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1년' 변화는 시작됐지만..세월호는 밝혀진 게 없다

2017. 11. 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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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현장에서 본 촛불 1년
2014년 4월 이후 안산 세월호 가족 취재해온 김기성 기자
청와대 가는 길 열렸지만..박근혜 적폐 세력은 건재
피해가족 "지난 1년은 바꾸기 위한 과정 이제 바꿔야
사회적 참사 특별법 만들고 2기 특조위 출범시켜야"

[한겨레]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의미하는 304개의 구명조끼가 놓여 있고 그 아래 희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서 꽃다운 아이들이 고통스럽게 가라앉았던 그날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바뀐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유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우리가 못하면 그다음 세대에라도 반드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국민이 참사로 내몰리지 않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900일이 되던 지난해 10월1일 서울 광화문 광장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절규했다. 이날은 박근혜 정부가 650만명의 국민 서명으로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진상규명 활동을 강제 종료시킨 이튿날이었다. 이때 나는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2014년 4월16일 ‘여객선 침몰 중’이란 속보를 듣고 달려간 경기도 안산 단원고 4층 강당에서 아무나 붙들고 “내 새끼 좀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하는 엄마 아빠를 처음 만났다. 이후 세월호 가족 취재를 맡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갇혀 ‘엄마 사랑해~ 아빠 살려줘!’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시커먼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생중계된 그날 이후 엄마 아빠는 3년 넘게 애원했다. “왜 내 자식이 그처럼 억울하고 처참하게 죽어갔는지를 밝혀달라”고.

꽃 같은 아이들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까지 꼬박 이틀을 걸었고, 오열하다 분해 땅을 치며 기절도 했다. 눈물조차 말라버린 엄마 아빠는 밥을 먹는 것조차 죄를 짓는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어느 아빠는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46일이나 단식을 해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박근혜의 청와대는 ‘금단의 구역’이었다. 찜통 같은 여름날에도, 칼바람 부는 겨울날에도 청와대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았다. 금쪽같은 자식들을 어둠의 바다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건네받았던 엄마 아빠들은 경찰의 체포와 연행에 시달려야 했다.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특조위 종료 한달 뒤, 1천만명이 넘는 국민은 박근혜 정권이 뿌린 ‘은폐와 거짓’의 찬물을 걷어내고 촛불을 붙였다. 드디어 엄마 아빠의 염원인 선체 인양이 이뤄졌다. 참사 1091일 만에 어두운 바다에서 자식들의 영혼이 올라왔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이끌며 세월호 영정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흘렸던 자는 ‘503’이라는 수인 번호를 달고 국민 앞에 섰다. ‘진실을 감추려 했던 자들’은 감옥에서 법의 준엄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황교안, 우병우, 유기준….’ 지난달 17일 피해가족 관련 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조사 방해세력’으로 규정한 34명 명단을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부터 세월호 인양을 지연시키고 진실을 덮으려 한 자들의 이름과 주요 행위도 적시됐다. 명단은 △청와대 △해양수산부 △해수부 파견 특조위 공무원 △해경 △특조위 위원 △국무총리 △국정원 등 6개 항목으로 분류됐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 14명도 이름을 올렸다. 이 중 가장 많은 방해세력이 있던 곳은 역시 청와대였다.

이처럼 변화는 시작됐지만, 참사 책임자들, 은폐 부역자들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도 심판받지도 않았다. 피해가족들은 강제 해산된 특조위의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가고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 법안은 제2기 특조위를 꾸려 이전 특조위의 한계를 극복할 수사권과 특별검사요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뼈대다. 지난해 국회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법정처리시한(11월20일)이 10여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에 의해 처리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다시 촛불을 든다.

엄마 아빠는 또 한 번 말한다. “죽음의 바다로 끌려가는 새끼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구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를 바꾸지 않고서는 참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단숨에 깨닫게 됐다”고….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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