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비트코인은 가상화폐인가 암호화폐인가
초기 소수만 알 때 가상화폐로 불러
기존 가상화폐와는 본질 다르고
블록체인 감안해 암호화폐로 써야
‘의료 민영화’란 용어가 대표적이다. 현재 병원은 의사만 열 수 있고 거기서 번 돈을 회수하는 것도 금지돼있다. 이러다 보니 의료산업이 정체됐다. 병원에도 민간자본의 투자 길을 터줘 첨단화·고급화하고 이를 통해 해외 의료관광객을 유치하자는 게 의료 민영화의 골자다. 그런데 민영화란 용어가 발목을 잡았다. 민영화란 단어엔 ‘질은 높일지 몰라도 값은 올린다’는 뉘앙스가 짙게 배있다. 이걸 의료에 갖다 붙여놓으니 “맹장 수술 한 번 하는데 수천 만원 들게 될 것”이란 괴담을 낳았다. 그러나 한국은 사회주의에 가까운 의료보험제도를 가진 나라다. 의료보험을 폐지하지 않는 한 서민이 의료비 폭탄을 맞을 일은 없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가장 친숙한 이름은 디지털(전자)화폐다. 1990년대 전자상거래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온라인 상의 결제수단이 필요해졌다. 대표적인 게 98년 등장한 페이팰이다. 이후 종이돈이나 동전 혹은 금·은 같은 실물이 아닌 디지털 기반의 결제수단을 통틀어 디지털화폐로 부르게 됐다. 그러니 비트코인도 디지털화폐의 일종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새로운 디지털세상이 열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싸이월드·페이스북·트위터 같은 커뮤니티가 우후죽순 생겼다. 그러자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끼리 통용되는 결제수단도 등장했다. 싸이월드의 ‘도토리’가 대표적이다. 여기다 온라인게임이 SNS와 만나자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끼리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결제수단은 더욱 절실해졌다. 여기서 가상화폐란 용어가 등장했다. 2012년엔 유럽중앙은행(ECB)이 가상화폐의 정의를 내렸다. 이에 따르면 가상화폐란 ▶정부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디지털화폐의 일종으로 ▶개발자가 발행·관리하며 ▶특정한 가상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결제수단이다.
이후 미국 재무부나 유럽은행감독청도 가상화폐에 대한 정의를 업데이트했지만 골격은 ECB와 대동소이하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가상화폐란 발행 및 관리 주체가 따로 있고 가상의 공간에서만 통용되는 결제수단이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하자 이를 가상화폐로 부른 건 아마도 정부의 통제 밖에 있으면서 소수의 전문가끼리만 알던 디지털 기반의 화폐란 뜻에서였을 거다.
그러나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이전의 가상화폐와는 종이 다른 디지털화폐다. 우선 이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집권화된 주체가 없다. 참여자 모두가 공동관리자다. 신규 발행도 중앙은행이나 발행기관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니라 사전에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채굴될 뿐이다. 채굴할 수 있는 총량도 정해져 있다. 두 번째 결정적 차이는 가상 공간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통용된다는 거다. 이미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비트코인만으로 생활이 가능해졌다. 미국에선 2014년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가 처음 등장해 전국적으로 1574개나 깔렸다. 금융 거래에 주로 활용되는 비트코인과 달리 이더리움은 의료·통신 기록 관리는 물론 복권 발행, 심지어 투표에까지 활용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로 부르는 건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여지가 크다. 가상 공간에서만 통용되고 언제든 부도 수표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덧씌울 수 있다는 거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비트코인이 기존 가상화폐와 다른 세 번째 특성은 ‘블록체인’이란 암호학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나온 명칭이 암호화폐다. 이미 해외 언론과 커뮤니티에선 암호화폐를 주로 쓴다. 비트코인을 가상화폐로 부르는 건 스마트폰을 전화기라 여기는 것만큼 시대에 뒤떨어진다.
정경민 기획조정 2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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