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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인터뷰] ‘침묵’ 최민식 “관객수 연연 無...미치는 맛에 연기 한다”

“장르가 최민식”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배우 최민식은 얼마나 인고의 연기를 펼쳐왔던가.

배우 최민식 /사진=CJ엔터테인먼트




‘연기 神’ ‘카리스마’ ‘갓민식’ ‘눈빛만으로 표현이 되는 배우’ 등 최민식을 향한 수식어는 한결같이 ‘연기’로 귀결된다. 천생 배우다.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의 만남에서도 최민식은 ‘연기’를 논할 때 가장 뜨거웠고, 눈빛이 빛났다.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에서 보인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집중력과 눈빛이었다.

‘침묵’은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쫓는 남자 임태산(최민식)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최민식은 극 중 재벌 총수 임태산 역을 맡아 물질만능주의의 민낯부터 부성애까지 복합적인 연기를 펼쳤다.

11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침묵’과 관련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최민식에게 숱하게 영화를 내놨음에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떨림이 있는지 물었다. 최민식은 “항상 있다. 떨린다는 개념 자체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잘 전달될까하는 생각에서 나온다. 관객들의 리액션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재미가 쏠쏠하다. 상영되는 타임 내내의 공기가 있는데, 그걸 보면 영화의 반응이 파악이 된다. 언론 관계자들의 반응이 냉혹할 수 있는데, 다행히 언론시사회 때 영화를 잘 따라오시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다행히 안 꺼내시더라.(웃음)”라고 털어놓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침묵’은 1999년 ‘해피엔드’ 이후로 정지우 감독과 18년 만에 재회한 작품. 한국영화사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해피엔드’로 정지우 감독은 성공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고, 최민식은 치정극의 깊이를 표현할 줄 아는 배우로 스펙트럼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성공적인 작품을 함께한 기억을 안고 18년 만에 다시 만난 소감은 어땠을까.

“같이 일한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었다. 얘기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정지우 감독과 내가 입담이 좋아서 옛날 얘기부터 별 얘기, 잡담을 다 나눴다. 이번에 ‘해피엔드’ 때 얘기도 하면서 술도 많이 마셨다. 20년에서 2년 빠진 세월이 짧지는 않은데 ‘너랑 나랑 아직까지 먹고살고 있구나’라는 얘기도 나눴다. 현장에서 확 몰입하다가도 이후 장면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가 많다. 그러면 ‘감독이 참 변한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자체(영화로 다시 만난 것)가 감사한 일이구나 싶었다. 영화가 아니면 18년간 떨어져 있다가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배우 최민식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감독과의 첫 작품에서 청불 등급의 워낙 강렬한 치정 스릴러를 함께 했던 터라 이번 시나리오도 기대감이 높았을 법하다. 어떤 점이 18년 만에 감독과 최민식의 만남을 성사시키도록 이끌었을까.

“영화에서는 원작보다 휴머니즘이 더 많이 들어갔다. 원작은 법정스릴러적인 요소가 많이 부각되는 작품이었다. 진범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재미를 전하는 걸 우리가 원할 것인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한 번 더 뒤엎고 부성애, 임태산의 상실감에 귀결될 것인지를 고민했다. 전원 후자에 일치해서 결론을 얻었다. 원작을 그대로 리메이크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가 않았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처절한 참회와 자기반성까지 보여준다. 그게 작품을 한 가장 큰 이유다. 정지우 감독, ‘올드보이’ 때의 임승룡 프로듀서까지 옛 전우를 만나는 것도 좋았다. 사람이 좋았기 때문에 작품은 뭐가 되었더라도 같이 하고 싶었다. 프로페셔널한 분들이라 완성도 측면에서 믿음이 있었다.”

