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물류 전문가 쿡에게 애플을 물려준 이유

2017. 11. 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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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km 오가는 상품·부품들
물류와 배송이 제조를 압도
온실가스와 함께 환경오염 주범

[한겨레]

배송추적
에드워드 흄스 지음, 김태훈 옮김/사회평론·1만6000원

만두를 주문하면 냉장고에 만두가 넣어져 있고, 화장품을 주문하면 화장대에 화장품이 놓여 있다. 책을 주문하면 책상에 펼쳐져 있고, 신발을 주문하면 신발장에 수납돼 있다. 월마트와 아마존이 실현을 앞둔 ‘인홈 배송’ 서비스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은 모든 상품의 ‘도어투도어’(door-to-door) 배송을 불러일으킨 지 십수년 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현관문에서 집안까지의 ‘라스트 마일리지’마저 장악하려고 사투 중이다.

이 모든 변화의 핵심에 물류가 있다. <배송추적>은 ‘이동하는 모든 것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충실하게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기까지, 우리가 피자 한 판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재료가 얼마만큼 거리를 이동하고 모여서 완성돼 내 손안에 들어오는지 계산기를 두드린다. 먼저 아이폰의 홈버튼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중국 후난성에서 인조 사파이어 크리스털은 긴 여정을 시작한다. 장쑤 지역, 대만의 가오슝을 거치며 보강·가공되고, 상하이 공장에서 일본 파나소닉 제품과 대만의 제조품과 만나 조립된 뒤 일본으로 보내졌다가 최종적으로 중국 정저우의 폭스콘에서 완성된다. 홈버튼 하나만 만드는 데도 여러 부품은 약 1만9300㎞에 걸친 여정을 거친다. 그러면 다른 모든 부품이 모여 아이폰이 완성되기까지 이동 거리는? 25만7500㎞다. 지구에서 달 사이 거리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지난 1월19일 새벽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직원들이 설을 앞두고 평소보다 늘어난 소포와 택배를 처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음료 캔은 열대지역의 붉은 흙인 보크사이트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이 흙에서 알루미늄이 가공되며, 알루미늄의 20%가 캔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은 연간 세계 생산량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940억개의 음료 캔을 만든다. 매초 2981개가 만들어지고, 미국인 1명당 연간 293캔의 맥주나 탄산음료, 주스를 마시는 셈이다. 보크사이트에서 채취돼 동네 슈퍼 진열대에 캔이 오르기까지 여정은 짧게는 60일이 걸리며, 수십만㎞를 거쳐야 한다.

커피 한 잔은 어떤가? 에티오피아의 한 마을에서 나온 생두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거쳐 지중해, 대서양, 파나마운하 등을 통과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동 거리는 최소 92만㎞다. 로스팅 공장, 물류센터, 식료품점이나 커피숍, 그리고 집까지의 이동거리는 포함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도미노 피자 한 판을 만들기 위해 파인애플은 타이와 필리핀에서 날아오고, 치즈, 양파, 버섯, 밀가루, 소금 등은 각각 미국 전역의 수백에서 수천㎞ 떨어진 곳에서 공급된다. 만약 로스앤젤레스 항만에서 파업이라도 일어나거나 주요 도로 하나가 막히기라도 한다면, 그날은 피자 대신 스파게티를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히 물류와 배송이 제조를 압도하는 시대다. 그것이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천재가 아닌 물류 전문가인 팀 쿡에게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물려준 이유이며, 물류가 새로운 제조업으로 불리는 이유이며, 국제 운송업체인 유피에스(UPS)의 책임자가 “자녀가 국제물류 학위를 받으면 밥을 굶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공항에서 화물 선적이 이뤄지고 있다. 바야흐로 물류가 제조를 압도하는 시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이런 물류혁명으로 인한 환경오염이다. 운송 산업의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은 발전 산업에 이어 2위를 기록한다. 미국에서 공급되는 총 에너지와 연료의 26%를 소비하고, 총 온실가스의 31%를 배출한다. 게다가 제조업 등 다른 부문들이 평균 1%씩 성장하고 있는 불황 시대에도 물류는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또 물류 성장은 많은 시민이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 2014년 기준 로스앤젤레스 주민은 막히는 도로에서 평균 80시간을 보내고, 뉴욕 주민은 74시간을 정체에 시달린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만5500명 이상으로 15분마다 1명씩 교통사고로 죽으며 39살 미만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하루 22시간은 그냥 주차장에 서 있는데, 이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연료비, 보유비, 운용비 등으로 한 달 평균 1049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자동차를 덜 타고 카풀이나 자전거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책의 결론은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하지만 전작 <102톤의 물음>에서 쓰레기 문제를 다뤄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저자가 이 많은 상품의 제조와 운송 과정을 어떻게 취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방대한 관련 수치와 자료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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