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에 문 닫는 중소기업②]"그 기술 좀 빼와..임원 자리 줄게"

이관주 2017. 10. 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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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 조건에 기술유출 포함, 10건 중 9건이 내부 소행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경기도 소재 자동차 엔진 제조 중소기업 A사에서는 부품 제조의 핵심인 '다이캐스팅 금형 제작' 기술이 유출됐다. 금형에 용해금속을 고속으로 주입해 복잡한 형태의 부품을 제조하는 신기술은 경쟁업체에 넘어갔다. 범인은 다름 아닌 A사의 전직 연구원 3명이었다. 이들은 경쟁업체로 이직하면서 연봉, 직급 등을 높이고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경기도 소재 B사가 개발한 '은나노 와이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은으로 나노미터 굵기의 와이어를 만들어 유연하고 전류흐름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술은 미국으로 유출됐다. B사의 전직 연구소장 등 5명이 동종업체로 기술을 빼돌렸는데, 이 업체가 미국계 법인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국내 한 LED 생산 하청업체 C사에서는 LED램프 회로도 등 핵심 기술이 유출됐다. 납품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원청업체가 C사의 전직 생산팀장을 시켜 기술을 빼돌린 것이다. 원청업체는 이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동일한 제품을 제작ㆍ판매해 C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중소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기술유출'은 대부분 내부자에 의해 발생했다.

경찰청이 올해 4~9월 '산업기술유출범죄 기획수사'를 통해 적발한 90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82건(91.1%)은 내부 임직원들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 직원들은 기업 보안시스템의 취약점과 해당 기술이 가진 가치를 잘 알고 있어 범행을 도모하기 쉽다. 중요 자료들이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어느 업체에서 기술 자료를 원하는지 훤히 꿰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범행이 가능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보안 시스템 관리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이를 기업차원에서 실질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라면 더더욱 기술 자료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번에 적발된 기술유출 사범들의 범행 동기를 보더라도 인사 등 처우 불만에 의한 유출(3건)보다는 이직 및 창업(61건), 단순 금전이득 목적(26건) 등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저지른 경우가 훨씬 많았다.

특히 경쟁업체의 기술자료를 이직 시 연봉 등에 반영하는 등 경쟁이 치열한 업종일수록 '스카우트' 조건으로 기술유출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과당경쟁에 내몰리면서 일부 기업들이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동업자 정신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국 내부 단속 없이는 중소기업에서의 기술유출은 매번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기술유출 사건 발생 시 피해 입증이 용이하려면 회사 측이 컴퓨터, 이직 이력 보관 등 퇴직자에 대한 후속 관리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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