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 엄마 생각하며 울고 싶은 당신을 위한 영화

[리뷰] 채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7.10.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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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엄마가 있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단칸방에서 정신지체로 일곱 살 같은 서른 살 아들과 같이 산다. 그런데 엄마가 덜컥 죽을병에 걸렸다. 눈물 쏟을 각오를 하고 봐야 하는 영화 '채비'다.

'채비'는 정신지체 아들을 두고 먼저 떠나야만 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엄마는 평생 조심스러웠다. 아들을 두고 혼자 어디 간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다. 눈 뜨자마자 밥 달라는 아들. 계란 후라이를 두 개 하면 둘 다 홀랑 먹어버리는 아들. 한눈팔면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 애를 태우게 만드는 아들. 덩치만 컸지 7살 어린이와 다를 바 없다.


엄마는 예수쟁이가 싫다. 전도하는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있으면 날 이렇게 했겠냐"고 되받아친다. 장애인 자립을 도우려는 구청 직원에게도 "우리 애는 안되요"라고 도리칠 친다. 예쁜 옷은 언감생심, 노랗고 빨갛고 초록인 신호등 같은 옷만 입는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는 아들. 목사님은 착해서 좋고, 구청 직원은 싫고, 예쁜 유치원 선생님은 몰래 찾아가 망원경으로 훔쳐보기 바쁘다.

덩치 큰 정신 지체 장애인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딴 뜻이 없는데도 딴 뜻이 있는 것처럼 바라본다. 그런 시선 때문인지, 착하기만 한 아들은 종종 돌변해 사람들에 달려든다. 그때마다 파출소를 찾아가 고개 숙이는 게 일인 엄마. 그런 엄마에게 "밥 달라"고 하는 아들.


"아들과 한 날 한 시에 죽는 게 소원"이라는 엄마는 어느 날 길어야 1년이라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듣는다. 어찌해야 할까, 같이 죽을까, 그러자니 눈물겹다. 홀로 남겨둘까? 그러자니 들여 보낼 시설도 마땅찮다. 시집갔다가 이혼하고 홀로 애 키우는 딸에겐 부탁도 쉽지 않다.

엄마는 채비를 한다. 아들이 홀로 살 수 있는 준비를 한다. 쉽지 않다. 그래도 그 길을 돕는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과연 엄마는 아들이 홀로 설 채비를 다 할 수 있을까, 그런 엄마를 아들은 잘 떠나 보낼 수 있을까.

'채비'는 울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라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건 예고된 수순이다. 영화는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채비'가 다른 건, 눈물을 애써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재가 주는 눈물이 예고된 만큼, 떠날 준비와 홀로 서게 만들 준비를 하면서 눈물을 쥐어 짜진 않는다.

'채비' 속 세상은 따뜻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지만, 도우려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멸시하는 사람보단 따뜻하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담았다. 장애인과 동행하려는 사람들, 서로를 돕는 장애인들을 가득가득 담았다. 가난과 장애를 낮게 보는 시선은 배제하고, 같은 눈높이로 앵글을 맞췄다. 조영준 감독은 '채비'를 뻔한 소재로 만들었지만 선한 의도를 곳곳에 담았다. 클리셰가 가득하지만, 진부해도 그리됐으면 하는 판타지로 만들었다.

'채비'는 뻔하지만 특별하다. 이 뻔한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건, 2017년 대한민국에 장애인 학교를 만들게 허락해 달라며 무릎 꿇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고두심이 엄마를 맡았다. 김성균이 아들을 맡았다. 유선이 딸을 맡았다. 박철민이 복지 계장을 맡았다. 신세경이 아들이 짝사랑하는 유치원 선생님을 맡았다. 각각이 맡은 전형적인 역할이 마음을 움직인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살려달라"고 교회에서 기도해 본 사람이라면, 엄마 생각하며 펑펑 울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채비'를 보고 후련해질 수 있을 것 같다.

11월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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