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이 된 확률형 아이템] (1) 원하는 아이템 나올 때까지 반복 결제..득템 확률은 로또 수준

주영재 기자 2017. 11.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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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게임사 매출 신기록의 그늘

지난달 30일 인터넷방송 진행자 ㄱ씨는 함께 게임을 하는 친구(혈맹원)들의 돈을 모아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아이템 뽑기에 나섰다. 한 회 뽑기를 하려면 게임 속 화폐인 ‘다이아’ 1200개가 필요한데 ㄱ씨는 1500만원을 결제해 다이아 60만개를 구입했다. 그는 “새벽에는 원래 방송을 안 하는데 큰 의뢰가 들어와 방송을 하게 됐다”며 “데스나이트와 데몬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데스나이트와 데몬은 최고 등급인 ‘전설’ 등급의 마법인형 이름이다. 이들 마법인형을 소환하면 캐릭터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전설보다 한 단계 낮은 ‘영웅’ 등급의 인형들을 뽑을 확률은 0.0086~0.0176%이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의 영웅 등급 인형을 4개 모아야 전설 인형으로 합성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복불복이다. 1시간 넘게 숨가쁘게 뽑기를 했지만 바라던 전설 등급의 마법인형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곤혹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는 “1500만원을 증발하게 만들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방송을 종료했다.

모바일 게임의 사행성이 치솟고 있다. 게임업체들이 수백만원에 거래되는 아이템을 뽑기로 판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 아이템을 사는 것보다는 한번 구매할 때의 돈은 적게 들지만 ‘득템’ 확률을 낮춰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계속 ‘뽑기’를 하게 만드는 구조다.

확률형 아이템이 과소비를 유도하고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업계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6월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지난달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불거지며 “게임 농단”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모바일 게임의 경우 PC 기반 온라인 게임과 달리 한번에 수백만~수천만원을 확률형 아이템 뽑기에 사용해도 결제한도가 없다. 여기에 낮은 아이템 획득 확률과 청소년에 대한 보호장치 부재 등으로 여러 차례 규제가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된 데 따른 의혹 제기였다.

반면 확률형 아이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국내 게임업체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9일 공시된 엔씨소프트의 3분기 모바일 게임 매출은 551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88%나 성장했다. 6월에 출시된 리니지M의 효과다.

앞서 실적을 공개한 넷마블게임즈의 3분기 매출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을 파는 모바일 게임 ‘리니지2 레볼루션’의 비중은 45%에 달했다. “(게임 3사의) 매출액 대부분이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온다”(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는 분석도 있다.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려는 시도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단순히 확률이 낮다고 도박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랜덤 아이템’을 도박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북미(미국·캐나다)의 게임물 등급 분류 기관인 ‘ESRB’는 지난달 12일 ‘루트(loot) 박스’를 도박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루트 박스란 확률형 아이템을 말한다. 영국의 ‘도박위원회’도 지난 3월 루트 박스에서 얻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다는 조건하에서 도박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문을 냈다.

국내 법령과 판례를 보더라도 게임 아이템을 금전적인 보상으로 보지 않는 한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뽑기로 얻은 희귀템들이 온라인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현금으로 사고팔리는 점을 고려하면 뽑기에 의한 금전적 보상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리니지M을 포함, 주요 게임사들의 주력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 게임 내 화폐는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 강화나 획득으로 게임 내 화폐를 얻고 이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전문적인 ‘작업장’도 존재한다.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볼 것인가와는 별개로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라도 과도한 사행성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질적으로 아이템이 중개 사이트에서 현금으로 판매되고, 지속적으로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겠다는 게임업계의 자율규제를 보면 그것의 금전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며 “사행성에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획득 확률이 10% 이하인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분류하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얻은 게임 아이템을 거래 업체를 통해 재판매하거나 재매입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용자들도 지나치게 낮은 확률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6%인 940명이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부정적으로 봤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아이템의 현금 거래가 가능할 경우에는 당연히 도박성이 있다고 보고 이런 게임은 확실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확률형 아이템은 유저들에게서 더 많은 돈을 빼내기 위한 수단이 됐다”며 “특정 아이템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하는지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 장치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 일정 금액을 투입해 아이템을 얻을 때 우연적 요소(확률)에 의해 게임 이용자가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종류로는 캡슐이나 상자 등과 같은 아이템을 개봉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캡슐형 아이템’, 무기 혹은 방어구 등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챈트(강화) 아이템’이 있다. 랜덤 아이템, 랜덤 루트 아이템으로도 불린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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