자인·샘플 등을 하는 업체가 밀집해 있다.

한때 이 동네는 원단을 들고 나르는 오토바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상인들로 밤낮없이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봉제산업이 침체하면서 업체들이 모두 지하로, 동두천으로, 구리시로 밀려났고, 동네는 점차 쓸쓸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봉제업체 '대운사' 허진욱 대표가 봉제산업의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허 대표는 "이미 몇년 전부터 침체 기미가 보였는데 지난해부터 완전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매출이 반 토막이 났다"며 "세월호, 메르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타격이 바로 와 일을 하다 말다 한다"고 말했다.

봉제산업은 한때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주요 산업 중 하나였다.

현재도 메이저 브랜드들과 거래하는 업체들, 동대문 쇼핑몰 등에 납품하는 업체들, 유니폼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업체 등 다양한 업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뜻을 받들어 결성된 청계피복 노동조합이 1981년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후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단체를 다시 만들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 지원 등에 있어 늘 사각지대에 머물렀고, 노동환경도 전태일의 시대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해지고 일감의 질이 나빠지면서 근로자들은 어두컴컴한 지하실 먼지 속에서 주당 90시간을 일한다.

재킷 한 장에 9천500원, 바지 한 장에 2천700원을 받으니 허 대표처럼 43년을 일한 기술자도 1시간에 만원도 벌지 못한다.

허 대표는 "경기가 나빠지니 상인들이 더 싼 것을 찾으면서 공임이 갈수록 내려간다"며 "오래 일해도 매달 버는 돈은 300만∼350만원 정도고, 환경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유니폼 시장이 봉제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큰 업체들이 독점해 신당·회현 등지에는 한건도 들어오지 않는다"며 "조달청에 전문적으로 입찰만 하는 소위 '꾼'들이 물량을 다 가져가는데 이런 식으로 가다간 중소업체들은 다 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기존 봉제산업 종사자들의 연령층이 높아지는 가운데 젊은 인력의 유입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허 대표는 "패션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은 디자인만 배우고 대부분은 바느질조차 제대로 못 한다"며 "옷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내려면 보통 10년 가까이 걸리는 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이를 견딜만한 젊은이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허 대표는 "우리처럼 신사복 바지를 만드는 공장이 전국에 57개가 있는데 현재 제일 어린 근로자가 40대 초반이다"며 "한 업체당 6∼7명 잡고 쉬는 인력까지 따진다 해도 700명이 안될 텐데 10∼20년 안에 대부분 은퇴해 인력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우리나라 봉제산업은 일본 봉제산업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일본은 한때 봉제산업이 발전했었으나 1970∼1980년대 인건비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 등에 생산을 맡기고 생산시설을 대부분 접었다.

현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의복을 주로 생산한다.

허 대표는 "우리나라도 정부가 봉제산업을 사양산업으로 보고 1990년부터 지원을 줄였다"며 "설비 투자를 할 수 없어 일본이 1990년대 쓰던 기계를 쓰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신당동 의류·봉제산업 밀집 지역이 '2017 특화상권 활성화지구'로 지정되고 동대문의류봉제협동조합, 두올섬유봉제협동조합 등 각종 봉제산업 관련 단체들이 출범하고 있지만 이미 업체들은 지하로, 외곽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허 대표는 "공장들이 무너지지 않아야, 장인들이 계속해서 옷을 만들 수 있어야 명품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이제는 제2의 전태일이 나온다고 한들 누군가 관심가져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신당동 봉제업체 '대운사'에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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