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칼럼] 놀라운 트럼프
미국의 정치인(politician)에서
세계적 정치가(statesman) 됐다
미·중,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두 달째 김정은의 수상한 침묵을
대화 트기의 계기로 발전시키길
그러나 트럼프의 연설은 그런 기대를 거의 충족시켰고, 우려는 기우임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놀라울 만큼 한국의 발전상과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해가지고 왔다. 서울에 온 트럼프는 시도 때도 없이 충동적으로 지지자들에게 트윗으로 소통하고 자유주의(liberal) 언론을 가짜뉴스 생산자들이라고 공격하던 그 트럼프가 아니었다. 그는 정보기관의 분석가들이 제공했을 북한에 관한 사실을 근거로 북한의 실상을 손에 잡히듯 설명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한국인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동맹국 대통령의 설명으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트럼프 연설의 내용도 형식 못지않게 좋았다. 트럼프의 연설을 들으면서 윈스턴 처칠의 역사적인 ‘철의 장막’ 연설을 떠올린 것은 논리의 비약일까. 처칠은 1946년 3월 미주리주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평화의 힘(Sinews of Peace)’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발트해의 스테틴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유럽을 가로지르는 철의 장막이 쳐질 것이다.” 처칠의 불길한 예언은 적중했다. 전후의 유럽은 ‘철의 장막’에 의해 동·서유럽으로 분단되었던 것이다. 처칠의 예견력이 놀라웠다면 트럼프의 눈앞에 전개되는 안보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그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웃돌았다. 트럼프는 이번 한국 국회 연설로 처칠 수준에는 못 미쳐도 미국 제일주의를 부르짖는 미국의 무명 정치인(politician)에서 세계의 정치가(statesman)로 올라서는 잠재력을 과시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김정은의 이름을 한 번 거론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 사정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정보력을 과시했다. 트럼프는 살벌한 용어를 피하면서도 김정은이 단 한마디도 놓쳐서는 안 될, 힘의 뒷받침을 받는 대북 경고를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힘의 과시, 전략자산의 전개가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인해 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입장 표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한국의 동의 없이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안 된다고 밝힌 확고한 태도에 궤를 맞춘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간 낭비라고 눌러버린 바 있다. 그러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조차도 틸러슨의 평화적 해결 방식을 지지한다. 하원의 일부 의원은 대북 선제공격을 금지하는 법안 제정까지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도 대북 선제공격의 종말론적 결과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는 한국의 국회의사당에서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언어로 김정은에게 고강도의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비무장지대(DMZ)에 가기로 했던 것도 대북 경고에 무게를 싣기 위해서였다.
김정은은 9월 15일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이후 도발을 멈추고 몸을 낮추고 있다. 미·중,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달째 계속되는 김정은의 수상한 침묵을 대화 트기의 계기로 발전시키는 창의적인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트럼프와 시진핑은 9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무모한 길로 가는 것을 미·중이 함께 저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경고와 트럼프-시진핑 합의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트럼프도 귀국 후 다시 충동적인 트위터러(twitterer)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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