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흥진호 선원 A씨 "북한 어선 만나 욕하고 다퉈 그들이 신고한듯"

신진호 2017. 11. 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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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중앙일보와 인터뷰 "가족들에 피해갈까 마스크 쓴 것" 강조
10월 16일 울릉 저도 출항.. 선장, 조업량 저조하자 뱃머리 돌려
18일 북한 어선 만나 욕설하며 다툼.. 어선이 경비정에 신고한듯
원산 도착 후 감금상태서 개별 조사.. 반복적으로 진술서 작성해
北 고위직 "풀어준다" 선원에 통보, 해경 만나서야 "살았다" 안도
“북한 억류 기간 내내, 돌아오면서도 혹시나 살아남지 못할까 걱정했죠. 돌아오고 나니 우리를 공작원·간첩이라고 매도하는 기사를 봤습니다. 억울하죠. 선원들은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일 뿐입니다.”
지난달 28일 경북 울진 후포항에 도착한 391흥진호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버스에 타고 있다. 391흥진호는 지난달 21일 동해상 북측 수역을 넘어가 북한 당국에 나포됐다가 27일 풀려났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동해에서 조업 중 북측 수역을 넘어가 북한 당국에 나포됐다가 엿새 만인 27일 풀려난 391흥진호 선원 A씨가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맨 처음 꺼낸 말이다. A씨는 “(10월)30~31일 이틀간 포항해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A씨는 이번이 첫 승선이었다.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돈을 벌기 위해 391흥진호 선원으로 취업했다.

A씨는 지난달 28일 울진 후포항 도착 후 배에서 내릴 때 마스크를 쓴 이유에 대해 “얼굴이 알려지면 가족들이 시달리고 피해를 볼 것 같아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들이 공작원, 간첩으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걱정한 차원이었다. 선원들은 배에서 내린 뒤 국정원(추정) 직원과 함께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이동, 정부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28일 경북 울진 후포항에 도착한 391흥진호 선원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A씨에 따르면 391흥진호는 16일 울릉도 저동항을 출항했다. 복어잡이 어장이 형성된 태화퇴어장에서 조업했다. 17일까지 조업량은 거의 없었다. 조급해진 선장이 뱃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A씨는 이때를 18일 오전으로 기억했다.

새로운 어장으로 이동한 391흥진호는 조업 중 북한어선을 만났다. 20여 명이 타고 있던 배였는데 크기는 38t인 391흥진호보다 작았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다. 서로 고성을 지르고 욕설도 오갔다. A씨는 당시 조업하던 장소가 북한 해역일 것으로 추정했다. 선장 B씨가 391흥진호의 GPS플로터(해양 내비게이션)의 전원을 끈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툼을 지켜보던 A씨 등 선원들은 북한 어선의 선원들이 떼로 몰려들 것을 우려했다. 수적으로 불리한 데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선장이 배를 멀리 이동하면서 위기 상황을 모면했다.
지난달 21일 동해상 북측 수역을 넘어가 북한 당국에 나포됐던 391흥진호가 27일 오후 10시16분 속초항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391흥진호가 입항하자 정부 관계자들이 선박에 올라가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391흥진호가 18~20일 (북한 어선과 만난)주변 해역에서 계속 조업했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많아 멀리 이동하지 않았다. 391흥진호가 북한 경비정과 맞닥뜨린 건 21일 오전 0시30분쯤이다. 전속력으로 남하했지만 결국 1시간 만인 오전 1시30분쯤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해경은 391흥진호가 조업하던 곳이 북한 해역 안쪽 50마일(약 85㎞)쯤으로 추정했다. A씨는 자신들과 다퉜던 북한 어선이 경비정에 391흥진호의 조업 사실을 알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북한 군인(추정)이 배에 오르자 선원들은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군인들은 391흥진호는 자력으로 항해하도록 한 뒤 북쪽으로 예인했다. 하루 반나절을 항해한 끝에 닿은 곳은 원산항이었다. 선원들은 배가 도착한 뒤에도 그곳이 원산인지 몰랐다. 북한 조사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원산항에 억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91흥진호 전 선장이 22일 오전 8시20분 391흥진호와 통화했다며 해경에 알려준 위치(오른쪽 빨간점).
북한 조사관들은 선원들을 허름한 숙소(여인숙)에 수용했다. 방 1개에 두 명씩 감금한 뒤 차례로 한 명씩 조사했다. 개인 신원과 조업 경위, 북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넘게 된 경위 등을 물었다. 조사과정에서 가혹 행위나 월북 권유 등은 없었다.

북한 조사관은 선원들이 반복적으로 여러 차례 진술서를 쓰게 했다. ‘북 해역에 침범해 잘못했다’ ‘송환시켜주면 다시 침범하지 않겠다’ ‘북 체류기간 처우에 감사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A씨는 “말로만 듣던 아오지 탄광이나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것 아닌지 걱정이 돼 잠도 못 이뤘다”며 “감금된 방에서 TV로 북한 방송만 보게 했다”고 말했다. 선원들은 27일 오전 고위직으로 추정되는 북한 조사관으로부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내준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선원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북한이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서였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391흥진호와 관련,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오전 10시 북한 경비정의 감시를 받으며 원산항을 출발한 391흥진호는 오후 6시쯤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도착했다. 391흥진호에 타고 있던 북한 군인 3명이 자신들의 경비정으로 옮겨 탄 뒤 선장은 죽을 힘을 다해 배를 남쪽으로 몰았다.

391흥진호는 39분 뒤인 오후 6시39분 NLL 인근에서 기다리던 해경 경비정을 만났다. A씨는 “북한 군인이 내린 뒤에도 한참을 떨었다. 혹시나 대포, 기관총으로 배를 침몰시키지 않을까 두려움이 컸다”며 “해경을 만난 뒤에야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선원들과 포항에 머물 예정인 A씨는 다시 배를 탈지를 고심 중이다. 첫 항해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배가 북측 해역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는 선장을 조사하면 나올 것”이라며 “앞으로 선원들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세종·포항=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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