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캐릭터에 중심을 양보할 줄 알았던 배우 김주혁

2017. 10. 3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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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귀한 남배우였는데.." 누리꾼 추모 물결

[한겨레]

배우 김주혁

10월 마지막 월요일, 배우 김주혁씨가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마흔 다섯살, 이제 “연기의 참재미를 느낀다”며 한창 의욕에 불타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 대중에 큰 사랑받은 ‘구탱이형’

1998년 에스비에스(SBS) 공채 8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주혁씨는 지난 20년간 드라마·영화·예능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오랜 세월 다양한 작품으로 그와 인연을 맺은 배우, 방송·영화 관계자들은 잇따라 에스앤에스(SNS)에 애도문을 올렸고, 영화계와 방송계는 시사회 등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한국방송 예능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김주혁의 모습

그는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배우였습니다. 연기가 “일이자 취미생활”이라던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공백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성실한 배우였던 그는 2013년 12월부터 2년간 <해피선데이-1박2일>(KBS2)에 출연해 투덜거리면서도 장난기 많은 친근한 ‘동네형’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조각 같은’ 외모를 하고선 남이 흘린 낙지 다리를 주저 없이 주워 먹는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죠. 연말 시상식장에서 “정말 가오가 이빠이 떨어졌다”는 소감을 말했던 기억도 납니다. 널리 알려진 ‘구탱이형’이라는 별명은 사자성어를 완성하던 게임(2014년 1월26일 방송)에서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만들어졌습니다.

예능과 연기 사이에서 고민하다 끝내 하차를 선택했지만 2016년 <씨네21>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해보길 추천한다. 연기자는 연기하는 자신만 화면으로 보게 되지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예능을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며 ‘1박2일’을 소중한 자산으로 언급했습니다.

영화 <싱글즈>에서의 김주혁

■ 일상에서 흔히 볼법한 캐릭터 소화해내

돌이켜보면 그가 영화에서 맡은 역할들도 ‘구탱이형’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2000년대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했던 그는 <싱글즈>(2003)에서 잘 나가는 증권회사 직원 수헌 역할을 맡아 능글맞은 작업 멘트를 날렸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에선 동네 ‘만능 재주꾼’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백수 건달 홍두식, 일처다부제를 그린 <아내가 결혼했다>(2008)에선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며 그와도 결혼하겠다는 아내 때문에 끙끙대는 남편을 연기했습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의 김주혁

7년간 짝사랑한 여자와 키스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내뱉고 마는, 한없이 소심한 광식 역할을 맡은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영화 개봉 뒤 <한겨레> 인터뷰에서 “거절당하는 걸 공포 수준으로 두려워한다는 점에는 광식이랑 비슷하다. 광식이처럼 ‘오빤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들어봤다”며 실제 본인 모습과 광식이 얼마나 닮았는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청연>에서의 김주혁

■ 여성 중심 영화에 남달리 자주 출연

그는 여성 캐릭터가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영화에도 남달리 자주 출연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성 비행사 박경원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청연>(2005)에서는 박경원을 사랑하며 그의 꿈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한지혁 역할을 맡았는데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서) 내 역할은 서포트하는 역할이다. 내용에서도, 박경원의 삶에서도”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영화 <싱글즈>와 2008년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영화 <비밀은 없다> 등의 영화들도 김주혁이 맡은 남성 캐릭터보다는 배우 고 장진영, 손예진 등이 맡은 여성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연급 남성 배우들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작품에서 적절한 때에 자신을 낮출 줄 알았던 겸손한 자세 역시 대중이 그를 사랑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의 김주혁

이에 누리꾼들은 에스앤에스(SNS)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 아주 소중한 남자 배우라 생각했던 김주혁 배우. 그의 이른 죽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Coetz****), “1박2일에서의 구탱이 형님의 모습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네요”(@saemhee****), “천편일률적인 마초남성 캐릭터가 판치는 국내 영화판에서 그나마 한국 남성 캐릭터의 폭을 넓히는데 많은 기여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왔었다. 안타깝다”(@portebon****), “김주혁은 스스로 빛나는 배역보다 여배우를 빛나게 하는 역할을 도맡은 귀한 배우였다”(@snobde****), “여성에게 더 중요한 배역이 주어진 이런 영화들에 선뜻 출연하여 좋은 연기를 보여준 그가 멋지다고 생각했었다(@nohi****) 등의 반응을 올리며 그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영화 <공조>에서의 김주혁

최근 들어 연기 변신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그는 <비밀은 없다>(2015), <공조>(2016), <석조저택 살인사건>(2017)에서 잇따라 악역에 도전했습니다. 사망하기 3일 전인 지난 27일 열린 제1회 ‘더 서울어워즈’ 시상식에서 <공조>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는데요. 이 상은 그가 영화 시상식에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상입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 상은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주신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당분간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배우 김주혁씨, 그가 하늘에서 편안하게 영면하기를 빕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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