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늘도 행복한 시골집

서울문화사 2017. 10. 31. 22:55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래 도시 생활을 하다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시골로 내려갔다. 전국을 돌아보며 땅과 집을 물색했다. 3년여 만에 발견한 개량 한옥을 단돈 2500만원에 샀고, 만 5년째인 올해 새롭게 리뉴얼 공사를 한 공간 디자이너 오미숙 씨의 서천 시골집.


오미숙 씨가 한옥에 꽂힌 건 유년기의 기억이 한몫했다. 어린 시절,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가 오미숙 씨를 맡아 키워주셨는데 그때 할머니 댁이 한옥이었다. 툇마루며 마당, 우물 모두 그립지만 가장 좋아했던 공간은 부엌의 아궁이 앞. 타닥타닥 타는 마른 장작 소리가, 도깨비불처럼 이리저리 튀는 빨간 불꽃이 어린 소녀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때로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장작불이 시나브로 꺼져갈 즈음 감자나 고구마를 던져두었다 한참 후에 꺼내서 손이며, 얼굴이며 시커멓게 재를 묻히며 껍질을 까서 먹었던 맛있는 기억도 있다.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 자랄 동안 쭉 아파트 생활을 한 오미숙 씨. 기라성처럼 높은 건물 천지인 도심에서 오색찬란한 야경을 보고 사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달려온 그녀에게 몸과 마음이 정지 신호를 보냈다. “주부이자 엄마이고요. 거기에 제 직업인 실내 디자인과 공간 시공을 하는 동안 몸 하나를 여러 개로 쪼개어 살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조금은 여유가 생긴 40대 초반부터, 집은 인생을 일궈주는 밭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도시를 탈출할 계획을 세웠어요.” 가깝게는 경기도, 멀리는 강원도와 경상도를 돌아다니며 마당 딸린 주택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충남 서천에서 꿈에 그리던 이 집을 만났다. 어릴 적 외갓집과 비슷한 개량 한옥이었지만 워낙 낡아서 고쳐서 살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남향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대지 301㎡(약 90평), 건물 66.11㎡(약 20평)에 2500만원이란 매매가도 매력적이었다. 또 방마다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었으니 기억 속 외할머니의 집에 다시 발을 들인 듯한 느낌에 매매를 결정했다. “지금 들으면 2500만원에 땅도 사고 집도 샀다고 다들 놀라세요. 물론 발품을 판 만큼 좋은 조건이었지만요. 당시엔 그 집을 본 사람이면 누구랄 것도 없이 누가 그 돈 주고 이런 폐가를 사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예요(웃음). 집의 상당 부분은 허물 정도로 큰 공사는 불가피한 일이었고, 매매가의 곱절 이상 들 시공비 또한 이미 예측하고 매매를 결정했어요(실제 공사비로 5000만원이 들었다).” 다행히 새로 지을 필요는 없는 꽤 탄탄한 뼈대를 갖춘 집이었다. 이렇게 2013년에 구매해 2개월간 수리한 집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2천 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이다. ‘신축’ 아닌 시골집을 보수 공사한 훌륭한 사례를 담으려 공중파 방송국은 물론 여러 매체에서 충남 서천으로 모여들었다. 전국 곳곳에 있는 시골집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그 덕분에 5년여를 바쁘게 살다가 불편함을 개선하는 공사로 새로 보듬어진 서천 집에 <리빙센스>를 초대했다.



1,2 내부 통로를 만들고 알루미늄 창호를 세워 만든 문과 창문. 집 안이 잘 보이지 않도록 표면이 울퉁불퉁한 불투명 판유리를 사용하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 3 개인 서재로 향하는 문. 외부로 향하던 옛 문을 그대로 살리고 원목 틀의 유리창문을 새로 덧대 이중 문으로 만들었다. 4 내부 통로를 만들기 위해 시멘트를 바른 다음 타일을 붙여 장식하고 투명 에폭시를 발랐다.
개량 한옥에는 없던 내부 통로를 만들다

옛집은 ‘ㅁ’자 마당을 둘러싸고 대청마루가 딸린 안방, 주방, 쪽방이 있는 ‘ㄱ’자 구조의 본채와 재래식 화장실이 하나. 그리고 창고가 있었다. 뼈대만 살리고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입식 부엌과 현대식 화장실 겸 욕실을 만들었다. 방 4개 중 2개는 아궁이를 살렸고 실제 겨울에는 불을 때 난방을 한다. 나머지 공간에는 기름보일러를 들였다. 또 기존 지붕을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다시 지붕을 올려 비용을 줄이면서 방수와 단열을 동시에 챙겼다. 이때 지붕은 변화무쌍한 우리나라 기후를 고려해 함석 소재의 슬레이트를 선택했다. 벽을 뚫어 새로 창을 낸 자리에는 목공으로 창틀을 새로 짜고 유리를 끼웠다. 이렇게 구색을 갖추고 살면서 시골집 특유의 정취에 푹 빠졌다. 하지만 ‘ㄱ’자 구조의 본채에서 각각 끝과 끝에 자리한 안방과 화장실을 오가기가 너무 불편했다. “보통 시골집에는 ‘통로’라는 게 없어요. 각각의 독립된 공간마다 따로 있는 문을 드나들어야 공간별 이동이 가능하죠. 그러다 보니 안방에서 화장실까지 신발을 신고 다녀야 되는 점도 불편했어요. 개량 한옥의 원래 구조를 살리고도 싶었지만 살기 편한 곳으로 꾸미고자 통로를 만들기로 했어요.” 마당과 인접해 ‘ㄱ’자로 이어진 집 앞으로 ‘ㄱ’ 자의 길을 냈다. 바닥에 보일러를 깔고 시멘트로 미장했다. 이국적인 패턴의 타일도 박았다. 그리고 투명 에폭시로 코팅을 해서 통로 바닥을 완성했다. 마당과 통로의 경계에는 알루미늄 창호로 문과 창을 냈다. 중간중간 스테인드글라스도 장식했다. 서까래가 있던 기존의 처마에 새로운 지붕을 연결해 천장의 면적도 넓혔다. 그 덕에 맨발로도 집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는 내부 통로가 완성됐다.

