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의 변신..교과서·산업표준 다 고쳐야겠네

김윤진 2017. 11. 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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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부터 1kg 기준 삼아온 백금·이리듐 합금 39mm 원통형 '원기(原器)' 절대표준 붕괴
130년 세월탓 100㎍ 가벼워져..머리카락 한가닥 무게지만 초미세분야 오작동 초래 우려
새표준 물체 대신 '플랑크상수'

내년 130년만에 ㎏ 재정의

지난 130년간 변치 않았던 1㎏ 정의가 내년부터 바뀐다. 1889년부터 통용되던 국제 질량을 측정하는 표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전 세계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산업계 표준을 전부 손질해야 하는 '대공사'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지난달 한국을 포함한 국제도량형위원회 회원 18개국은 내년 11월 열리는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 '㎏ 재정의 안건'을 최종 의결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 정의가 실제로 적용되는 것은 2019년 5월 20일부터다. 국제 사회가 100년 넘게 사용해온 ㎏ 단위를 재정의하기로 한 것은 절대 기준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130년여 동안 전 세계는 1㎏을 정의할 때 물체 '원기(原器)'를 기준으로 삼았다. 내구성이 강한 백금 90%와 이리듐 10% 합금으로 제작한 높이와 지름이 각각 39㎜인 원통형 원기의 질량을 1㎏으로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1㎏의 기준이 된 원기는 1889년 제작된 후 프랑스 파리 근교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보관돼 있으며 세 겹의 유리막에 둘러싸인 채 철통 보호를 받았다. 그동안 세상의 빛을 본 것은 1946년, 1991년, 2014년 단 세 번뿐이었다. 이처럼 원본은 꽁꽁 숨겨두고 원기와 모양·무게가 똑같은 공식 복사본 6개를 기준으로 삼아 국가별로 자체 보유하고 있는 원기 복사본 질량을 5년마다 수정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제아무리 단단한 물체라 하더라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원기를 밀폐된 곳에 꽁꽁 숨겨놨지만 공기 중 떠다니는 이물질 때문에 미세하게 닳아 없어진 것인지 질량이 변해버렸다. 그 결과 2014년 원기를 꺼내 무게를 재보니 약 20년 전에 비해 35마이크로그램(㎍) 정도 가벼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제도량형국(BIPM)에 따르면 원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 비해 현재 원기 질량이 최대 80~100㎍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복사본끼리도 조금씩 질량 편차를 보이기 시작했다. 박승남 표준연 광학표준센터 박사는 "그동안 원기가 1㎏이라는 게 절대 진리였다면 이제는 원기도 측정 대상이자 1㎏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는 "100㎍이 줄었다는 것은 긴 머리 여성의 몸무게가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 더 가벼워졌다는 의미"라며 "너무 미세한 변화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무게 감소분이 10가닥, 100가닥이 되는 건 금방이고, 정확도가 높은 기계에서 낮은 기계로 표준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오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오·전자소자 등 미세·초미세 연구 분야에서는 이 같은 차이가 치명적인 오류와 오작동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단위 재정의가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새로 바뀌는 ㎏ 정의는 더 이상 물체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언젠가 변질될 수밖에 없는 물체인 원기 대신 영원 불변한 '기본상수'로 ㎏을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 4대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를 이용하기로 했다. 플랑크 상수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 단위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내는 값이다. 양자역학이 변하지 않는 한 질량의 기준도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플랑크 상수를 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전기장과 중력을 이용한다. 양팔 저울 한쪽에 질량이 있는 물체를 놓은 뒤 반대편에는 이와 평형을 이루도록 전기를 걸어준다. 중력과 전기장이 최대한 평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전기단위는 플랑크 상수로 표현되므로 중력을 전자기력과 비교하면 상수의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다. 박 박사는 "플랑크 상수 단위가 ㎏·㎡/s인 만큼 전기장을 걸어줬을 때의 시간과 움직이는 길이 등을 역으로 곱해주면 정확한 1㎏ 값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플랑크 상수는 불변의 값이지만 측정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되지 않아 측정 도구에 따라 조금씩 결과가 달라진다. 이에 따라 국가 간 일치된 값을 결정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지난달 16일 국제도량형위원회에서 플랑크 상수를 6.62607015×10-34으로 정의해 소수점 이하 8자리까지 확정했다.

내년 열리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질량 외에 전류, 온도, 물질량에 대한 정의도 같이 바뀐다. 플랑크 상수와 마찬가지로 불변의 물리상수가 기준이 된다.

■ <용어 설명>

▷플랑크상수(h) : 물질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기본 상수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 단위 에너지의 크기를 나타낸다. 이 상수를 도입한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따서 플랑크상수라고 부른다.

[대전 =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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