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환피아의 묵인이 만든 낙동강 상류의 '중금속 마을', 경북 석포제련소 가보니

송윤경 기자 2017. 11. 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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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북 봉화의 석포면에 위치한 영풍의 석포제련소의 제1공장. 이 공장의 배출가스로 인해 뒷산의 나무는 대부분 고사한 상태다. 송윤경 기자kyung@kyunghyang.com

계곡 위에 떨어지는 붉은 잎이 햇볕에 반짝였다. 계곡물은 맑아 강바닥이 그대로 들여다 보였다. 가을 풍경에 눈길을 빼앗긴 사이, 운전대를 잡은 영풍석포제련소대책위원회의 신기선 공동위원장(64)이 “자, 여기부터예요”라고 알렸다. 단풍 든 숲은 온데간데 없이, 순간 수백개의 파이프라인으로 뒤덮인 거대한 공장이 눈 앞을 꽉 채웠다.

3일 찾은 경북 봉화의 석포제련소 제1공장에선 흰 연기가 십여군데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향하는 뒷산 대부분엔 흙만 남았다. 몇그루 버티고 선 나무는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울긋불긋한 가을산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연을 뽑아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는데 그 과정에서 아황산가스가 나온다고 해요. 그게 저 연기죠”(신 위원장). 그는 그나마 낯선 사람들이 오가는 낮엔 연기가 덜한 편이라고 했다. 새벽녘이면 이 지역은 아황산가스로 자욱하게 뒤덮인다.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의 제1공장의 뒷산 모습. 환경단체들은 석포제련소에서 뿜어져나오는 아황산가스로 인해 공장에 인접한 지역의 나무가 대거 고사했다고 지적한다. 송윤경 기자kyung@kyunghyang.com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는 국내 최대의 아연제련소다. 영풍문고로 유명한 영풍그룹의 모기업 영풍이 운영하고 있다. 석포제련소로 인한 오염은 상상을 초월한다. 광석을 수입해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황·질소산화물이 대기는 물론 토양에 스며들고 있다. 폐수처리시설에는 비소,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방류돼 하천에 유입되고 있다. 이곳을 흐르는 하천은 안동호(안동댐)를 거쳐 낙동강으로 흐른다. 안동호 퇴적물의 카드뮴(Cd) 등급은 전국에서 유일한 ‘매우 나쁨’이다. 1300만 영남인들의 식수를 제공하는 낙동강 상류가 중금속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석포면의 한 농부가 키운 대파는 카드뮴이 기준치를 초과해 가락농수산시장에서 되돌려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석포면에선 아직도 작물재배를 한다. “글쎄요…. 누군가 사먹고 있겠지요” 신 위원장이 말했다. 그 역시 석포면과 조금 떨어진 봉화면에서 고추농사를 짓는다. 그의 밭도 언제까지 ‘안전지대’일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 4월 환경부 조사에선 제련소로부터 반경 4㎞ 떨어진 토양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비소, 아연, 카드뮴, 납이 검출됐다. 토양이 병들었는데 주민들이 건강할 리 없다. 환경부가 올해 석포면 주민 771명을 조사한 결과 소변·혈액의 카드늄·납 농도는 한국인 평균의 2~3배에 이르렀다.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석포제련소 공장 지하에 쌓인 오염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실제 제1공장 하천 곳곳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대책위 관계자는 “그나마 최근 국감에서 이슈가 되자 제련소 측에서 오염 흔적을 씻어내, 오늘은 드문드문 보이는 것” 이라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kyung@kyungyang.com

이곳의 환경파괴는 일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에 국내 최대 아연광인 경북 봉화의 연화산에 미쓰비시가 제련소를 만들었다. 아연을 뽑아내고 남은 광물 찌꺼기는 계곡을 메워 해결했다고 한다. 이 찌거기엔 납, 비소가 포함돼 있다. 해방 이후 영풍 측이 광산을 불하받아 연화광업소를 세웠다.

“광업소 하청업자인 ‘덕대’들이 돈을 마대자루로 이고 다녔어요. 이런 산골에 색싯집도 많았다니까요.” 봉화의 명호면에서 나고 자란 신 위원장은 지금도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하다. 낙동강 상류에서 멱을 감던 시절, 가끔씩 어른들은 ‘사이나(농약) 물 내려온다’며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일제가 묻은 광물 찌꺼기가 빗물에 쓸려 내려오면 물고기 수백마리가 배를 까뒤집고 죽어나갔다.

