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의 법과 사회]서열주의 금권사회의 산물, 갑질문화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7. 11. 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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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 사회의 ‘갑질’은 대통령이 나서서 군과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갑질문화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갑질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우유회사의 횡포, 땅콩 회항 사건 등 몇해 전부터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대한민국 육군 대장과 그 부인이 갑질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군 검찰이 사령관의 공관병 가혹행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뇌물수수 및 부정청탁 혐의로 결국 4성 장군 구속이라는 불명예로 이어졌다.

병사를 사적으로 운용하는 행위는 사령관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고, 폭행이나 협박 등 가혹행위는 사령관이 아니라 그의 부인의 행위이고 사령관이 그의 부인에게 지시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강요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를 두고 갑질 논란의 희생양이라거나 마녀사냥의 피해자라고 사령관을 두둔하는 정치권의 입장도 있고, 군 검찰이 사령관의 직무범위를 제한적으로 보아 ‘제 식구 감싸기’식 면죄부 수사를 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어쨌든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령관 부인의 인권침해행위가 그동안의 갑질 파문의 정점을 찍을 정도로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지만 형사처벌 여부는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을관계는 원래 대등한 계약관계를 의미하지만 이제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갑질’은 국립국어원이 개통한 개방형 한국어 온라인사전 ‘우리말샘’에 등록될 정도로 우리 사회에 고착된 서열주의의 폐단을 드러내는 사회현상이다. “상대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상대를 호령하거나 자신의 방침에 따르게 하는 짓”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갑질문화의 원인은 근본적으로는 유교적 문화전통에 기인하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권위주의와 위계질서 같은 봉건적 신분제의 잔재가 사회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분과 연령, 성별뿐만 아니라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에 따라 사람 대접이 달라지는 사회, 지갑이 권력관계를 정하는 금권주의 탓에 더해지는 것이다.

갑질 행태는 차별이 고착화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그래서 보여주기식 일회성 단속과 수사, 처벌에 그쳐서는 해결될 수 없다. 지금 검찰이 프랜차이즈 기업 오너의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도 하고 있고 경찰도 갑질 횡포 근절을 위한 특별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갑질 범죄와의 전쟁이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인의 일탈적 행위에 대한 응징에 그쳐서는 안된다. 국가형벌권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행사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법에 대한 신뢰가 쌓여 규범의식이 학습되고 법 준수의식이 생기고 범죄예방의 효과가 발생한다. 처벌법을 제·개정하거나 형사처벌에 의존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국회에는 군인, 국회의원, 임대인, 보험사, 프랜차이즈 본사 등 여러 갑질 주체의 갑질행위를 금지하는 소위 ‘갑질금지법안’이 여러 건 제출되어 있다. 채용과정에서 구직자에게 불합리한 행위를 금지하는 일명 ‘채용 갑질 금지법’도 발의됐다. 과잉형사범죄화와 과잉입법이 우려될 정도다.

그러나 형벌을 가하는 형사정책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형사처벌 이외의 법제도적 대책이 함께 시행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수사기관 등 관련 국가기관의 예방과 감시가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혹은 본점과 대리점 간의 비대칭적 갑을관계를 감시하고 시정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권의식과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기업은 인권경영이 규제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의 작업장이나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갑질로 인한 인권침해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고 전파되면 기업과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의 신뢰와 이미지에 회복할 수 없는 훼손이 야기된다. 과거에는 갑을 견제할 수 있는 힘과 장치가 없었다면 지금은 SNS나 시민단체 등의 감시와 사회이슈화가 가능해서 갑질을 견제하는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인권경영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갑질이 주로 기업과 그 임원에 의해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기업과 인권’을 인권 이슈로 삼고 있다. 불법과 탈법을 사회에 드러내는 공익제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익제보자의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비대칭적 계약관계를 보완하고 경영진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에 힘이 생겨야 한다. 누구에게나 노조할 권리가 인정되고 노조하기 좋은 세상이 되면 갑질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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