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파수꾼’ 갈대가 피워낸 계절의 맛

입력 2017.10.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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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꼿꼿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가을의 파수꾼이다.

가을 낭만을 들고 찾아온 갈대가 피워낸 맛과 고된 삶에도 유연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KBS '한국인의 밥상(26일 저녁 7시 35분, 1TV)이 만났다.



'갈대의 바다' 순천만, 풍경이 아닌 삶의 터전


전남 순천만은 매년 가을이면 금빛 갈대밭을 보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외지인에게 순천만은 풍경거리지만 마을 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한때 갈대는 마을 사람들의 수입원이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갈대를 꺾어 인삼밭 가림막으로 내다 팔았다. 갈대꽃이 필 때면 갈대를 베어 빗자루를 만들고, 날이 추워지면 땔감으로 썼다. 갈대 뿌리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해서 캐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갈대를 베려는 사람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어부들이 전통 어구(漁具)인 소사리를 들고 갈대밭으로 장어와 대갱이(망둑엇과의 개소겡)를 잡으러 나간다. 대갱이는 생김새가 특이하다. 장어나 미꾸라지처럼 몸이 길고 매끈매끈한데 앞으로 돌출된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에게 대갱이는 손꼽히는 별미다. 말린 대갱이를 두드려 만든 대갱이 무침은 마을 어른의 대표적 술안주다.

내륙의 습지 우포늪, 갈대가 품은 생명의 맛

창녕 우포늪 일출창녕 우포늪 일출

경남 창녕군에는 우리나라 최대 내륙습지인 우포늪이 있다. 멸종위기동물과 여러 희귀 식물이 사는 우포늪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7월 '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98년에는 국제습지보호협약인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99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우포늪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정화 작용이 뛰어난 갈대의 공이 크다.


우포늪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지만, 10명 남짓한 사람들은 허가를 받아 어부로 일한다. 남편이 남기고 간 쪽배를 타며 고기를 잡는 최영자 씨도 그중 하나다. 홀로 고기를 잡은 지 어느덧 22년. 바쁘게 살아와 우포늪 갈대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제 최 씨는 자식과 함께 갈대가 있는 가을을 보내려 한다.

은빛 억새 물결, 민둥산 오지 마을

억새는 모양이 비슷해 흔히 갈대와 착각하지만,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와 달리 산에서 핀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은 특히 억새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가을 문턱에서 피어올라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른다.


정작 민둥산 인근 마을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억새가 아니라 가을 달래를 넣은 달래가수기(콩을 섞어 만든 손칼국수)와 더덕빡작장(강원도식 막장찌개)이다. 달래가수기와 더덕빡작장을 끓이기만 하면, 동네 사람이 모여들어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강진만 갈대숲,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탐진강(耽津江)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진 것이 넓은 갯벌과 갈대밭을 품은 강진만이다.

예전부터 갈대밭이 있는 갯벌은 바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강진만 습지와 갯벌은 총 1천131종의 생물이 서식해 주린 배를 채우고 자식을 키울 수 있게 했다.


강진만 갯벌을 누비며 짱뚱어를 잡는 이순임 씨는 14살 때부터 짱뚱어 낚시를 한 달인이다. 이 씨는 50년 넘게 갯벌을 지키며 낚시를 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짱둥어를 푹 고아 만든 '짱뚱어고'를든다. 짱둥어가 만들어 낸 갯벌의 맛을 만나 본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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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의 파수꾼’ 갈대가 피워낸 계절의 맛
    • 입력 2017-10-26 15:56:51
    생활·건강
갈대는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꼿꼿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가을의 파수꾼이다.

가을 낭만을 들고 찾아온 갈대가 피워낸 맛과 고된 삶에도 유연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KBS '한국인의 밥상(26일 저녁 7시 35분, 1TV)이 만났다.



'갈대의 바다' 순천만, 풍경이 아닌 삶의 터전


전남 순천만은 매년 가을이면 금빛 갈대밭을 보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외지인에게 순천만은 풍경거리지만 마을 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한때 갈대는 마을 사람들의 수입원이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갈대를 꺾어 인삼밭 가림막으로 내다 팔았다. 갈대꽃이 필 때면 갈대를 베어 빗자루를 만들고, 날이 추워지면 땔감으로 썼다. 갈대 뿌리가 항암작용을 한다고 해서 캐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갈대를 베려는 사람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어부들이 전통 어구(漁具)인 소사리를 들고 갈대밭으로 장어와 대갱이(망둑엇과의 개소겡)를 잡으러 나간다. 대갱이는 생김새가 특이하다. 장어나 미꾸라지처럼 몸이 길고 매끈매끈한데 앞으로 돌출된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에게 대갱이는 손꼽히는 별미다. 말린 대갱이를 두드려 만든 대갱이 무침은 마을 어른의 대표적 술안주다.

내륙의 습지 우포늪, 갈대가 품은 생명의 맛

창녕 우포늪 일출
경남 창녕군에는 우리나라 최대 내륙습지인 우포늪이 있다. 멸종위기동물과 여러 희귀 식물이 사는 우포늪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7월 '생태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98년에는 국제습지보호협약인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99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우포늪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정화 작용이 뛰어난 갈대의 공이 크다.


우포늪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지만, 10명 남짓한 사람들은 허가를 받아 어부로 일한다. 남편이 남기고 간 쪽배를 타며 고기를 잡는 최영자 씨도 그중 하나다. 홀로 고기를 잡은 지 어느덧 22년. 바쁘게 살아와 우포늪 갈대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제 최 씨는 자식과 함께 갈대가 있는 가을을 보내려 한다.

은빛 억새 물결, 민둥산 오지 마을

억새는 모양이 비슷해 흔히 갈대와 착각하지만,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와 달리 산에서 핀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은 특히 억새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가을 문턱에서 피어올라 겨울이 오기 직전까지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른다.


정작 민둥산 인근 마을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억새가 아니라 가을 달래를 넣은 달래가수기(콩을 섞어 만든 손칼국수)와 더덕빡작장(강원도식 막장찌개)이다. 달래가수기와 더덕빡작장을 끓이기만 하면, 동네 사람이 모여들어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강진만 갈대숲,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탐진강(耽津江) 물줄기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진 것이 넓은 갯벌과 갈대밭을 품은 강진만이다.

예전부터 갈대밭이 있는 갯벌은 바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특히 강진만 습지와 갯벌은 총 1천131종의 생물이 서식해 주린 배를 채우고 자식을 키울 수 있게 했다.


강진만 갯벌을 누비며 짱뚱어를 잡는 이순임 씨는 14살 때부터 짱뚱어 낚시를 한 달인이다. 이 씨는 50년 넘게 갯벌을 지키며 낚시를 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짱둥어를 푹 고아 만든 '짱뚱어고'를든다. 짱둥어가 만들어 낸 갯벌의 맛을 만나 본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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