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트코인의 첫 범죄자가 전자화폐 시장을 수조 달러 규모로 키울 수 있을까?

Brian Patrick Eha 입력 2017.10.31. 15:54 수정 2017.10.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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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7년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새러소타 해변에서 포즈를 취한 찰리 슈렘.

그는 고함을 쳤다. 기분이 좋을 때 보이는 모습이었다. 슈렘은 자신이 사는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 Sarasota에 있는 한 술집의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판게아 화학연구소(Pangea Alchemy Lab)’라는 이름의 이바는 스피크이지 *역주: 미국에 금주법이 있던 때의 비밀 술집 를 모방해 샌드위치 가게 뒤편 커튼 뒤에 숨어 있었다. 수염을 기른 무정부주의자 바텐더가 우리의 주문을 받았다. 그는 각설탕이 올려진 구멍 뚫린 숟가락을 프랑스산 압생트 잔에 얹은 후, 네 팔 달린 디캔터 *역주: 와인을 거를 때 쓰는 도구와 비슷한 도구로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그 바텐더는 내게 잔을 건넨 후,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가 쓴 ‘부채 그 첫 5000년(Debt:The First 5,000 Years)’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슈렘이 계속 비트코인, 블록체인, 전자화폐 등을 언급하고 있던 게 들렸던 모양이었다.

수감자 신세로 전락하기 전, 슈렘은 비트코인 백만장자의 럭셔리한 삶을 살았다. 올해 27세인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10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은 끝났고, 이젠 새로운 일자리도 찾았다. 그의 목표는 화려한 복귀다.

전자화폐가 요즘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그 유사 화폐들의 총 가치가 현재 연초 대비 6배 상승한 1,07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전세계 금융 질서의 재편, 아니면 역사적인 버블의 조짐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자화폐의 1일 거래량은 66억 달러까지 이르렀다. 골드먼 삭스, 비자카드, 캐피털, 나스닥, 뉴욕증권거래소 등 주류 금융기관들도 전자화폐 기초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슈렘은 1비트코인이 몇 달러에 불과했고, 사용처도 극히 드물었을 때, 그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차렸다(현재 1비트코인은 2,600달러를 상회한다). 그가 2011년 공동 창업한 벤처기업 비트인스턴트 BitInstant는 초기 전자화폐 거래소 중 선두권이었다. 2013년 폐쇄되기 전, 비트인스턴트는 전체 비트코인 거래량의 3분의 1을 처리하기도 했다. 슈렘은 “열 명에게 물어보면 그 중 최소 일곱 명은 비트인스턴트에서 처음 비트코인을 사 봤다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렘은 타고난 기획자이자 홍보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다. 그는 사회 현상으로서의 전자화폐를 대표하는 초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남성잡지 GQ는 2013년 전자화폐의 어두운 세계에 대한 ‘영적 안내자(spirit guide)’가 필요해지자 슈렘에게 다가갔다. 그는 ‘비트코인의 계속되는 부상(The Rise and Rise of Bitcoin)’이

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했다. 업계 행사가 있을 땐 연사나 전도사로 나섰고, 최초의 비영리 전자화폐 진흥 단체인 비트코인 재단(Bitcoin Foundation)의 창립에도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하지만 슈렘의 추락은 상승만큼이나 빨랐다. 그는 2015년 3월 유죄 판결을 받고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다. 한 고객이 구매한 비트코인을 통해 마약을 거래하는 지하 거래소인 실크로드 Silk Road에 되파는 것을 도왔다는 혐의였다.

슈렘은 이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동안 업계는 크게 바뀌었다. 슈렘이 뛰어들 때만 해도 유일한 전자화폐였던 비트코인은 예전만큼 위상이 높지 않다. 부정적인 예측대로 비트코인이 자멸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비트코인을 출발점으로 수백 종의 새로운 디지털 자산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슈렘은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단일 통화가 전자화폐의 패권을 잡는 일은 없으리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일종의 다원주의가 대세기 되고 있다. 필자가 오랜만에 슈렘에게 연락을 취했던 3월 초만 해도 비트코인이 전체 암호화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85%였다. 그러나 6월 12일에는 역대 최저치인 41%까지 떨어졌다. 사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이 기간 동안 낮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했다(오른쪽 표 참고). 경쟁 화폐들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랐을 뿐이었다.