최근 새롭게 꾸민 입식 부엌. 막혀 있던 벽을 허물어 개방감 있게 만들었다.


1,2 면적이 넓지 않아 꼭 필요한 가구만 두고 곳곳마다 알뜰하게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접시를 꽂는 접시장, 문 위에 단 고재 선반 등이 그것.  3.창을 등지고 있어 어두운 벽에는 앤티크 거울을 달았다. 4,5 인근 밭에서 딴 상추, 쑥갓, 가지, 오이, 노각, 고추까지. 저녁에는 시내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파티를 할 참이다
한국 더하기 유럽 스타일의 부엌

천장의 합판을 뜯어내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노출한 부엌. 천장과 벽 모두 오래된 황토벽이 부식되어 가루가 날리고 부스러기가 떨어져 칠이나 도배를 할 수 없었다. 지저분한 벽을 털어내고 울퉁불퉁한 곳은 핸디코트로 평평하게 메웠다. 그리고 시멘트 미장을 한 다음 흰색으로 도색 작업을 한 곳이 바로 지금의 부엌이다. 대들보와 서까래는 모두 옛모습 그대로 살렸다. 바닥에는 투명 에폭시를 깐 통로와 구분되면서 청결하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흰색 타일을 깔았다. 그리고 오미숙 대표가 좋아하는 앤티크 가구를 배치했다. 유럽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혹여 깨질까 봐 트렁크에 넣지도 못하고 품에 감싸 하나 둘씩 가져온 앤티크 조명, 그릇, 찻잔, 소품을 두니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장소가 되었다.

1 부엌 맞은편에 있는 쪽방. 실제로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 겨울뿐 아니라 습도가 높은 한여름에 잠깐씩 불을 떼고 눅눅함을 날린다. 선풍기는 40여 년 전 일본으로 여행 갔던 고모가 사온 일제 선풍기. 아직도 잘 돌아간다. 2 오래된 감성을 좋아하는 오미숙 씨. ‘밀크글라스’라고도 불리는 불투명한 식기류를 옛 찬장에 모셔뒀다.


아궁이가 있는 좌식 서재.


아궁이 좌측의 쪽문을 지나면 안방이 나온다.
아궁이가 있는 개인 서재

원래 부엌이었던 곳은 개인 서재로, 미팅을 위한 회의실로 쓴다. 싱크대가 있어 차를 내기에 좋고 아궁이와 부뚜막이 있는 좌식 공간이라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 아궁이를 시멘트로 마감한 다음 망치로 깬 타일을 모자이크처럼 장식해 마치 유럽에서 본 듯한 가마와 같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특히 창을 내고 목공 창틀에 끼운 유리 너머로 뒤뜰 대나무 숲과 장독대가 보여 운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안방과는 쪽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재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대나무 숲과 장독대.


대청마루가 있는 안방.



1.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는 대청마루는 이 집을 구매하게 된 중요한 요소였다. 2.활짝 열어둔 문으로 들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먹는 샌드위치 한 점, 커피 한 모금이 꿀맛 같다. 3.헛간을 새로 꾸며 만든 바느질 방.
옛 가구를 배치한 안방

대청마루가 딸린 안방. 색이 많이 바랬지만 튼튼했던 대청마루는 샌딩기로 지저분하고 거친 면만 살짝 다듬은 다음 천연 페인트로 칠을 하고 오일 스테인으로 마감했다. 방문은 원래 있던 것을 갈무리한 다음 문풍지를 발랐다. 수십 년 된 벽지를 뜯어내고 핸디코트와 바인더로 표면 작업을 하고 하얀색 한지를 발랐다. 가구들은 하나같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티크 소재에 자개가 붙어 있던 옷장은 원래 이 집에 있던 것. 그늘에 말려 습기를 날리고 광을 내 재활용했다. 창은 커튼 대신 자수가 놓인 테이블보나 여름 이불을 달았다. “그간 타지에서 하는 작업이 많아 이곳에서 머물 여유가 없었어요. 내부 통로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해서 발길이 향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요. 그러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본격적으로 리뉴얼을 하고 올여름부터 지내는 중인데요. 마음이 너무 편해요. 지리멸렬 공사 현장에 있다 이곳에 오면 세상과 단절된 듯한 오롯한 휴식을 즐길 수 있어요. 꽃을 심으면 좋겠다, 상추를 심어서 직접 가꿔 먹으면 좋겠다라는, 지금껏 없었던 의욕이 생기기도 해요. 올겨울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뜨끈뜨끈한 방에서 대자로 누워 몸을 지져볼 생각이에요.”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어 오미숙 씨가 좋아하는 바느질 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놀이터다. 대들보와 서까래는 일일이 사포로 문지르고 오일 스테인을 발라 나무 색을 살려내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기획 : 이경현 기자 | 사진 : 김덕창 | 디자인과 시공 : 오미숙(애플스타일, blog.naver.com/ohcodi)

Copyright © 리빙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