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막판에 보완조치 항목 넣은 공론화위 왜?

강광우 기자 2017. 11. 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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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재개 측 강력한 반발 묵살하고 보완조치 넣어
1~3차 조사 결과 아는 공론화위의 '의도적 설문' 주장도
보완조치 항목도 초안과 달리 '신고리' 아닌 '원전 정책' 물어
공론화위 "사회적 수용성 높이기 위한 조치" 반박

[서울경제] 지난달 20일 공론화위원회는 공사가 일시 중단됐던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를 정부에 권고했다. 국민대표로 선정된 시민참여단 471명의 최종 4차 공론조사 결과 ‘건설재개(59.5%)’ 의견이 ‘중단(40.5%)’ 의견보다 더 많이 나온 것을 따른 것이다. 예상 밖 큰 차이였다.

공론화위는 ‘건설재개’ 권고와 동시에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을 하라는 권고도 덧붙였다. 이 권고는 4차 공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방향을 물었던 ‘2번 문항’과 건설 재개시 필요한 조치를 묻는 ‘10번 문항’에 근거했다.

이러한 권고에 대해 공론화위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묘수’를 뒀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원전 전문가들과 원전 업계는 신고리 5·6호기 이외에 탈원전 정책까지 관여한 것이 ‘월권’이라며 반발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를 기반으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조사 결과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2번 문항은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시민참여단은 원자력 발전 △축소 △현상 유지 △확대 △잘 모르겠다 중 하나를 택했고 원전 축소가 53.2%로 가장 많았다. 유지는 35.5% 확대는 9.7%였다. 공론화위를 이를 근거로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정책 결정을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학계의 한 에너지 전문가는 “’탈원전’이 아니라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건 가볍게 동그라미 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국민들의 의견이 ‘탈원전’이라고 해석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공론화위는 건설 재개 측의 강력한 반발을 묵살하고 막판 4차 공론조사에서 건설 중단·재개시 보완조치를 묻는 질문을 포함시키도 했다. 4차 공론조사에서 9번(원전 중단시)과 10번 질문(원전 재개시)으로 공론화위가 ‘탈원전 정책은 유지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작성하면서 핵심적인 근거로 활용한 항목이다. 이 안건은 지난달 13일과 14일 열린 종합토론회 직전 건설재개·중단 측과 만난 6차 소통협의회에서 공론화위가 처음 제시했다.

이 안건을 접한 건설 재개측은 “질문의 요지를 흐리게 할 수 있다”며 보완조치를 묻는 질문을 추가하는 것에 강력히 반발했다. 소통협의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소통협의회에서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협의를 거쳐서 공론화위가 결정을 내렸는데 유독 보완조치를 추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건설재개 측이 완강히 반대했지만 공론화위가 설문에 포함시켰다”며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에만 국한하기 때문에 여기서 어떤 것도 설문에 넣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력히 얘기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론화위의 결정에 대해 ‘의도된 설문’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4차 조사를 하기 전 1~3차 조사 결과가 ‘건설 재개’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공론화위밖에 없었다”며 “이 때문에 ‘건설 재개’ 결과가 나오더라도 ‘탈원전’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보완조치를 집어넣었다는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신고리 5·6호기 최종 4차 공론조사 설문에서 보완조치를 묻는 질문. 자료: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홈페이지

또 10번 질문에서 제시한 보완조치 항목도 초안에서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것만 묻고 있었지만 최종본에서는 원전 정책을 묻는 식으로 바뀐 정황도 포착됐다. 10번 질문 선택지의 ‘원전의 안전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항목의 초안 선택지는 ‘신고리 5·6호기의 안전성을 더 강화하여야 한다’였다. ‘신고리5·6호기’가 ‘원전’으로 바뀌었고 ‘안전성’이 ‘안전기준’으로 바뀌었다.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가 아닌 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으로 바꾼 것은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사안을 논하라는 총리 훈령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이 포괄적인 의미의 ‘안전성’이 아니라 보다 정책적으로 구체성을 갖는 ‘안전기준’을 강화하라고 선택한 것 역시 미세하지만 정부 정책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건설 중단시 필요한 조치를 묻는 9번 질문에서는 ‘전력 수급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부가 민감해 하는 항목이 아예 빠졌다.

지난달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김지형 위원장이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공론화위는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반박한다. 공론화위 대변인을 맡았던 이희진 한국갈등해결센터 사무총장은 “소통협의회에서 합의를 해서 결정하는 게 가장 큰 원칙이긴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위원회가 입장을 결정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며 “보완조치를 물은 것은 갈등관리 관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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