슈렘은 코딩보단 ‘연결’에 능한 사람이다. 다양성이 높아진 현재의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그는 핵심적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슈렘은 사회 복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를 맛봤지만, 이후 잭스 Jaxx에 새 일자리를 구했다. 잭스는 이용자가 보유한 여러 가상화폐를 한 자리에서 관리할 수 있는 전자지갑 서비스다.

초기 전자화폐는 혼란으로 가득한 법적 회색지대였다. 슈렘은 그 상징 같은 인물이었지만, 자신이 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는 자기 자신보단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찰리 슈렘은 전형적 금융인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인물이다. 바로 그런 점이 대안 화폐의 매력이다. 초창기 전자화폐는 모건 스탠리의 심사를 도저히 못 통과할 것 같은 사람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제 전자화폐는 기존 제도의 반항아들이 체제 밖에서 사용하는 가치 교환 수단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체제가 된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슈렘은 변화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일 수 있다.

2009년 출범 당시 비트코인의 목표는 전 세계 단일 화폐의 구축이었다. 뉴욕에서만큼이나 인도 뉴델리에서도 편하게 쓸 수 있고, 전 세계 어디로든 몇 분이면 전송되는 전자 화폐를 꿈꿨다. 코인의 희소성은 코드가 사전에 결정한다. 비트코인은 ‘채굴(mining)’이라는 과정을 통해 정기적으로 시스템에 추가된다. 단어의 어감과 달리, 채굴은 네트워크상의 거래를 승인하기 위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문제 풀기에 성공하면 비트코인이 추가로 생성된다.

나카모토 사토시 Satoshi Nakamoto(가명)가 창조한 비트코인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지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탈중심적 시스템이다. 모든 비트코인 거래를 기록하는 거래원장(ledger)의 사본은 꾸준히 업데이트 되는데, 이를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블록체인은 소프트웨어가 구동되는 모든 컴퓨터에 저장된다. 거래원장은 전체가 공개되지만, 비트코인은 기본적으로 무기명 거래다.

블록체인 기술이 획기적인 이유는 결제업체, 정부, 은행 등 중앙의 권위 있는 기관을 거치지 않고 거래가 일어난다는 데 있다. 기업과 서비스 입장에선 탈중심화를 통해 비싼 중개 비용을 절약하고,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여러 군데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출범 후 불과 8년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이 흔들리고 있다. 회사의 미래를 두고 내분이 발생했다. 코드 상의 제약으로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초당 최대 7개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다. 일반 대중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비자카드는 초당 수천 건의 거래를 처리한다). 이용량이 늘면서 거래 승인에 걸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졌는데, 문제 해결법을 놓고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렸다. 현재는 자칫하면 비트코인이 둘로 나뉘거나,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트코인은 후발주자들에 비해 느릴 뿐만 아니라 제약도 많다. 경쟁 업체들은 비트코인의 가치 전송 기능은 물론, 그 외 다양한 기능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이더리움 Ethereum은 ’스마트 계약‘을 할 수 있는 스크립트 언어를 도입해 네트워크의 활용성을 확장했다. 스마트 계약이란 사전에 지정된 조건이 나타날 때, 지불 등 여러 기능이 자동으로 수행되는 소프트웨어 기반 계약이다.

비트코인 입장에선 새롭고 영리한 경쟁자들이 등장한 셈이다. 라이트코인 Litecoin, Z캐시 Zcash, 모네로 Monero, 대시 Dash 등 그 수도 적지 않다.