“원제는 ‘침묵의 목격자’였다. 처음엔 60~70년대 홍콩 느와르인가 싶었다.(웃음) 옛날에 ‘쉬리’ 찍었을 때도 강제규 감독과 ‘푹 쉬는 거 아니냐’고 농담한 적이 있는데, 맨 처음엔 제목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마지막 엔딩에서 대사가 없기도 하고 ‘침묵’이라는 단어가 많은 걸 내포하고 있어서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장황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침묵’에서는 약혼녀를 잃은 임태산이 딸마저 잃을 위기에 놓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딸의 무죄를 만들려 고군분투한다. ‘돈이 곧 진심’이라던 물질만능주의 임태산은 인생에서 실패해본 적 없던 삶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임태산식 해결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진범을 밝히는 법정 스릴러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아버지의 처절한 사투와 부성애를 전하는 드라마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 보이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겠다. 살인마 유영철을 검거했던 형사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유영철의 엄마가 그렇게 찾아와서 유영철을 애지중지 챙기더라. 엄마는 무슨 죄이겠느냐. 자기 자식이 살인마라도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더라. 임태산이 중산층 아빠였다면 결과가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것이다. 임태산의 많은 재산이 중요한 장치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최민식은 영화의 특성상 줄곧 맥락을 숨기면서 다양한 계산을 안고 연기해야 했다. 그가 짚은 임태산의 빅픽쳐들은 이렇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페이크’였다. 임태산은 유나가 미라를 죽이는 게임 영상을 보고서 ‘내가 이 게임회사 지분이 있는데 이 영상을 보면 유저가 몇 배 더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에 뿌려라’면서 돈만 생각한다. 페이크이지만 본능적으로 충격 속에서 돌파구를 아는 사람이다. 사람이 죽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업가적 마인드를 동시에 가지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이 사람이 본능적으로 그런 용의주도함이 있겠다 생각했다. 최희정 변호사(박신혜)를 선임했던 것도 하나의 전략이었다. 관객들은 임태산을 ‘나쁜 놈’이라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영화적인 장치였다.”

배우 최민식 /사진=CJ엔터테인먼트




임태산으로 분해 대부분의 장면에서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터.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했다. 인간적인 고뇌를 넣으면서 연기해야 해서 복잡했다. 감정과 디테일 조절에서는 감독이 도와줬다. 그런 작업이 재미있었다. 디테일이 많았고, 컷도 다양한 버전이 있었기 때문에 몇 부작에 걸쳐 내용을 더 보여주면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최민식의 명품연기는 내면의 솔직함에서도 나온다. 그걸 보여주는 예로 배우 이하늬에 대한 평가가 있다. 최민식은 지난 24일 ‘침묵’ 언론시사 기자간담회에서 약혼녀 유나 역을 맡아 연인 관계로 호흡을 맞춘 상대 배우 이하늬에 대해 “솔직히 우려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에 이하늬 씨의 연기에 반했다. 마음속에 넓고 깊은 그릇도 봤다. 사람은 겪어봐야 알겠구나. 제 알량한 잔재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이하늬라는 배우에 대해 놀랐다. 아주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같이 연기하면서도 짠했다. 아픔을 아는 사람 같았다. ‘어떨까?’하는 선입관이 있기도 했다. 요트 위 장면에서 ‘많이 부담스럽지?’라고 애드리브를 했는데 바로 받아치더라. 어떻게 보면 이하늬 배우 나이에 걸맞지 않은 100% 상상에 의해 맛을 내야 했던 장면이었다. 미라가 임태산을 위해 배려하는 과정에서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줬다. 되게 믿음직스러웠다. 세상, 사람,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친구라 생각했다. 국악이 한(恨)의 예술인데, 그걸 해서 그런지 깊이가 있더라. 너무 만족스러웠다.”

