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기자의 현장+] 손가락질 받는 '안중근 동상'..추모의 벽은 '조잡·엉망·엉터리' 철거해야

김경호 2017. 10. 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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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시 뛰지 않아 / 추모의 벽 동판에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딴판 /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네 번째 손가락(약지) 한 마디가 그대로 있어 / 추모의 벽에 새겨진 글귀는 엉터리로 가득 / 조마리아 여사(안중근 의사 어머니)는 편지를 쓰지 않아 / 서양의 ‘영웅’으로 묘사 / 대한독립 글씨체도 달라 / 고증을 거친 후 다시 공원을 조성해야 / 중국 작가 탓할 일이 아니야 / 부끄러운 현실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좌상. (왼쪽)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오른쪽)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안중근 의사 동상을 제작했나? 묻고 싶다.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 의사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두 아들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전언이라고 새겨야 맞다. 편지는 아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글귀를 새긴 게 아닌가 싶다. 약지 한마디가 잘린 왼손·대한독립 글씨체·출처·유언 장면 등 조잡하고 낯 뜨거워서 볼 수가 없다.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

◆  시진핑 지시로 만든 안중근 의사 동상?…모습이 달라도 너무 달라 

경기도 의정부시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지시로 제작됐다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 지난 20일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공개했다. 시는 지난 8월 초 동상을 설치했으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그동안 천막으로 가려 놓았다.

공개된 안중근 의사 동상은 2.5m 높이의 청동으로 제작됐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 당시 뛰면서 가슴에 품고 있던 총을 꺼내는 모습이다. 동상은 중국 내 유력 민간단체인 차하얼(察哈爾) 학회가 쌍둥이 동상을 만들어 두 개 중 한 개를 의정부시에 기증했다.

차하얼 학회는 2009년 중국 정·재계와 학계에 영향력이 있는 한팡밍(韓方明) 주석이 주도해 만든 단체로, 국제전략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외교·국제관계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내에서도 친한파로 알려진 한 주석은 ‘안중근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평소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 그는 동상 기증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공개 동시에 비난받고 있다. 공개된 동상은 풍채·얼굴·저격 당시 안 의사와 전혀 딴판이라는 것. 안 의사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당시 뛰어가지 않았다. 뛰는 형상은 사실과 다르다.

안 의사는 옥중자서전에 통해 아래와 같이 저격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다.

울분을 참으며 용기 있게 뚜벅뚜벅 걸어 군대가 늘어서 있는 뒤편에 이르니, 러시아 관리들이 호위하고 오는 사람 중에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한 조그마한 늙은이가 있었다.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생각하고 바로 단총을 뽑아 그를 향해 4발을 쏜 다음, 생각해보니 그자가 정말 이토인지 의심이 났다. 나는 본시 이토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잘못 쏘았다면 일이 낭패가 되는 것이라 다시 뒤쪽을 보니 일본인 무리 가운데 가장 의젓해 보이며 앞서가는 자를 향해 다시 3발을 이어 쏘았다. 만일 무관한 사람을 쏘았다면 일을 어찌하나 하고 생각하는 사이에 러시아 헌병이 나를 체포하니 그때가 1909년 10월 26일(음력 9월 13일) 상오 반쯤이었다.

그때 나는 곧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대한 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헌병대로 붙잡혀 갔다.

안 의사는 지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대한 만세’를 세 번 외치면서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세워진 안 의사 동상은 전혀 딴판. 30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50대 얼굴. 안 의사 관련된 자료들로 충분히 검토 후 제작이 가능했다. 조선시대 또는 고려시대의 역사 속 실존 인물은 당시 자료가 없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제작할 수밖에 없지만, 안 의사는 초상화나 당시 활동했던 자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고증을 거치지 않아 큰 아쉬움이 남는다.

동상을 본 이민주(28·남) 씨 “교과서를 통해 배운 안중근 의사와 분위기가 달라서 아쉬운 느낌이 든다. 이게 단순히 다르다는 것을 넘어서서 역사 왜곡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세대들이 여기서 역사 교육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왜곡된 사실들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선임(24·여)씨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 너무 다르다. 얼굴도 너무 험상궂 나왔다. 자세도 다르다. 서양의 ‘영웅’ 같은 느낌이 들고 왠지 어색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인으로서 무게감이 떨어지고, 자세도 달려가는 모양이잖아요. 근엄하고 느낌을 강조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의정부 한 관계자는 “약간의 찬반양론이야 있다. 개막식만 안 했다. 비판이면 닮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작가의 작품성에 따르기로 했다.” 설명했다. 이어 “달려가는 모습은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했고, 작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 안중근 의사 동상 ‘추모의 벽’…‘조잡·엉망·엉터리’로 가득

지난 23일 의정부역 앞 근린공원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 동상을 찾았다.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향해 역동적인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 동상 주변에 둘러싸인 추모의 벽에는 이해하기 더욱 힘들었다.