대시(‘디지털 캐시’의 합성어)는 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대시는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면서 여러 가상화폐가 등장한 2014년 1월에 출범했다. ‘대안코인(altcoin)’이라 불리던 이들 신종 가상 화폐 중 상당수는 오직 펌프 앤드 덤프 pump and dump 사기 *역주: 허위정보로 매매가를 끌어올린 후 시세차익을 챙기는 수법 용도로 활용됐다. 대안코인을 골라(혹은 만들어) 대량의 자금을 집어넣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 후, 신출내기들이 들어와 가격이 오르면 원 투자자들이 돈을 빼나가고 가격이 폭락하는 식이었다.

찰리 슈렘도 과거에는 이런 행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한 대안코인에 50달러를 투자해 1만 5,000달러를 벌기도 했다(그러나 아이슬란드의 국가 전자화폐를 목표로 했던 한 대안코인에 투자했을 땐 하루 만에 가격이 반토막이 나 큰 손해를 입기도 했다).

대시는 가장 인기 높은 대안코인 중 하나였다. 초기에는 거래 추적이 불가능해서 ‘다크코인’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수없이 펌프 앤드 덤프 작전 세력에 이용당했다. 그러나 개발자는 꾸준히 소프트웨어를 정교화하고 기능을 추가시켰다. 2015년 3월에는 이름을 대시로 변경했다. 매킨지의 금융서비스 컨설턴트 출신으로 대시의 핵심 팀을 이끄는 라이언 테일러 Ryan Taylor의 설명에 따르면, ‘단일 기능 코인’이라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대시는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대시의 총 가치는 매년 세 자리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거기에는 비트코인의 단점도 한 몫을 했다. 테일러는 새 결제수단이 인기를 끌려면 기존보다 더 빠르고, 사용이 쉽고,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자화폐는 세 측면 모두에서 실패작이라 판단하고 있다. “신용카드보다 빠르지도 사용하기가 쉽지도 않다.”

대시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테일러는 대시의 ‘즉시 송금(instant send)’ 기능이 “신용카드 못지 않게 빠르다”고 주장했다. 연내 출시 예정인 대시의 최신 버전에는 여러 가지 사기 및 도난 방지기능이 추가된다. ‘중개 거래(moderated transaction)’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령해야 출금이 진행되는 기능이다. ‘금고계좌(vault account)’를 선택하면 출금 실행 전 24시간 동안 거래를 취소할 수 있다. 일상적 상업 활동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환 수단이 되는 것이 대시의 목표라 할 수 있다.

대시의 가장 큰 매력적인 혁신은 아마도 운영시스템일 듯하다. 모든 신규 프로젝트는 최소 1,000코인을 보유한 사람들의 투표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자화폐 전문 헤지펀드인 폴리체인 캐피털 Polychain Capital의 올라프 칼슨-위 Olaf Carlson-Wee CEO는 “탈집중화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이 이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비트코인은 누군가에게 자사 신규 소프트웨어 채택을 강제할 수 있는 구조나 방법을 거의 갖고 있지 않아 고충을 겪고 있다.

대시의 인기가 높아지자 슈렘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선불 체크카드 출시를 제안했다. 체크카드에 대시코인을 충전해 달러(혹은 유로화 등 각종 통화)로 변환하면, 체크카드 가맹점 어디에서나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수억 달러 상당의 전자화폐가 주류 경제에 진입할 길이 열릴 수 있다. 테일러도 “실제 사용되는 통화로 쉽게 환전할 수 있으면 대시 보유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비트인스턴트의 조언자들. 왼쪽부터 에릭 부어히스, 찰리 슈렘, 아이라 밀러.

대시를 활용한 체크카드는 이미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슈렘이 제안한 카드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사용될 전망이다. 대시 사용자들은 슈렘의 계획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테일러는 “네트워크에서 평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슈렘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 사람들이 진정성 있게 사안을 받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찰리 슈렘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러시아인과 유대인 밀집 거주 지역인 시프스헤드 베이 Sheepshead Bay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정통파 유대교도였다. 아버지는 보석상이었다. 가정주부인 어머니가 외아들 슈렘을 포함해 세 남매를 돌봤다.

