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월세 계좌 막고 '잠수'..세입자 내쫓기 '치사한 꼼수'

2017. 10. 3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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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연체 유도 뒤 명도소송 빈발
공탁제도 있지만, 번거롭거나 생소해
"상가임대차법 취지 악용한 꼼수 막아야"

[한겨레]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족발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1월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 새 임대인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97만원이었던 계약 조건을 당장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2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인상폭이 너무 커서 거절했더니, 월세를 입금할 계좌 자체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세를 보낼 계좌번호를 물어보려 전화를 해도 안받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고도 답이 없는 임대인을 보며, “내보내려는 속셈은 알겠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정말 속상했다”고 김씨는 토로했다.

김씨가 겪은 일은 임대인이 임차인을 건물에서 쫓아내기 위해 ‘월세 연체’를 유도하는 ‘꼼수’ 가운데 하나다. 시민단체 쪽 설명을 들어보면, 최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규정을 악용해 월세 연체를 유도하는 임대인의 행태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기존에 월세를 납입하던 계좌를 폐쇄하고, 새 계좌를 알려주지 않은 채 연락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월세를 연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3기분의 임차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를 임대차 계약 갱신 거절 사유로 들고 있다. 건물을 명도해 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내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월세 납부를 회피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방정인(25)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방씨는 지난 4월 ‘월세를 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방씨가 월세 인상 요구를 거절하자, 새 임대인이 기존 계좌를 예고없이 폐쇄한 것이다. 계좌가 사라진 줄 몰랐던 방씨는 온라인 뱅킹에 뜨는 ‘입금 불가’라는 단어를 ‘시스템상 오류’로 이해하고 하루 종일 온갖 방법을 시도해 봤다. 그러나 스마트폰 앱도, 현금입출금기도 먹통이었다. 결국 은행에 확인한 뒤에야 ‘해지된 계좌’란 사실을 알게 됐다. 방씨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일부러 계좌번호를 안 알려주는 방법까지 쓸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고 말했다. 방씨는 용산구청에 민원을 넣은 뒤에야 임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임대인이 고의로 월세를 받지 않을 경우 임차인은 월세를 법원에 공탁함으로써 임차료 연체로 인한 명도소송 등을 피할 수 있다. 임대인 대신 법원에 월세를 내는 셈이다. 그러나 공탁 제도를 모르는 임차인이 많은데다, 법원에 공탁하는 과정 자체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지난해 서촌에서 쌀집을 운영하던 최아무개(59)씨는 ‘막힌 계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공탁’ 제도를 알게 됐다. 그 뒤 10개월 동안 매달 월세 납입일이 되면 1시간 거리 서울남부지법을 찾아가 월세를 공탁했다. 최씨는 “공탁이니, 법원이니 낯설기만 했던 단어들을 그때 처음 실생활로 접했다. 시민단체의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영문도 모르고 연체하다 쫓겨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응 메뉴얼’을 펴낸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쫓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있다. 첫 번째 단계가 일단 월세를 막는 것이다. 계좌를 막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쉽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공탁 제도를 모르는 경우도 많고, 매달 공탁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 만으로도 세입자에겐 나가라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자혁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상임활동가도 “명도소송을 걸 수 있는 가장 쉬운 조건 중의 하나가 월세를 3기분 이상 연체하는 것이다. 임차인이 공탁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일단 계좌부터 닫고 본다”고 설명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영주 변호사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해당 조항은 임대인과 함께 임차인의 의무를 약속한 조항이다. 일부 임대인이 법조항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법 취지에 맞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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