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논두렁 시계' 관련 수사 요청 오면 언제든 귀국"

2017. 11. 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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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서 A4 용지 2장짜리 입장문 한국 언론에 보내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에 도덕적 타격 가하라' 요구
국정원 언행 어처구니가 없어 응하지 않아"

[한겨레]

2009년 7월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열린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퇴임식에서 자신의 약력을 듣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이끌었던 이인규(59)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7일 오랜 침묵을 깨고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는 국가정보원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당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고 보도한 <에스비에스>(SBS) 기자는 ‘검찰에서 들었다’고 했다”고 밝힌 내용과 배치된다.

이 전 부장은 검찰의 국정원 적폐수사가 본격화 된 뒤 자신의 미국행에 대해 ‘도피성 출국’이라는 의혹이 쏟아지자 이날 이를 반박하는 글을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보낸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라는 에이(A)4 용지 2장짜리 입장문에서 당시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수사 가이드라인 및 언론대응 지침을 전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의 입장문을 보면, 2009년 4월14일 국정원 전 직원 강아무개 국장 등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원장 뜻”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들의 언행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강 국장 등에게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다. 원장님께도 그리 전해달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강 국장 등이 놀라면서 “왜 이러시냐”고 물어와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며 질책했다는 게 이 전 부장 주장이다. 그는 강 국장 등이 “(우리가) 실수한 것 같다. (우리가) 오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황급히 돌아갔고, 자신은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고도 덧붙였다.

이 전 부장은 이후 강 국장 요구와 같은 내용의 방송 보도가 나오자 “나름 확인해본 결과 (보도의)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혔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경위는 앞서 국정원 개혁위가 밝힌 내용과 대략 일치한다. 국정원 개혁위도 “원 전 원장 측근이 이 전 부장을 만나 ‘고가 시계 수수는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을 주는 선에서 활용하라’는 지침을 줬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 전 부장 등 검찰이 국정원의 ‘언론플레이’ 요구를 받아들였는지 여부를 두고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해 5월13일 ‘논두렁 투기’ 내용을 보도한 <에스비에스> 기자는 국정원 개혁위에 “검찰에서 들었다”고 밝혔고, <에스비에스> 노사는 이 보도와 관련해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전 부장이 직접 나서지 않았더라도 검찰 내 또다른 누군가가 흘렸을 수 있고, 이 전 부장의 주장처럼 국정원이 직접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 전 부장은 자신의 도피성 출국 의혹도 정면으로 부인하며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 조사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받겠다”고 밝혔다. 아래는 이 전 부장 입장문 전문.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 세상을 달리하신 것은 진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일하던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으로 출국하여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잘못을 회피하기 위하여 해외로 도피하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은 없었으며 검사로서 소임을 다하였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하여 조사를 받겠습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 보도와 관련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 4. 14. 퇴근 무렵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저를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였습니다.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화가 난 제가 ‘원장님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습니다. 원장님께도 그리 전해 주십시오.’라고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이 크게 놀라면서 ‘왜 이러시냐?’고 하기에 제가 화를 내면서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강하게 질책하였습니다. 이에 강 국장 등 2명은 ‘자신들이 실수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하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으며 저는 이러한 사실을 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 후 2009. 4. 22. KBS에서 ‘시계수수 사실’ 보도, 같은 해 5. 13. SBS에서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국정원의 소행임을 의심하고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2015. 2. 23.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찰이 시계수수 사실을 흘려 망신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국정원의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사실을 언급하였는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노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보도와 관련하여 알고 있는 대략의 내용입니다.

이 인 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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