수줍고 낯가림이 심했던 슈렘은 컴퓨터에 재능을 보이면서 성격이 밝아졌다. 그는 코딩을 독학했고, 온라인 해커 모임에 자주 드나들었다. 2009년 브루클린 대학(Brooklyn College)에 재학 중이던 슈렘은 데일리 체크아웃 Daily Checkout이라는 가전제품 원데이 쇼핑몰을 공동 창업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세일즈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슈렘은 특유의 허풍 섞인 어조로, 자신이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에 대해 알았던 10인 중 한 명이라고 주장했다. 아마 그 말은 과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2011년 가을 벤처기업(부모 집 지하실에서 창업했다)을 운영할 정도로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의 스타트업인 비트인스턴트는 전자화폐 구입과 비트코인 환전소 간 이동을 도와주는 서비스였다. 나중엔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하는 기능도 도입했다. 웰스파고 Wells Fargo, 뱅크오브아메리카 Bank of America 같은 은행이나 (송금 서비스업체 머니그램 MoneyGram 같은 파트너를 통해) 미국·러시아·브라질 등에 있는 월마트, 세븐일레븐, 기타 편의점 등 70만 곳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비트인스턴트는 슈렘과 웨일스인 개발자 가레스 넬슨 Gareth Nelson(23)이 공동 창업했다. 비즈니스를 맡은 슈렘은 어머니로부터 1만 달러, 로저 베어 Roger Ver라는 엔절 투자자로부터 12만 달러를 끌어 모았다. 이 무렵 한 투자자가 비트인스턴트에 돈세탁 방지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슈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비트인스턴트의 고객 중 상당수가 실크로드 사용자라는 사실도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마약 구매를 위해 비트인스턴트에서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환전했다. 실크로드 사용자의 비트코인 구매를 중개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로버트 파이엘라 Robert Faiella라는 플로리다 거주 배관공이 부업으로 그런 일을 했다.

슈렘은 파이엘라의 정체를 곧바로 파악했다. 그러나 그를 쫓아내기는커녕 마약거래 자금을 구하는 일을 도왔다. 비트인스턴트의 현금 전환 회사와 슈렘의 파트너는 그 같은 일을 중단하길 원했다. 그럼에도 슈렘은 파이엘라에게 새 ID와 이메일 주소로 정체를 숨기라고 권유했다.

자금은 아무런 방해 없이 공급됐다. 슈렘은 2012년 말에야 파이엘라와의 관계를 중단했다. 파이엘라가 비트인스턴트를 통해 약 100만 달러의 자금을 세탁한 후였다. 파이엘라는 이후 무허가 자금 전송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슈렘은 당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유의지 관점에서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첫째, 개인에겐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재산과 신체를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그가 파이엘라를 돕기 시작할 당시,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의 분류나 규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여부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없었던 만큼, 돈세탁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당시 비트코인 관계자들은 옳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전자화폐는 중앙은행을 비롯한 기존 제도권 밖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비트코인 애용자의 상당수는 자유의지론자, 무정부주의자, 정부의 감시를 피해 사업할 길을 찾는 암시장 업자들이었다. 이들은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 체제를 조만간 전복할 것이라는 작은 신호에도 환호를 보냈고, 정부나 대형 은행의 무능이나 악의가 조금만 드러나도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은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 보장이 인권이라고 믿고 있었다.

슈렘은 범법자적 입장에 끌렸다. 제휴 은행 및 마스터카드의 압박을 받은 결제업체가 모든 비트코인 업체와의 관계를 끊으면서, 사용자들의 자금이 묶이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비트인스턴트는 해킹으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했다.

2014년 9월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는 슈렘.

