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까지 줄면 우린 벼랑끝..해외로 공장 옮길수밖에"

이영욱,안갑성,송민근,최현재 2017. 10. 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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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시간 행정명령 파장 ◆

"한창 내년 경영계획을 세우고 투자와 인력 채용 계획을 짤 때인데, 회사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망할까 걱정만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중소기업 현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현장의 실상을 무시한 정치권 탁상공론에 중소기업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6일 찾은 인천 남동공단의 자동차 부품회사 C사 사장은 "우리는 중국의 사드 보복도 이겨낸 회사예요. 그런데 사드보다 근로시간 단축이 더 무섭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이 회사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 40여 개국에 자동차 부품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400억원대를 올리는 등 18년간 안정적인 운영을 해왔다. 특히 2010년대 초 중국에 진출했고 작년 그 거센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중국법인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떨고 있다.

C사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계가 여야의 11월 정기국회를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여야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기업 규모별 시행 시기와 휴일수당 할증률에 대한 막판 조율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C사 사장은 "정부가 아무리 대선 공약으로 정책을 내놓았을지라도 현장 상황을 감안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번 정부의 친중소기업 성향을 기대하고 지지했는데, 이렇게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지는 진짜 몰랐다"고 말했다.

11월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안산 반월공단의 한 금형공장 모습. 제조 중기업계는 현행 68시간인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면 2교대를 3교대로 전환해야 하며 이에 따른 엄청난 인력 부족을 우려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반월공단에서 만난 한 사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내년 초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직원들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내수 부진으로 일감이 줄어든 데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초대형 악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건실한 이 회사가 명예퇴직을 실시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뿐이다. 이 회사 사장은 "따져보니 올해 이익은 매출액 대비 2% 달성도 힘든데, 인건비는 당장 매출액 대비 12~15%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올해는 명예퇴직 단행으로 넘긴다지만 앞으로 근로시간마저 단축되면 늘어나는 인건비에다 구인난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제조 중기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외국인 근로자라도 더 채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채용 공고를 내도 국내 인력이 지원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한 주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제조 중소기업에 할당된 외국인 근로자 도입쿼터가 4만2300명"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내년에는 적어도 두 배 이상 늘어난 10만6000명을 도입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일자리 창출'이라는 취지가 퇴색할 수 있어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직원 50여 명이 근무하는 안산 소재 금형업체 B사는 내년 초 계획한 신규 채용을 전면 백지화했다. 이 회사 사장은 "내년에만 인건비가 3억원가량 늘고, 갈수록 부담이 늘어만 갈 텐데 어떻게 버틸지 암담하다"고 말했다. 이 지역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중소기업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격앙된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공업용 밸브 제조업체 D사 대표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갖춰 실적이 15% 반짝 좋아졌다고 한다. 실적 개선으로 직원을 몇 명 신규 채용할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생각지 못한 수준으로 오르자 생산성 향상 효과도 물거품이 됐다. 회사 대표는 "내년에도 신규 채용을 몇 명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뽑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근로시간 단축마저 전격 실시되면 해외로 가는 수밖에 더 있겠냐"고 힘없이 말했다.

인천 소재 가구 업체 E사 대표는 내년 신규 투자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지금 상황에서 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구조조정만은 안 하려고 버티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폐업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주변 중소기업 대표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단축되면 가장 피해가 큰 업종은 제조업이다. 추가 부담이 7조4000억원(60.2%) 늘어난다. 이어 운수업(1조원), 도소매업(8900억원), 숙박음식업(8200억원) 순으로 영세 기업이 많은 업종의 부담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중소기업이 76.9%로 대기업(37.1%)보다 높았다.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은 인력 부족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국내 중소기업 경쟁력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중기업계는 인력난과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300인 미만 기업을 4단계로 세분화해 근로시간 단축 시행 시기를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휴일근로 할증은 중복 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50% 가산수당만 적용하고, 특별연장근로가 필요한 기업은 노사 합의로 허용하자는 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 단축은 불가능한데, 사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현장과 괴리된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스마트워크가 가능한 작업 환경을 위한 관련 규제부터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욱 기자 / 남동 = 안갑성 기자 / 반월 = 송민근 기자 / 시화 =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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