왼쪽은 석포제련소 바깥에 있는 숲, 오른쪽은 석포제련소의 배출가스에 노출된 숲이다. 같은 지역의 숲인데도, 왼쪽 사진의 숲은 울창한 반면 오른쪽 사진의 숲은 황폐하다.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1970년 영풍은 연화광업소를 팔고 부근에 석포제련소를 지었다. ‘이타이이타이’ 병 때문에 1960년대 일본에서 쫓겨난 동방아연의 시설을 끌어와 지은 제련소다. 신 위원장은 “연화광업소가 처리하지 못한 광물찌꺼기가 이 제련소의 지하에 파묻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석포제련소에서 1990년대까지 약 20년간 근무했던 박승원씨가 같은 증언을 했다. “폐기물을 공장 부지에다가 묻었느냐”는 이상돈 의원(국민의당)의 질문에 박씨는 “많이 묻었다”고 답했다. “공장의 대형 야외저류조에 무엇을 버렸느냐, 무엇을 봤느냐”는 질문에는 “아연을 채취하고 남은 폐기물을 수만톤 (저류조에) 뒤집었다”라고 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상류에서 중금속을 배출해 왔는데도 환경당국은 확실한 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녹색연합 배보람 활동가는 “관할 환경청인 대구지방환경청은 굴뚝원격감시체계(TMS)부착 문제 등 근본적이지 않은 시정명령만 몇차례 했을 뿐”이라면서 “봉화군 측이 영풍 측에 2년 전에 명령한 오염정화조치를 사측이 차일피일 미루는 문제 등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 환경당국은 40년 넘게 지속돼 온 석포제련소 오염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올해 국정감사에서 그 배경을 추측케 하는 자료가 공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9일 영풍그룹이 전직 환경관료를 대거 고용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석포제련소를 관할하는 대구지방환경청장을 지낸 소준섭씨는 최근까지 영풍의 부사장이었다. 영풍그룹 계열 고려아연의 주봉현 사외이사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장이었고 이규용 전 환경부 장관도 5년간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다. 재계 26위 기업인 영풍그룹은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율이 30대 기업 평균인 43%의 두 배에 이르는 80%에 달한다.

대구지방환경청의 홈페이지. 전 대구지방환경청장은 최근까지 영풍의 부사장으로 일했다. 영풍의 석포제련소를 관할하는 대구지방환경청은 ‘영풍 봐주기 의혹’에 휩싸여 있다. | 대구지방환경청 홈페이지 캡처

민·관유착 의혹은 이뿐이 아니다. 석포제련소 측은 제1·2 공장에 이어 2014년 아연슬러지(침전물) 재처리용으로 제3공장을 지었다. 원래는 연간 8t 이하의 오염물질을 내놓는 소규모 4종 사업장으로 허가를 받았는데 연간 80t 이상 배출하는 대규모 1종 사업장으로 지었다. 석포제련소 측은 ‘지었으니 인정해달라’며 버텼고, 결국 지자체는 벌금을 부과하는 대신 승인을 해주고 말았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제3공장이 애초 허가된 규모와 다르게 건설되는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이를 ‘묵인’했다.

당시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신 위원장) 봉화군의 주민들이 모여 영풍석포제련소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신 위원장은 “제3공장 건설 컨설팅을 해 준 모 엔지니어링 업체와 사측이 계약한 오염정화 관련 업체에 전직 고위 환경관료들이 포진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엔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까도까도 계속 나온다”면서 “영풍보다 영풍과 손잡은 전직 고위 환경관료들 눈치는 보는 공무원들에 더 화가 난다”고 했다.

영풍은 국회 안팎에서 ‘로비의 귀재’로 통한다. 최근 영풍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의원의 지인을 고용해 위원장에게 접근케 했다. 홍 위원장은 19일 지역환경청 국정감사에서 이 사실까지 폭로하기도 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석포제련소 오염문제가 처음으로 이슈화되자 대구지방환경청은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하기는 했다. 환경공단 측에 용역을 맡겨 진행된 1년간의 조사 결과 석포제련소의 토양오염기여율이 10%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오히려 석포제련소 측은 ‘10%’라는 수치를 방어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 의원(정의당)과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환경안전건강연구소는 지난달 이 보고서가 “앞뒤가 맞지 않는 부실투성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를테면 이 보고서엔 석포제련소의 산림 훼손지 토양에서는 2012년 구미 불산사고 때의 농도(194~640㎎/㎏)에 이르는 불소가 검출됐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면서도 제련소 굴뚝에서 검출된 불소 농도는 미미했고, 대기에서는 아예 불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환경단체들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결국 환경부는 석포제련소의 환경영향을 전면적으로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3일 대구지방환경청장을 공동대표로 하는 민·관대책위를 이 지역에 구성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책위 측과 녹색연합은 “중앙정부차원의 ‘민관 석포제련소 환경협의체’로 재구성되어야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제까지 영풍 석포제련소에 제대로 된 제재를 가하지 않은 곳이 대구지방환경청이기 때문이다.

석포제련소의 중금속 배출은 심각하지만 대다수가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는 석포면의 주민들은 공장이 문을 닫을 경우 생계수단을 잃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석포면에 붙은 플래카드엔 오염문제를 제기하는 환경단체를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송윤경기자 kyung@kyunghyang.com

석포제련소를 돌아나오는 길목엔 여러 개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적박한 것은 없다” “외부단체 세력은 왜 석포주민의 생존권을 파괴하려 하는가”.

석포제련소에는 정직원과 하청업체 직원까지 1000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석포면 주민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중금속 오염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계수단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영풍그룹의) 회장이 ‘그럼 공장 문닫지 뭐’라고 했다고…. 지금 내 꼴이 어떤지 아는가. 술독에 빠져있다고.”

신 위원장을 마주친 석포면의 한 주민이 그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오염정화를 요구하는 대책위를 도왔다가 석포 주민들로부터 “반역자”로 몰리다시피 했다는 ㄱ씨였다.

신 위원장은 “영풍이 자꾸만 생계문제를 건드려서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공장을 뜯어내 오염을 정화하면서, 고용유지 대책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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