필자가 처음 슈렘을 만났던 2012년 8월 당시, 그는 22세의 자신감 넘치는 CEO였다. 그는 속사포처럼 말하는 자본가였고, 대마초를 피운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필자가 슈렘과 직원들을 인터뷰했던 사무실에는 ‘빵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근무를 마친 후 대마초를 피우며 자유롭게 대화하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레이철 얀켈러비츠 Rachel Yankelevitz라는 이름의 전 직원은 “슈렘은 직원을 뽑을 때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지, 같이 술을 마시며 놀 수 있는지를 신경 썼다”고 말했다.

슈렘의 야망은 거창했다. 그는 전체 비트코인 거래에서 비트인스턴트의 비중이 30%까지 높아지자 비트인스턴트가 ‘비트코인의 애플’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비트인스턴트는 그 해 가을 15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다. 대부분은 전자화폐에 관심이 있던 쌍둥이 형제 캐머런 Cameron과 타일러 윙클보스 Tyler Winklevoss의 투자였다. 이 형제는 비트인스턴트에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한 후 계속 투자를 진행해 전 세계 비트코인의 1%를 손에 쥐었다. 그들은 슈렘이 체포되자 그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투자 유치 이후 비트인스턴트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디지털화폐의 미래가 상당 부분 화폐 시스템 내외부로의 고속 전송 여부에 달린 만큼, 비트인스턴트는 업계의 척도가 됐다. 그러던 2013년 초 키프로스 금융위기 때, 유럽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일반 시민의 은행 계좌에 6.75%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 결과 비트코인이 갑자기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면서, 50달러였던 가격이 266달러까지 치솟았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금액이었다. 슈렘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다 갈등이 시작됐다. 투자자 간 분쟁으로 슈렘의 친한 친구 두 사람이 비트인스턴트에서 축출됐다. 그 후 슈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한눈 팔때가 많아졌다. 밤 늦게까지 파티를 즐기고, 일부러 늦잠을 자고, 회사에 지각을 하곤 했다.

한편 비트인스턴트의 고객이 가파르게 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증가했다. 플랫폼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는 각종 기술적 문제와 법적 우려의 늪에 빠져들었다. 비트인스턴트가 주 정부의 자금전송업 허가(일부 주에선 필수였다)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허가 비용이 엄두를 못 낼 만큼 엄청났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비트인스턴트는 결국 2013년 7월 문을 닫았다. 최고정보책임자(CIO) 앨릭스 워터스 Alex Waters는 비트인스턴트에게 세계 최고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슈렘이 그걸 “날려버렸다”며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객들도 분노를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슈렘은 별 타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홀로 살며 자유를 만끽했다. 여자친구(현재는 약혼녀) 코트니 워너 Courtney Warner와 모로코 여행을 갔을 땐 아편을 피우기도 했다. 그는 비트코인 재단 업무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파티와 계약이 소용돌이치는 삶이었다. 2013년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클럽, 술집, 식사 자리에 데려가야 할 사람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관심사는 비트인스턴트가 아닌 바로 자기자신이었다. 그럼에도 돈을 벌기 위해 강연을 다니면서 비트인스턴트가 훨씬 개선된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꾸준히 주장했다. 워너는 당시 약혼자가 “굉장히 거만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2014년 1월 일이 터졌다. 슈렘은 암스테르담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체포되었다. 무허가 자금 전송을 보조하고 교사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선고 공판에서 판사에게 “내가 일을 망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슈렘은 본인이 위반한 법이 정당한 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변호사의 반대로 실행하진 못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비트코인 관계자는 더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 간 사람은 슈렘이 처음이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보니 응당한 처벌인지, 희생양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슈렘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비트코인을 위해 첫 총알을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열의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문을 여는 순간 총에 맞을 수밖에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람 덕분에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슈렘은 2015년 3월 복역을 시작했다. 감옥에 가기 전 몇 달간 보드카로 긴장을 달랬던 탓에 키 163cm의 깡마른 체구에 살이 조금은 붙은 상태였다. 펜실베이니아 주 루이스버그 Lewisburg의 최저보안등급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몸의 독소가 빠지자 시설 내 도서관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전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형태를 막론하고, 모든 통화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인가? 운 좋게도 그는 교도소 속 경제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교도소 내에는 단백질을 기반으로 하는 자체 화폐가 있었다. 콩과 섞은 전갱이 팩이 주요 화폐 단위였다. 슈렘은 “감옥에선 고급 단백질을 구하기 쉽지 않다”며 “참치도 맛있지만, 식감이 다르다. 전갱이에선 고기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슈렘은 장기수들이 계좌에 저축하듯, 전갱이 팩을 잔뜩 쌓아 놓는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팩에는 3년이라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그는 “수감자들이 유통기한이 지난 전갱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런 팩에 ’돈 전갱이(money mac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 팩은 1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었고, 먹을 수 있는 전갱이 한 팩의 가치는 약 1.5달러였다. 그들 사이에는 교환을 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 가치가 없는 돈 전갱이지만,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에 가치가 생성됐다.”

