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천 칼럼] 촛불 1년과 피고인 503 박근혜의 착각

박관천 2017. 10. 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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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천 본지 편집국 전문위원

2016년 10월 24일 잔뜩 흐린 하늘에 가을비가 내렸다. 이날 오후 2시경부터 필자의 전화기가 불이났다. 약 21개월 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미움을 사게 됐던 "이나라 권럭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문제는 정윤회보다 최순실이다. 최순실은 분명 더 큰 사고를 칠 것이다"는 발언의 배경을 묻는 내용이었다. 이어진 언론의 최순실 테블릿PC 보도로 국정농단 게이트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의 뚝이 무너지는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그보다 약 3~4개월 전, 2016년 7월 한 방송사의 미르K스포츠 강제모금 보도를 접할 때였다. 미르K스포츠 사태가 터지기 며칠 전 2016년 7월 초 필자의 집으로 찾아왔던 기자들과 포장마차로 향했다. 술이 몇 순배 돌 때 쯤 충격적인 단어를 접했다. 최순실, 정유라(유연), 승마, 김종 차관, 미르K스포재단...... 순간 손이 떨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등을 돌렸지만 뒷머리는 싸늘해 졌고 한여름임에도 한기(寒氣)가 엄습했다.

 미르K스포츠 보도가 나간 후 해당 언론사 중요간부의 비리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시중의 반응은 당시 법조비리에 연루 된 홍만표씨와 우병우 민정수석과의 연루의혹을 보도 한 것에 대한 괘씸죄라는 것이었으나 필자는 박 전 대통령을 더 격분시킨 것은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2016년 10월 24일 판도라 상자였던 테블릿PC가 열리고 정권의 뚝이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인식은 유리궁전 속 얼음공주였다. 테블릿PC속에 어떤 내용이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첫 보도 때 공개 된 자신의 연설문에 대해서만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때부터 박 전 대통령의 착각은 시작된 것이다. 테블릿PC에 저장 된 충격적 문서가 공개되고 촛불이 타기 시작하자 국면전환용 카드로 개헌을 제시했지만 화재가 건물전체로 번진 후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여 불을 끌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촛불이 뜨거워지자 당사자인 최순실이 독일이라며 한 언론사와 단독인터뷰를 했다. 내용을 보니 최순실의 거짓말이 이미 도를 넘어 국민을 우롱하고 있기에 그때까지 말을 참았던 필자는 한 언론인에게 "최씨가 조금이라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국민앞에 솔직하게 석고대죄(席藁待罪)해 동정심이라도 얻는 것"이란 취지의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그해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의 예상과 달리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고 국민의 눈길은 헌번재판소를 향했다. 3개월 동안의 헌번재판소의 탄핵심리 중 국민은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이 무엇인가 진실을 말해주기 바랬지만 그런 기대마저 저버린 채 국민의 이해만을 바랬다.

 착각의 연속은 현직 대통령 첫 파면을 선고한 3월10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 당일 아침에도 참모들로부터 기각 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고 생중계마저 의문을 가졌다 하니 참으로 통탄스럽다.

 재임 중 법과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던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이를 무너뜨렸다.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여야 할 박 전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고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망토로 활용한 박 전 대통령측 변호인은 재판부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최근에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하리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 없다"는 심경표명과 함께 사법부의 재판을 공식 보이콧 하면서 자신이 심심치 않게 주장했던 법치주의까지 훼손하며 피고인 박근혜가 기대한 것은 무엇일까.
 한때 그분을 대통령으로 모셨던 사람으로써 한마디 해야 겠다. "착각의 늪에서 속히 벗어나 더 이상 당신을 믿었던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마시라고......."

 이런 착각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박 전 대통령의 제부(弟夫)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들판에 버려졌던 3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곳을 어슬렁거리던 늑대 무리가 3명의 아이 중 1명만 물고 늑대동굴로 데려가 키웠다. 이후 그 아이는 늑대무리를 가족으로 알고 성장했다"

 이번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는 촛불 1주년 기념집회가 열린다. 이와 함께 태극기 집회도 열릴 예정이라 한다. 1년 전 촛불은 성난민심이었고 태극기는 촛불에 맞섰다. 내일의 집회는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라보는 희망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박관천 전문위원 parkgc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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