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협곡열차' 타고 만추(晩秋)속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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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겨울에게 안방을 내주고 있다.
떠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은 지금 더 불타오르고 있다.
자연속에서 실제로 내가, 절로 느끼는 감동은 말로 다할수 없는 느낌이다.
깊은 산 속을 달리는 만큼 가을이 바로 손 앞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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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뉴시스】김정환 기자 = 가을이 겨울에게 안방을 내주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꽃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만산홍엽(滿山紅葉)도 저 멀리 채비를 서두르는 동장군의 기운을 느꼈는지 화들짝 놀란 모양새다.
떠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은 지금 더 불타오르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이번 주말 서둘러 올해 마지막 단풍 구경을 떠나야 할 이유다.
사진으로 보는 만추의 풍경은 감동이 없다. 자연속에서 실제로 내가, 절로 느끼는 감동은 말로 다할수 없는 느낌이다.
'백두대간 협곡열차(V-train)'를 타고 중부 내륙지역의 만추속으로 들어가봤다.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대호를 연상시키는 줄무늬로 치장한 기관차가 끄는 이 열차는 이름 그대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인 백두대간 협곡 사이를 힘차게 달린다.
철암역에서 승부역을 거쳐 양원을 지나 분천역에 이르는 27.7㎞ 구간이다.
깊은 산 속을 달리는 만큼 가을이 바로 손 앞에 잡힐 듯하다. 특히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듣는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구간에서는 시속 30㎞로 거북이 운행을 하며 풍광을 만끽하게 한다.
풍광은 '경치'와 같은 말인데 왠지 늦가을 백두대간을 달리는 열차 여행에 더욱 어울리는 듯하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바람(風)이 너무나 기분 좋고, 깎아지른 듯한 협곡과 열차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光)이 정말 행복감을 선사한다.
가을속을 달리는 열차는 승부역에 도착했다.
승부역은 1960년대 승부역에 근무하던 한 역무원이 남겼다는 "승부역은 / 하늘도 세평이요 / 꽃밭도 세평이나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글귀로 유명해진 간이역이다.
승부역은 당시보다 많이 발전했지만, 역 바로 앞에 마련된 간이 시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여전히 소박하고 순수했다. 역 주변 경치도 겨울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자아낸다.
다시 달려 도착한 곳은 양원역이다.
원래 이 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1955년 영암선(영주~철암)이 개통했을 때 이곳에는 기차가 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승부역으로 15리(약 5.9㎞)나 걸어가 열차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러다 숨진 주민이 10여 명에 달했다. 이에 주민들이 힘을 합쳐 작은 역사를 만든 뒤 열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해 1988년 국내 최초 민자역사인 양원역이 오픈하게 됐다.
오지 주민들의 애환과 함께 주민들의 이웃사랑 마음을 절로 느낄 수 있다.
다시 열차는 달려 분천역으로 향한다.
객차 안 좌석은 진행 방향으로 놓인 것도 있지만, 객차마다 좌우 창가 쪽을 바라보도록 놓인 것도 있다. 창문도 절반가량을 위아래로 열 수 있게 해놓아 가을바람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다.
산속을 달리다 보니 터널을 수시로 만난다. 누구나 미세먼지에 두려움을 느낄 만한 순간이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두려워 창문을 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터널 길이가 짧은 데다 이미 청정 가을 공기를 한껏 흡입한 덕에 터널 안 먼지 따위는 가소롭게 여기는 마음 때문인 듯하다.
만추속을 헤매다 도착한 역은 분천역.
매년 겨울 '산타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여름철에도 8월 한 달간 5만 명이나 찾을 정도로 내륙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산타 마을은 아직 운영하지 않지만,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등 조형물이 붉고 노란 산과 어우러진 모습과 가을빛을 머금은 채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작은 시냇물 소리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역 주변 맛집들에서 지역 명물인 능이버섯을 넣어 만든 음식을 즐긴 뒤 인근 '낙동강 세 평 하늘길'을 걸어보자. 돌아가는 기차를 놓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테니까.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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