그는 특정 형태의 돈(조개껍질, 색깔 구슬, 종이 쪽지 등) 가치는 네트워크 효과 *역주: 특정 상품에 대한 한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받는 현상에 따른 사회적 관습이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화폐 연구자들의 이론 중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특정 화폐의 매력도가 다른 화폐보다 높아지는 특징도 분명 존재했다. 돈 전갱이는 수감자들에게 이상적인 형태의 화폐였다. 슈렘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희소성 있는 재화였다. 돈 전갱이를 구하려면 먹을 수 있는 전갱이의 유통 기한이 지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먹을 수 있는 전갱이의 물가 상승률도 정해져 있었다. 수감자는 500명인데, 교도소 내 매점에서 1인당 살 수 있는 전갱이 팩의 수는 매주 14개에 불과했다. 교도소에 유입되는 전갱이 팩의 최대 한도인 셈이었다. 전갱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시장에 전갱이 공급이 폭등하는 일은 없었다. 비트코인도 이와 비슷하다. 원하는 대로 전갱이를 공장에서 찍어낼 수 있는 전갱이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비트코인은 가치의 저장과 결제 네트워크라는 측면에서 강력한 화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슈렘은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그 때가 몰락의 순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스마트 계약, SNS, 분산형 파일저장 시스템 등 온갖 기능을 얹는 건 웹브라우저에 모든 업무를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슈렘은 그보단 각종 기능에 특화된 수천 종의 전자화폐가 번성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블록체인 자산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을 보면, 비트코인이나 대시 같은 전자화폐보다 ‘토큰’이 많다. 암호화폐와 달리 토큰은 자체 블록체인이 없다. 기존 블록체인(주로 이더리움)에 기반해 구동되며, 특정 기능에 특화된 경향이 있다. 예컨대 골렘 Golem은 P2P 컴퓨팅 장터, 오구르 Augur는 크라우드소싱 기반 시장예측 분야, 브레이브 Brave는 블록체인 기반 광고 플랫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자화폐는 대개 ‘채굴’되는 반면, 토큰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최초 코인 판매(initial coin offering · ICO)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확산된다(ICO가 끝난 이후에는 공개적으로 거래된다). ICO는 자금 유치라는 기본 목적 외에도, 희망 투자자들이 개발 중인 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는 첫 기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현재 수 십개의 ICO가 개설됐으며, 작년에는 2억 3,000만 달러, 올 상반기에는 무려 4억 5,000만 달러가 이를 통해 모금됐다(토큰 투자와 이를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에 대해선 ‘코인 시장에 투자가 몰린다’ 기사를 참조하라).

