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치있는 실패'가 성공스토리 만든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일상용어라 할 만큼 익숙한 존재가 됐다. 그 실체와 대응전략에 있어 편차가 큰 주장들이 대두되지만, 초기 단계에서 이는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비판하기 보다는 어떤 측면을 중시한 관점인지 열린 자세로 의미를 찾으려 해야 할 것이다.
필자도 한 목소리를 얹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다. 데이터가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원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는 과거부터 생산되고 있었다. 인간, 자연, 건축물, 운송수단, 각종 기계 그리고 동식물들이 끊임없이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들은 만들어지는 순간 대부분이 사라졌다. 데이터를 포착해 어디론가 보내고 갈무리해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기술과 첨단인프라가 뒷받침됨으로써 별 의미 없었던 데이터가 소중한 자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누가 이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지능적으로 분석·활용할 수 있느냐가 기업과 국가의 미래경쟁력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과학기술은 정부와 민간부문의 강력한 의지를 기반으로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최근 연구성과 부족이라는 심각한 고민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도, 연구현장도, 학계도 그 돌파구를 찾고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아직 속시원한 해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그 단초를 실패에서 찾고 싶다.
그동안 엄청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동시에 버려졌던 데이터처럼, 필자는 연구개발에서 실패 경험과 회피돼 온 가치 있는 실패야말로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는 소중한 자원으로 생각된다. 실패 경험은 드러내기 꺼리는 속성 때문에 양지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 실패가 아닌 것으로 포장하려는 인간의 속성상 실패로 분류되는 양도 실제보다 적고, 실패로 분류된 것조차도 실패 과정에 대한 자발적 기록이 부실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실패로부터 배울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데 실패 사례 속에는 실패의 이유와 더불어 성공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살아있는 정보가 담겨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일본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들이 실패사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학술지까지 등장하는 이유다. 연구현장에 묻혀 있는 연구개발 실패 사례들이 먼지를 털고 세상에 나와 성공을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 노력이 시급하다.
과감한 도전의 부족과 이에 따른 가치있는 실패 부족은 또 다른 요소다. 실패하지 않을 수준의 연구목표를 설정하고 성과를 시장보다는 평가지표 맞춤형으로 내놓으려는 인간적 본능, 냉혹한 시장이 요구하는 수준의 목표설정이 됐는지 그리고 그 목표를 제대로 달성했는지를 엄밀하게 평가할 환경을 갖추고 있지 못한 기획평가관리기관의 한계, 그리고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계적 목표를 설정하고 열정을 불태우도록 돕는 제도의 미비 등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이 가치있는 실패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사실은 대체로 동의되는 듯 하다. 그 대책의 일환으로 성실실패에 대한 면책을 강화하는 제도를 발표하고 있지만, 인간의 엄청난 실패회피 본능과 연구현장의 체감도를 고려하면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과감한 도전의 부족, 가치있는 실패의 부족, 양지로 나오는 실패사례의 부족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실패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이리스크에 도전한 진정한 모험이었다면 그 어떤 성공보다도 가치를 높게 매길 수 있는 제도와 인식이 필요하다. 알파고는 바둑에서 성공한 수뿐만 아니라 실패한 수도 똑같은 비중을 두고 학습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성공스토리에 갇혀 지극히 협소한 학습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엄청난 가치를 내포하고 있지만 회피하기에 급급한 실패, 그 가치있는 실패가 이제 더 이상 성공이라는 우등재에 비교되는 열등재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고, 그래서 더 많이 생산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시켜야 하겠다. 대한민국에 있어 실패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있게 한 데이터만큼이나 소중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우리의 소중한 보물이 아닐까.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볼트EV '유령 하이패스 단말기'논란.."통행료 할인 못받아"
- '고가에 저연비'로 외면받던 대형SUV, 패밀리카로 대반전
- "헤이 카카오"호출에 카톡 보내고 노래 틀어주는 AI스피커
- 노트북 들고 1분만에 1km 날았다..'드론택배'이륙부터 귀환까지
- 가성비로 무장한 '티볼리'..소형SUV 시장 30개월째 무한질주
- 정치권 여론전 격화에 달걀 던지고 욕설까지… 국론 분열 심화
- 내 디지털 상담사 챗GPT가 우울증?… AI 감정 모방의 두 얼굴
- 젠슨 황 "휴머노이드 로봇 일상 속 이용, 5년도 안 남았다"
- 지난해 혼인 건수 증감률 44년 만에 두 자릿수… 14.8% 증가
- LG엔솔, 애리조나서 46시리즈 수조원 계약… 릴레이 수주 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