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수자” 인식의 전환 이뤄질 때 혐오와 차별도 사라져[창간기획-혐오를 넘어](4)

이영경·유설희·유수빈·김찬호 기자 2017. 10. 3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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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수자성
일러스트 | 정재윤

내 안의 ‘소수자성’을 돌아보는 것은 타인을 향한 혐오를 넘어서는 첫걸음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권력으로 짓눌리는 약자의 자리에 놓이고, 인종이나 계층 때문에 편견의 대상이 되고, 불평등한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 같은 내 안의 ‘소수자성’을 포용하는 것은 다른 시민을 이해하고 손 내밀며 연대하기 위한 마중물과도 같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사람은 어떤 측면에서는 소수자일 수밖에 없다. 나도 권력의 한 측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질 때 혐오와 차별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킹홀리데이로 영국 와보니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경상도 출신의 남성 박영진씨(27·가명)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자신이 ‘소수자’이거나 상대적 약자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3년 전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약 2년간 체류하기 전까진 그랬다.

한국에서 최소 자신을 ‘중간계’ 정도는 된다고 내심 자부했던 그는 영국에서 ‘영어 구사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아시아계 이방인’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심리적 충격을 경험했다. 유학생도 아니고 번듯한 직장도 없는 주변인에게 세상은 다른 곳이었다. 사회적 주류에 섞일 수 없는 환경에 처하니 이민자·노숙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런 소수자를 바라보는 현지 사회였다. 동성애자나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영국 사회에서는 노숙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달랐다. 박씨는 “한국에서는 노숙인을 삶의 의지가 없는 개인 문제로 보는 반면, 영국에서는 치솟은 주거비용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사회문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더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노숙인은 멸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지만 영국에서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씨는 “요즘 흔히 ‘취존(취향존중)해달라’고 말하는데 개인의 문화적 선호나 소비취향일 때가 많은 반면, 실제로 성적지향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존중은 아주 약하다”면서 “스스로 소수자 혹은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매우 부족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이민자와 비슷한 환경에 처하면서 나도 약자가 될 수 있고, 나보다 더 약자도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성애, 선택 문제 아냐…상처 보듬는 사회 돼야” - ‘나’를 드러낼 수 없는 클로짓 게이

“솔직히 꿀릴 게 없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정훈씨(34·가명)는 이렇게 답했다. 명문 약대를 졸업해 약국을 운영하며 고소득을 올리고 있고 건장한 체격에 외모관리도 철저하다. 지난해부터는 애인과 함께 승마를 배우고 있다. 김씨는 학벌·경제력 등 여러 조건에서 ‘사회적 강자’로 분류될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클로짓 게이(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릴 때는 ‘우정샷’이라고 쓴다. 김씨는 몇 년 전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담당 PD로부터 “당신처럼 잘난 사람이 왜 자기표현이 위축돼있냐”는 말을 듣고 펑펑 울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는 데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씨가 성적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이유는 세상의 수군거림으로부터 가족들이 받게 될 상처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커밍아웃을 하는 게 너무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며 “애인은 어머니에게 ‘네가 우리 가족의 치욕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용기를 내 오래전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는 “10년 전 커밍아웃을 했는데 거의 7~8년을 다툰 끝에 가족에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지난 추석 때는 김씨와 애인이 함께 성묘를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 두 아들들 와줘서 고맙다. 두 아들들이 행복하니까 아빠도 행복하구나’라는 아버지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김씨는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지만 가족이 인정해주니 가슴이 벅차면서도 부모님께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김씨는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인종이나 성별 같은 조건을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는 “건강한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약자고, 유복한 집안에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약자다”라면서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벌로 순위 정하던 나, 이젠 비정규직에 공감” - ‘엄친딸’에서 기간제 교사로

이희영씨(29·가명)는 서울 강남에 거주하며 이름난 특목고와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 외모도 뛰어나 ‘엄친딸’로 불렸다. 학창 시절에는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현재 그는 무직의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이씨는 “어릴 때는 ‘학벌’이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였고 어떤 무리에 끼게 되면 학벌로 내심 순위를 정해 ‘내가 쟤보다 낫다’고 판단하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씨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진다. 임용고시에 거푸 떨어지면서 기간제 교사로 취업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선생님 다음 학기 때는 뭐 공부해요’라고 물으면 ‘난 다음 학기 없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볼 때면 위축될 정도로 자존감이 낮아졌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독립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비정규직에겐 정규직보다 문턱이 더 높았다. 이씨는 “공립학교라 기간제라는 이유로 눈에 띄는 차별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더 눈치를 보며 일해야 했다. 1년 후 재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한 경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졌다. 이씨는 “괜찮은 타이틀이 나에겐 당연했는데 그게 없어지고 나니 사회적 약자들이 보였다”고 말했다. 노력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씨는 학벌피라미드의 허위를 깨닫게 됐다. 그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고, 학생들이 대학 진학 중심의 공교육 속에서 약자로서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다시 학교로 간다면 기회가 없는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헌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젠 주변 풍경을 볼 때도 보이지 않는 약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주변 상가의 가게 간판들이 자꾸 바뀌는 것을 보면 “월세가 자꾸 올라 자영업자들이 힘든 건 아닐까” 생각한다. 건물주는 앉아서 쉽게 자산을 늘리는 반면 노동자들이 임금 후려치기를 당하는 현실이 과연 온당한가, 그는 생각한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이영경·유설희·유수빈·김찬호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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