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장사 때려치고 승효상 만나 신세계에 눈을 떴죠"

최락선 기자 2017.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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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바로 믿고 맡길 만한 시공사를 찾는 일입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다가 곤욕만 치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땅집고는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건축 명장(名匠)’에 뽑힌 시공사들을 골라 그들이 전하는 건축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명장을 만나다] 김효일 기로건설 대표 “정상가보다 10% 이상 낮은 견적은 조심”

“인생에서 잘 한 일 3가지를 꼽으라면 아파트 짓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은 것,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을 딴 것, 그리고 서울로 올라온 겁니다.”

경북 안동 출신 김효일(54) 기로건설 대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대구에서 하던 일을 접고 서울의 조그만 건설회사 현장소장으로 들어갔다. 그저 그런 집을 짓는 ‘집쟁이’ 생활을 접을 수 있었던 건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딴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 덕분이었다. 건축시공기술사는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실무와 공학적 지식까지 갖춘 인력에게 주어지는 국가자격증이다.

“승효상 선생님이 설계한 ‘산본 제일병원’ 현장에서 일하면서 신세계를 만났어요.그 전엔 목수나 미장들이 집을 짓는 줄만 알았죠. 모든 지시가 디테일하고 설계대로 안되면 수정했죠. 그런 재미에 빠져있는 몇 년 동안 제 기술이 확 늘었습니다.”

김효일 기로건설 대표. 김 대표 우측 빌딩 사진은 가로수길에 있는 시몬느 핸드백박물관, 오른쪽은 김 대표가 강남에 처음으로 세운 빌딩인 유니텔 전자사옥. /최락선 기자

7년 정도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기회가 찾아왔다. 2004년 그의 눈썰미와 손재주를 지켜봤던 지인으로부터 병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직접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직원 9명, 연매출 60억원대 회사로 커졌다.

■현장소장보다 기술력 좋은 CEO

기로건설이란 회사 이름에는 김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으로 ‘기술로’ 건설로 하고 싶었는데 ‘술’이라는 글자가 걸렸다. “제가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가운데 ‘술’자를 빼고 기로건설로 정했습니다. 하하(웃음)”

기술에 대한 집념은 엄격한 품질관리로 이어졌다. 김 대표가 수시로 현장을 찾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골조 공사할 땐 일주일에 두 번, 마감공사를 시작하면 일주일에 세 번씩, 갈 때마다 반나절 이상 머무릅니다. 그래야 하자가 없어요. 건물의 품질에서 현장소장 역할이 제일 중요합니다.”

현장소장이 4번이나 바뀌고, 공사가 중단돼 건축주의 애를 태우던 한 주택 공사도 최근 김 대표의 몫이 됐다. 그는 “기술자가 회사 대표라는 점이 믿음을 줬다”고 했다.

엄격한 품질관리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따로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일감이 저절로 들어온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수주하지는 않는다. 동시에 3~4개 현장이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장이 너무 많으면 김 대표의 ‘현장지도’가 불가능한 탓이다.

“공사 막바지에 건축주랑 싸우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양심껏, 정직하게 일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같이 일해본 건축가나 건축주들이 일을 소개해줘요. 어디가서 일을 달라고 해본적도 없습니다.”

기로건설은 서울 강남 도산공원 인근에 있는 '0914 플래그십 스토어'을 시공했다. 상자 모양의 외관에 작은 집들을 조각하듯 보이는 외관이 인상적이다. /박영채 작가

■5년 연속 건축명장(名匠) 뽑혀

이런 실력을 인정받아 기로건설은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가협회로부터 2013~2017년까지 5년 연속 ‘건축 명장’에 선정됐다. 건축명장 심사는 중소규모 건설사를 대상으로 시공능력에 재무구조까지 꼼꼼하게 평가한다.

기로건설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까다로운 현장은 있기 마련이다. 2015년에 지은 ‘0914 시몬느 사옥’이 그랬다. 좁은 땅을 지하 25m(지하5층)까지 파다보니 옆 건물이 2cm정도 기울었다. 건물 보수공사 외에도 합의금으로 3억원을 썼다.

지상 5층짜리 집인 ‘송파 마이크로하우징’은 건축가가 사전에 승인한 샘플만을 사용하다보니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깐깐한 감리로 인해 재시공이 잦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단했다. 이 프로젝트로 미국 뉴욕건축가협회(AIANY) 최우수상을 비롯해 국내외 5개 상을 휩쓸었다.

서울 송파 마이크로하우징. /SsD건축사사무소 제공

최근 짓고 있는 공사비 110억원대 경기 파주 운정지구 빌딩은 김 대표가 건축주를 설득해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긴 케이스다. 김 대표가 아니었다면 그저그런 상업빌딩이 들어섰을 것이다. 그는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며 “작가들의 개성있는 건물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올 4월 완공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젠틀몬스터’ 사옥을 맡았을 땐 건축주의 무빙룸 아이디어를 설계와 제작을 통해 구현했다. 김 대표는 “건물 밖으로 1.8m까지 나왔다가 다시 건물 내부로 들어가도록 만든 공간은 세계에서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이 곧 사무실”

김 대표는 회사 설립 이후 지금껏 한눈을 팔지 않고 건축가와 협업하는 것을 고집했다.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을 갖췄으면서 대형 현장 위주가 아닌 아뜰리에(소규모) 건축설계사무소의 일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은행에서 돈 빌려서 땅사고 원룸짓는 것을 건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선배들은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의 시대가 지고 있기 때문에 저희 회사 같은 건설사가 앞으로 꼭 필요할 겁니다.”

그는 회사를 더 크게 키울 기회도 있었지만 “현장이 많아지면 품질관리가 어렵다”며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이런 이유로 기로건설은 매출만 따지면 소규모 건설사에 머물러 있다. 사옥은 커녕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건물에 입주해 있다. 사장실은 적막할 정도로 꾸밈이 없다. 2006년 경기 안양에서 서울 양재동으로 회사를 옮길 때 설치했던 에어컨은 누렇게 바랬다. 김 대표는 “현장에 매일 나가있는데 굳이 사무실을 꾸밀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경영자로서 고민은 없을까. 김 대표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인건비와 자재비 얘기를 꺼냈다.

“요즘은 현장 근로자들이 하루 8시간만 일하는 분위기에요. 여름에 건물 외벽의 벽돌을 쌓을 조적공을 구할땐 정말 힘들었어요. 더운데 왜 밖에서 일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구요. 레미콘 견적을 받고 석달이 지나서 계약을 하려니까 가격이 10%가 올랐어요. 1억원 넘게 손해보게 생겼는데, 건축주에게 말은 한번 해봐야죠.”

예비 건축주에게 ‘최저가 시공’의 위험성도 당부했다. 김 대표는 “시공사를 선택할 때 최저가를 선택하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며 “낮은 가격대의 견적서를 비교하더라도 정상가보다 10% 넘게 저렴한 견적서에 대해선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건축주가 재시공을 요구하는 경우에 대해선 “건축가로부터 설명을 듣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구현된 디테일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며 “건축 공부를 많이 하거나 건축가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더라도 발생한다”고 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현재 위치에 만족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꿈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내 집을 좋은 건축가한테 설계를 맡겨 짓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까지 남의 집만 지어줬는데 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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