유명 IT투자사 앤드리슨 호로위츠 Andreessen Horowitz가 투자한 헤지펀드업체 폴리체인 캐피털의 CEO 올라프 칼슨-위는 토큰화 열풍을 “인터넷의 두 번째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페이스북이 자사 네트워크에서 생성된 콘텐츠와 그 관계에서 발생한 가치를 토큰화해 사용자에게 지급했다고 상상해 보자. 초기 사용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대량의 토큰을 구매할 수 있었던 반면, 그 후의 신규 사용자들은 페이스북의 가치가 점차 명확해져 소량만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토큰 덕분에 모든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의 성공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페이스북의 가치 4억 3,500만 달러는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주주들이 독점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플랫폼이 같은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용자 간 교류에서 창출되는 대규모 가치는 플랫폼 소유주가 가져가게 된다.

반면,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에서는 “사용자와 소유주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칼슨-위는 설명한다. 토큰은 헤지펀드 투자자부터 일반 소비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하고 투자할 수 있는 부의 공유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슈렘의 일상생활 복귀는 두 단계로 이뤄졌다. 그는 2016년 3월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에 위치한 사회적응시설(halfway house)으로 이감됐다. 그곳에는 루이스버그 감옥에 있던 횡령범, 사기꾼, 마약상 같은 수감자 외에도 ‘살인자와 은행강도, 아동 추행범들’이 있어 더 끔찍했다. 그는 도착한 첫날 밤 눈물을 흘렸다. 사회적응시설에서 슈렘은 시급 8달러를 받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다.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사회적응시설의 수감 조건이었는데, 인터넷에서 신기한 가상 화폐를 만지작거리는 일은 일자리로 인정 받지 못했다. 그는 “조건이 무척 구체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접시를 닦는 경험만 그를 겸손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슈렘은 자신이 없는 동안 비트코인 업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깨닫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유명한 사이트들이 없어졌다. 대안코인 투자를 위해 예전에 자주 드나들었던 온라인 환전소에 접속했더니, 존재하지 않는 웹사이트라는 안내문이 떴다. 업계 용어조차 달라져 있었다.

그 후 슈렘은 변화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루이스버그 감옥에선 도서관이 그의 안식처였다.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머물렀고, 본인의 말에 따르면 수감기간 동안 총 137권의 책을 읽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공부를 했다. 미국 로펌 쿨리 Cooley의 전자화폐 전문 변호사 마코 샌토리 Marco Santori는 당시 슈렘의 모습을 영화 ‘오스틴 파워’ 속 한 장면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40년쯤 냉동됐던 주인공이 깨어난 후, 상황을 파악하려고 지난 40년간의 역사를 한 번에 쭉 보는 장면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슈렘은 여전히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토큰이 뜨고 있다는 걸 인식한 후, 그는 인텔리시스 캐피털 Intellisys Capital이라는 벤처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되었다. 이 업체는 중견기업(이후에는 블록체인 벤처기업)으로 구성된 투자 포트폴리오를 마련하기 위해, ICO를 통해 2,500만 달러 상당의 토큰을 발행하고자 했다. 슈렘은 이 사업이 투자 세계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렇게 발행한 토큰이 미국법 상 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법적인 문제를 피하고자 인텔리시스는 미국과 영국 시민의 ICO 참가를 금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계획에는 단점이 있었다: 관심있는 투자자를 심사하기 위해선 파트너 업체의 도움이 필요했다.

슈렘은 이 벤처기업의 간판 얼굴이 되었다. 그는 예전으로 돌아가 언론과 대중에 인텔리시스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인텔리시스의 첫 투자처는 미시간 주에 위치한 20년 된 폐기물 처리 기업이었다. 슈렘은 이 첫 투자를 ‘개념 증명 *역주: 소프트웨어 등 신기술을 검증하는 과정’이라 불렀다.