추모의 벽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 장면’, ‘안중근 의사 좌상’ 동판으로 제작됐고 ‘단지동맹취지문 중에서’, ‘안중근 의사 연보’,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장부가’, ‘목숨이 경각인 아들 안중근에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좌상에는 왼쪽 약지 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돼 있다. (왼쪽)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추모의 벽. 안중근 의사 좌상에는 왼쪽 약지 손가락 한 마디가 그대로 있었다. (오른쪽)


안중근 의사의 좌상은 눈을 의심케 했다. 의연하고 근엄함은 사라지고, 배가 볼록하고 우락부락한 거친 안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작과정에서 다르게 제작될 수 있다고 하지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국 직전 흰색 수의로 갈아입은 안 의사의 모습과 전혀 딴판이었다. 안 의사의 상징인 네 번째 손가락(약지) 한 마디가 그대로 있었다. 고증을 거쳐 제작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좌상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추모의 벽. '목숨이 경각인 아들 안중근에게' 이 시는 이윤옥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에서 '조마리아' 중.


또 다른 추모의 벽에는 ‘목숨이 경각인 아들 안중근에게’ 아래와 같이 시가 새겨져 있다.

아들아 /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칼이든 총이든 당당히 받아라 / 이 어미 밤새 / 네 수의 지으며 / 결코 울지 않았다 /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 비굴치 말고 / 당당히 /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뒤쫓는 날 빛 찾은 조국의 푸른 하늘 푸른 새 되어 다시 만나자 /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이 시는 이윤옥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에서 ’조마리아' 중. 추모의 벽에는 어디에도 이윤옥의 시라는 출처를 밝히지 않아 자칫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 의사를 위한 시로 생각할수 있다.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추모의 벽.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라고 새겨진 추모의 벽에는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편지를 보낼 수 없는 상황. 조마리아 여사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두 아들을 통해 어머니 말씀이 안 의사에게 전달 됐다. 편지(용무를 적어 보내는 글)보다는 전언(말을 전함)이라고 새겨야 맞다. 안중근 관련 단체 한 관계자는 “수의를 보냈으나 손수 지어 보내지 않았다.”며 “사실과 무관한 내용이 추모 벽에 새겨져 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고증을 거치지 않고 새긴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듣다.”고 덧붙였다.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전시 중인 안중근 의사의 유언의 한 장면. (왼쪽)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추모의 벽. 안중근 의사의 유언 장면을 동판으로 제작. 뭔가 어색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다. (오른쪽)


‘안중근 의사의 최후의 유언’ 모습도 달랐다. 옷깃, 사라진 콧수염, 머리 모양, 젊은 안중근이 아닌 늙은 안중근 모습이다. 뭔가 어색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색하다'는 반응이다. 근린공원을 찾은 김민철(49·남) 씨는 “지나다가 들렸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실망했다.”며 “충분한 고증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황석규(29·남) 씨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역사 인물 중에서 자료가 없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정확히 사진도 있다. 이렇게 왜곡시켜 제작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면 누구라도 알고 있다. 이렇게 바꿔서 제작했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난다.”며 “강인하고 절대 굴복하지 모습은 사라졌다. 논란이 계속된다면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잘못된 부분이고 분명히 바로잡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좌상. 좌상 뒤편에는 안중근 의사의 대한독립 혈서 태극기. (왼쪽) 의정부 역 앞 공원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 새겨진 태극기(오른쪽)


의정부시 공보관 한 관계자는 “자료를 수집해서 제작했다. 여러 군데의 자료를 수집해서 제작했다. 다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시 출처에 관련해서 “그 부분도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재차 확인을 못 했냐는 질문에 “저희도 여러 군데에서 자료를 수집해서 제작했다.”고만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네 번째 손가락(약지) 온전한 모습이다는 질문에 “그 부분도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고증을 거쳤는지 질문에 “자료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자료를 어떻게 수집했냐는 질문에 “자서전도 있고 여러 가지 책자도 있다”고만 말했다. 이어 자문했냐는 질문에 “교수님들과 이런 분들께 자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질문에 “그런 것은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 동상을 유치하면 더 좋겠다는 판단하에 유치하게 됐다. 조마리아 여사 자료를 수집하고 자문도 구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의정부시 한 관계자는 “의정부 근린공원은 40억으로 조성했다. 안중근 의사 동상은 약 2억 정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좌상.


안중근 관련 단체 한 관계자는 “다시 제작하거나 철거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더하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며 “외국 작가는 사상과 철학이 달라 다른 모습으로 제작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교육을 받을 후손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것은 또 하나의 역사 왜곡 시작이다.”고 강하게 말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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