누구나 그의 연기력을 인정하지만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 자세에서도 최민식의 쉼 없는 발전의 이유가 엿보였다. 최민식은 앞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침묵’으로 함께 연기한 배우 박신혜, 이하늬, 류준열, 박해준, 조한철, 이수경 모두에 대해 “아우님들의 덕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배로서 ‘나를 잘 따라줬다’는 예상과 반대되는 입장의 겸손한 발언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덕질 하는 게 낯간지러운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안 좋은데 좋다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만약 진짜 안 좋았으면 대답을 안 했을 것이다. 모두 똑똑하게 연기를 잘 했다. 이수경은 ‘특별시민’ 때부터 잘할 줄 알아봤다. 내가 극 중에서 모든 인물들과 다 부딪히는데, 내가 쑥 들어갔을 때 이 친구들이 잘 해주지 않으면 앙상블과 신이 망가져버린다. 이를 테면 집집마다 방문하는 느낌이었는데, 집집마다 잘 대접받고 나온 기분이었다. 그 친구들이 파도를 만들어주면 내가 거기에 타고 있으면 됐다. 복이라 생각했다. 참 좋은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정감독과도 ‘복덩어리들’이라 얘기했다. 특히 이런 맛이 나는 작품은 어느 한쪽이 휘청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는데 큰 덕을 봤다.”

최민식을 직접 만나기 전까진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범접하기조차 힘들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들이 있다. 그간 수많은 필모그래피에서 보인 묵직하고 강렬한 연기 때문이다. 1989년 영화 ‘구로 아리랑’으로 데뷔해 ‘서울의 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넘버 3’ ‘조용한 가족’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쉬리’ ‘해피엔드’ ‘파이란’으로 깊이를 더한 후 2002년 개봉작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하는 영예를 얻었다.

2003년 ‘올드보이’로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 해외에서도 공신력 있는 배우로 영향력을 끼쳤다. 이후 ‘꽃피는 봄이 오면’ ‘주먹이 운다’ ‘친절한 금자씨’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으로 국내외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다. 역대 천만 관객 동원 1위작 ‘명량’을 탄생시켰으며 올해는 ‘특별시민’과 ‘침묵’ 두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았다.

배우 최민식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대한민국 명불허전 연기파 배우’로 불리고 있음에도 최민식은 스스로에 대해 허당스러운 면모도 충분히 보일 거라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만난 최민식은 어떠한 주제에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호쾌한 웃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친근함과 흡인력이 있었다.

“실제 나를 만나고 ‘허당이네’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겠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 그건 하나의 연기일 뿐이다. 대중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속상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는 일이다. 또 다르게 보여줄 게 있으니까 재미있는 것 같다.”

50대 중반임에도 최민식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이고 생기가 가득하다.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눈빛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그에게 새삼스레 연기의 원동력을 물었다. 언제 봐도 신기할 정도의 집중력이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 항상 있다.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에게도 한 마리의 슬픈 짐승 같은 연민이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아열대의 밤’이 원제였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카니발의 아침’ 연주곡이 생각났다. 바로 음악을 찾아 듣고 읽은 후의 잔상을 같이 생각했다. 그 영향으로 ‘모그’와도 음악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권력, 돈이 얼마나 있든지 간에 사람들이 측은하게 느껴지더라. 그게 연기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짠하고 애처롭다. ‘특별시민’ 변종구도 참 애쓴다고 생각한다. 그 행위와 몸부림을 측은지심으로 보게 된다.”

‘명량’으로 ‘천만배우’라는 수식어까지 더 이상 오를 데가 있을까 싶은데 최민식은 여전히 연기에 미쳐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최민식의 ‘즐김’에 그 어떤 난해한 캐릭터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부담감이 없으면 거짓말이다. 천만 관객도 이순신 장군님 덕에 잘 얻어걸려서 호사를 누렸다. 내 소박한 소신인데, 연기는 내가 좋아야 한다. 되게 이기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취향은 항상 가변적이고 뜬구름이다. 이 세상에 없는 허상을 잡는 것 같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동료들이 만족할 때 결과물이 좋은 것 같다. 그럼에도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는데, 누굴 탓할 수는 없다. 흥행을 좇아서 기획적으로 접근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미쳐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뭔 의미가 있는가. 미치는 맛에 연기를 하는데... 너무 관객 수에 연연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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