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 전성시대..국내 맥주업계 '한국형 맥주' 띄우기 '온힘'

박수현 기자 입력 2017. 10. 2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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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게 신선하네(bloody fresh). 훌륭한 맥주야.”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 고든 램지는 최근 오비맥주의 카스 광고에 출연했다. /유튜브 캡처

‘촌철살인’ 독설로 유명한 영국 셰프 고든 램지(Gordon Ramsay)는 최근 오비맥주의 ‘카스’ 광고에 출연했다. 그는 광고에서 ‘마스터 셰프 코리아4’ 출신 셰프겸 모델인 오스틴 강이 추천한 요리에 카스 맥주를 곁들이며 “느끼함을 잡아준다. 톡 쏘고 신선하다”를 연발한다.

램지의 카스 광고 출연 소식이 전해지면서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에선 연일 ‘램지가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그 역시 영국인이었다(영국의 음식은 대체로 맛이 없다는 말에서 비롯됨)’, ‘다른 맥주를 속여서 준 거 아니냐’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쟁쟁한 셰프, 지망생들의 음식에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던 그 고든 램지가 ‘맛없는 한국 맥주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카스 맥주를 마시면서 극찬을 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이 과거 외신 기사를 인용해 ‘목 넘김이 편한 라거가 그의 취향’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맥주 맛도 결국 개인 취향에 따른 것’이라는 여론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고든 램지가 평소 즐겨 마시는 맥주는 페일라거의 일종인 ‘버드와이저’로 알려졌다. 페일라거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밝은 금색의 라거 맥주로, 부드럽고 목 넘김이 편한 것이 특징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요새는 ‘맥주도 커피처럼 기호식품인데 맛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페일라거를 좋아하면 무조건 맥알못(맥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냐는 식의 댓글이 늘어나면서 SNS 곳곳에서 대화의 장이 열리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며 “이번 광고는 일반적으로 ‘밍밍하다’고 표현되는 국산맥주의 맛에 대해 소비자들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수입맥주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국내 주류업계가 여느 때보다 국산맥주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비맥주는 ‘국산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 램지를 내세웠고, 롯데주류는 한국인들의 음주 문화에 맞는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 전용’ 맥주로 ‘애주가 사로잡기’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아예 탄산 맛을 강조한 발포주를 내놨다. 흔히 ‘알코올 넣은 탄산 보리차’라고 불리는 국산맥주 특유의 싱거운 맛을 역이용한 것이다.

◆ ‘승승장구’ 수입맥주…“국산맥주보다 세금 덜 내”

이마트 서울 성수점 수입 맥주 코너. 최근 국내 대형마트와 편의점 수입맥주 판매량이 국산 맥주를 넘어섰다./김연정 객원기자

현재 국내 ‘편맥(편의점 맥주)’ 시장의 주도권은 수입맥주로 넘어간 상태다. GS25, CU,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3사의 맥주 매출 구성 비율을 보면 2012년 10%대 후반이던 수입맥주 비중은 올 상반기 50%를 넘었다. 대형마트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마트는 올 상반기 처음으로 전체 맥주 매출에서 수입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51.2%로 절반을 넘어섰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8965만달러에 불과했던 맥주 수입액은 지난해 1억8156만달러를 기록해 4년만에 두배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서는 7월까지 1억4392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51% 성장했다. 국내 수입맥주 시장 규모는 올해 3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수입맥주가 국내 맥주시장에서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타는 것은 우선 국내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소비자들이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수입맥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여성 주류 소비층이 늘고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문화가 생기는 등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가볍게 술을 마시는 주류 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또다른 이유는 수입 맥주의 가격경쟁력이다. 수입맥주는 국산맥주 대비 유리한 세율을 적용받는다. 현행 주세법에 따르면 국산맥주와 수입맥주의 주세율은 모두 72%로 같다. 하지만 세금을 붙이는 기준인 과세표준이 다르다. 국산맥주는 ‘출고하는 때의 가격’을 과세표준으로 한다. 판매관리비·광고비 등 마케팅 비용을 모두 포함한 출고 가격에 맞춰 세금을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수입신고를 하는 때의 가격’을 과세표준으로 하고 있어 판매단계에서 발생하는 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 가격경쟁력에서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수입맥주 ‘4캔에 만원’(대형마트는 9000원대 후반) 행사가 연중 내내 이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맥주는 유통 마진을 조절해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다”며 “관세청에 수입 원가를 낮게 신고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적게 낼 수도 있다. 실제 수입가가 얼마인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국내 맥주업계, ‘한국적인’ 맥주로 승부수

롯데주류의 ‘피츠’(왼쪽)와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 /각 사 제공

이에 국내 업체들은 ‘더 한국적인’ 신제품 출시로 맞대응에 나섰다. 롯데주류가 3년 만에 내놓은 ‘피츠 슈퍼클리어(피츠)’가 그중 하나다. 피츠는 롯데주류가 2014년 내놓은 ‘클라우드’ 처럼 섭씨 10도 저온에서 발효하는 라거 계열 맥주다. 폭탄주를 대량으로 마시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며, 기존 제품인 ‘클라우드’보다 맥아 함량은 20%, 알코올 도수는 0.5% 낮췄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한국 특유의 음주 문화에 맞춰 제품을 개발했다”며 “맥주 캔에 그려진 호랑이 역시 ‘한국 맥주’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발포주 ‘필라이트’로 대응하고 있다. 발포주는 주류의 제조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가 주액에 들어있다가 병뚜껑을 여는 순간 거품이 나는 술로, 맥아 비율이 10% 이하다. 맥주와 맛은 비슷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맥주는 아니다. 하지만 기타주류로 분류돼 세금이 적어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다. 마트에서는 기존 맥주의 3분의2 수준인 캔당 833원에 팔린다. 4캔 1만원짜리 수입맥주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수입맥주의 구매가 대부분 가정에서 이뤄지고, 그 중심에 ‘홈술족’(집에서 음주를 즐기는 1인가구)의 증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들을 겨냥해 국내 소비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성비(가격대비성능)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국산맥주도 싸고 맛있다’는 인식을 주고자 필라이트를 개발했다”고 했다.

지난 8월부터 롯데주류, 하이트진로 모두 신제품 생산량을 확대했다. 롯데주류는 최근 완공한 제2공장에서 피츠를 생산하고 있다. 김봉석 충주 공장 공장장(상무)은 “2공장의 현재 생산량은 20만kl이지만 총 60만kl까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는 기존 월 10만~30만상자(1상자=355ml 24캔)에서 80만상자로 생산량을 대폭 늘렸다.

공격적인 마케팅도 이어가고 있다. 롯데주류는 피츠의 광고 캠페인 모델로 드라마 ‘질투의 화신’, ‘오 나의 귀신님’ 등에서 활약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조정석을 발탁했다. 하이트진로는 Mnet ‘쇼미더머니 6’의 스타 래퍼 넉살, 라이노, 면도, 우디고차일드를 모델로 선발해 젊은 세대들을 공략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맥주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류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돼 그야말로 ‘영업 전쟁’을 펼치고 있다”며 “각 사의 신제품들은 실적 회복의 사명을 떠안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오비맥주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5453억원으로 전년(1조4908억원)대비 3.65%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3723억원으로 3.6% 감소했다. 롯데주류의 지난해 매출액은 7330억원으로 전년대비 3.4% 감소했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매출액(1조8902억원)과 영업이익(1240억원)은 전년대비 각각 0.8%와 7.98%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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