그러나 토큰 판매 시점이 1월 중순에서 2월 말로 늦춰지자 슈렘은 갑자기 불안감을 느꼈다. 이미 금융범죄 이력이 있는 그가 증권을 판다는 말이 퍼지면 당국이 정밀 조사에 나설 것 같았다. 올 3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슈렘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는 악몽을 가끔 꾼다”고 말한 바 있다. 긴장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편이었다. 2월 말 진행된 ICO는 대실패였다. 슈렘은 “온갖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몇 십만 달러가 모이긴 했지만, 전액 환불했다.” 슈렘은 이 일에서 빠지기로 결심했다. 공포 속에 사는 것보단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전자화폐는 발전할 때마다 늘 거대한 가능성과 거대한 위험을 동시에 수반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브록 피어스 Brock Pierce는 “ICO는 크라우드펀딩의 뒤를 잇는 금융민주화·탈중심화의 새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자화폐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벤처캐피털 ‘블록체인 캐피털’ Blockchain Capital을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최근 벤처캐피털 업계 최초로 자체 블록체인 토큰을 출시, 1,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이 토큰은 6시간 만에 매진됐다).

피어스는 상당수 ICO가 회색지대에 있어 규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일이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 SEC)가 당장 단속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과 세상의 변화라는 선의를 행했던 좋은 기업인들이 감옥행 아니면 벌금을 부과 받는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버블과 사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재 ICO 시장은 급성장을 하고 있다. 주류 투자자들도 이 시장에 진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비트코인 긍정론자였던 억만장자 벤처투자가 팀 드레이퍼 Tim Draper가 지난 5월 처음으로 ICO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대상은 스마트 계약 플랫폼 테조스 Tezos가 7월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ICO였다. 드레이퍼는 테조스가 이더리움보다 “더 안전하고 더 민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이퍼는 향후 토큰이 ‘보건부터 보험,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적용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토큰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개척시대의 서부다.”

인텔리시스의 실패로 슈렘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는 “인텔리시스 때문에 인맥을 소모했다. 이제는 (그 인맥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필자에게 복귀하고 싶다고 말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복귀여야 했다. 그는 비트인스턴트 시절이 “어쩌다 한 번 운이 좋았던 때가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러소타로 이주한 슈렘은 분홍색 교외 주택을 임대해 약혼녀, 그리고 미래의 장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해변에서 휴식하고, 좋은 식당에서 외식을 하고, 보트나 제트스키를 타며 넉넉한 여유 시간을 즐겼다. 예전보다 성질이 누그러졌고 참을성도 늘었다. 그는 “뭔가 엄청난” 것에 초기부터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그걸 붙잡기를 원했다. 그래서 블록체인 지갑업체 잭스의 비즈니스 및 공동체 개발 담당으로 일하게 됐다. 슈렘은 잭스의 가치에 주목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돈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그는 “개개인이 스스로의 돈과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주체라는 내 비전에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간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잭스는 지난 3월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사용자 수도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더리움의 공동설립자이기도 한 잭스의 창업자 앤서니 디 이오리오 Anthony Di Iorio는 중국 등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슈렘이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다. 슈렘은 비즈니스 관계를 매출로 바꾸고, 개발자들과 접촉해 잭스에 등록된 가상화폐 수를 늘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10여곳과의 제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칼슨-위는 “토큰화 자산의 진정한 캄브리아기 대폭발”까지는 아직 몇 년이 남았다고 보고 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대시 등 현재는 서로 분리된 블록체인 네트워크 간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그 때쯤이면 현실화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이로 인해 평행(parallel) 관계인 블록체인을 하나로 엮는다는 뜻의 ‘패러체인 parachain’이라는 은어도 탄생했다).

패러체인이 실현되면 한 시스템의 기능과 스마트 계약 기능을 활용해 다른 시스템의 자산과도상호 작용이 가능해진다. 비트코인 지갑의 잔액을 기준으로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인지도와 역사, 사용자 수에서 가장 앞서 있는 비트코인의 과거 네트워크 효과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이 미 달러화 등 기존 통화와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듯, 같은 이유로 후발 가상화폐도 비트코인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브라이언 패트릭 이하 Brian Patrick Eha는 ‘돈은 어떻게 자유로워졌나: 비트코인과 금융의 미래를 둘러싼 전쟁(How Money Got Free: Bitcoin and the Fight for the Future of Finance)’의 저자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Brian Patrick E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