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규제 풀어달라" 아우성, 해외는 강화 추세

송진식 기자 2017. 11. 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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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이 11월 1일 개최한 ‘4차 산업혁명,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봉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유인호 인터넷전문가협회 사무총장,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 이동열 리서치앤리서치 팀장,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공

“규제를 좀 풀어달라.”

11월 1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개최한 ‘4차 산업혁명, 문재인 정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추구하는 혁신·창업국가가 되기 위해 이번만큼은 각종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봇물을 이뤘다. 토론회에 맞춰 협회 측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정부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규제 해소가 나왔다.

규제완화 요구 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으로 빅데이터 관련 규제가 꼽힌다. Analyses Mason의 2014년 조사를 보면 대한민국은 데이터의 수집, 보관, 거래 등에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규제가 높은 국가로 지목됐다.

빅데이터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21세기의 원유’라고 부를 만큼 모든 혁신기술산업의 기반이 되는 자원이다. 국내에 인공지능(AI) 쇼크를 일으킨 구글의 ‘알파고’도 빅데이터가 있기에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알파고는 수많은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빠른 속도로 학습했고, 학습 결과 승리할 확률이 높은 자신만의 ‘기풍’을 만들어냈다.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로 불리는 AI 분야의 경우 특히 빅데이터 없이는 기술이나 서비스 개발이 불가능할 정도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올 4월 실시한 ‘국내 지능정보산업 실태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35개 AI 관련 기업의 68.4%가 핵심 연관기술로 빅데이터를 꼽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민간위원이기도 한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인공지능이든 클라우드든 뭐든 혁신기술의 핵심 연료는 데이터”라며 “IT 업계의 트렌드가 데이터 중심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업계 “빅데이터 규제부터 풀어야”
업계의 수요도 높고 가능성도 많지만 대한민국은 빅데이터를 가장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빅데이터 전문가인 톰 데이븐포트 미국 밥슨칼리지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강연에서 “한국은 빅데이터의 ‘금광’인데 제대로 캐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일찌감치 도입한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생성된 방대한 공공데이터 축적 등의 빅데이터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서는 개인정보 관련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요구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시작해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의료법’ 등 각종 개별법으로 빅데이터 사용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창업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규제가 일원화되지 못하다보니 중복 규제되는 경우도 있고, 한 개별법에서는 규제를 벗어나도 다른 법에서 규제에 걸리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 보험사에 진료 관련 빅데이터를 제공해 물의를 일으킨 의료·바이오산업 업계만 해도 평소 빅데이터 활용 관련 개인정보 보호 규제완화 요구가 빗발쳐온 분야다. 유전자 진단 분야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국내 유전자 진단 분야의 경우 의료부문 빅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지만 정부 공청회나 세미나를 가봐도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빅데이터를 풀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규제 탓에 국내에선 사업을 못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진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민간위원에 보건산업의료 위원이 빠진 것을 놓고도 “특위라도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기득권으로 자리잡은 기존 업체들이 빅데이터 활성화의 걸림돌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민간 창업기관 관계자는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경우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기존 대기업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다”며 “개인정보 보호 문제보다는 관련 업종의 일자리 감소 등을 우려하는 해당 분야 시민사회단체의 무조건적인 반대도 문제”라고 말했다.

■선진국은 ‘개인정보 보호 강화’ 추세
개인정보 침해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공데이터의 경우 양은 많지만 질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2013년부터 공공데이터 활성화를 목표로 두고 관련 규정을 정비해 공공데이터 포털과 정부 부처 등을 통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해 오고 있다. 2017년 OECD의 정부 백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공공데이터 개방지수는 0.94점으로 회원국 평균(0.55)을 크게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생성한 공공데이터도 2013년 5000개에서 2016년 2만2000개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 개방 중인 공공데이터의 질적인 측면은 낮게 평가받고 있다. 스타트업코리아는 7월 발표된 보고서에서 “정부 공공데이터의 경우 데이터 제공 기관마다 상이한 포맷 또는 기계 판독이 불가능한 폐쇄형 포맷을 이용하거나, 응용 프로그램이 언어 형태로 제공되지 않는 데이터가 많다”며 “제공된 데이터를 원활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데이터의 형식, 접근성 측면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업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빅데이터 관련 규제를 풀 수는 없다는 게 정부의 딜레마다. 창업 활성화가 경제목표이기는 해도 규제를 완화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규제가 제일 심하다”는 업계의 불만과는 달리 전 세계적으로도 개인정보 보호 조항은 강화되는 추세다. 2010년 이후 빅데이터 활성화와 진흥에 무게를 뒀던 미국 정부도 최근에는 규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14년 발간한 ‘빅데이터 법제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빅데이터 정보환경의 역기능 중 특히 개인정보에 주목하고 그 침해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규제정책을 수립하고 법제화하려는 동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경우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높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실시 중이지만 규제 때문에 빅데이터 활성화에 문제가 됐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며 “전통적으로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해 온 유럽연합 내에서도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정부는 2014년부터 ‘빅데이터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빅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 간 ‘균형잡기’에 나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인 탓에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지속되자 정부는 추가로 빅데이터의 개인정보 비식별화 조치 등을 명시한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추가로 공개했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은 “비식별화 조치가 충분하게 마련됐는지 의문”이라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빅데이터와 개인정보 보호 전반을 포괄하는 새로운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하지만 빅데이터 진흥과 규제를 놓고 워낙 입장차가 큰 탓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5월 빅데이터 진흥에보다 무게를 둔 ‘빅데이터 이용 및 산업진흥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같은 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법안 공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측이 “법안 자체가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지성우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향후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단기적으로는 국회 상임위에 전문위원이나 조사위원을 확충해 입법안의 질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헌법 조문의 명시적인 개정도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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