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고 싶은 사람들 위한 일본의 ‘죽음 산업’

입력 2017.10.25 (08:00) 수정 2017.10.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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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향 냄새가 나는 객실 안, 침대 대신 가로 2m, 세로 1.5m 크기의 유리로 된 냉장 시설이 놓여있다. 3.3도로 유지되는 이 냉장 시설 안엔 장례를 치른 뒤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들이 보관된다. 일본에서 성업 중인 '시신 호텔'이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숙박 허가를 받지 못해 망자가 아닌 산자는 자고 갈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시신 호텔들은 객실 이용률 80%를 넘기며 높은 숙박률을 보였다. 한 마디로 일본의 시신 호텔에선 '빈방' 찾기가 힘들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죽음과 관련한 '죽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일 KBS 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에서는 '죽음 산업'의 성장 배경을 살펴봤다.

연간 50조 원 규모 '죽음 산업'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일본은 '초고령 사회'다. 노인 인구가 약 3,500만 명으로 캐나다 전체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노인 수가 늘면서 사망자 수도 늘었다. 도쿄에선 20년 전보다 하루 60명이 더 늘어난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혐오시설로 간주되는 화장장은 도쿄 시내에 26곳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 장례식장에 설치된 냉동 창고에 열흘 넘게 시신을 넣어둬야 하는 상황이다. 망자 호텔이 생겨난 이유다. 장례를 치른 시신은 망자 호텔에 묵으며 화장터로 갈 날을 기다린다.

일본의 '죽음 산업' 규모는 연간 50조 원 규모로 커졌다. 일본 노인에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 서비스는 필수가 됐다. 시신 호텔과 같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이 묻힐 묘지나 유골을 뿌릴 곳을 찾기 위한 패키지여행 산업도 등장했다.

지난 여름,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엔딩산업전'에선 320여 개 회사가 죽음을 준비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였고, 호황리에 마쳤다. 연세대 산업공학과 박희준 교수는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한국 또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기보다 외적으로 신경 쓸 것이 많은 한국의 장례 문화 또한 바뀔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잘 죽고 싶은 사람들

죽음 산업의 성장은 삶을 잘 정리하고 싶어하는 마음과도 맞물려 있다.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죽음을 준비하며 남은 삶을 잘 채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웰다잉'이나 '힐다잉(heal+dying, 마음 편히 살다 잘 죽는 것)' 열풍은 이러한 관심이 녹아든 현상이다.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젊은이들이 임종체험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매달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임종체험을 하고 있다. 직장인서부터 노년층, 병이 있거나 자살을 생각할 만큼 삶에 지친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해본 후 삶을 돌아보고, 남은 삶의 계획을 짠다.

모두가 죽지만, 죽음을 맞는 형태는 다르다. 죽음 산업 성장의 이면엔 죽음을 준비하며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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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죽고 싶은 사람들 위한 일본의 ‘죽음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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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10-25 08:23:31
    국제
강한 향 냄새가 나는 객실 안, 침대 대신 가로 2m, 세로 1.5m 크기의 유리로 된 냉장 시설이 놓여있다. 3.3도로 유지되는 이 냉장 시설 안엔 장례를 치른 뒤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들이 보관된다. 일본에서 성업 중인 '시신 호텔'이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숙박 허가를 받지 못해 망자가 아닌 산자는 자고 갈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시신 호텔들은 객실 이용률 80%를 넘기며 높은 숙박률을 보였다. 한 마디로 일본의 시신 호텔에선 '빈방' 찾기가 힘들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 죽음과 관련한 '죽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일 KBS 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에서는 '죽음 산업'의 성장 배경을 살펴봤다.

연간 50조 원 규모 '죽음 산업'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일본은 '초고령 사회'다. 노인 인구가 약 3,500만 명으로 캐나다 전체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노인 수가 늘면서 사망자 수도 늘었다. 도쿄에선 20년 전보다 하루 60명이 더 늘어난 300명이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혐오시설로 간주되는 화장장은 도쿄 시내에 26곳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 장례식장에 설치된 냉동 창고에 열흘 넘게 시신을 넣어둬야 하는 상황이다. 망자 호텔이 생겨난 이유다. 장례를 치른 시신은 망자 호텔에 묵으며 화장터로 갈 날을 기다린다.

일본의 '죽음 산업' 규모는 연간 50조 원 규모로 커졌다. 일본 노인에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 서비스는 필수가 됐다. 시신 호텔과 같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이 묻힐 묘지나 유골을 뿌릴 곳을 찾기 위한 패키지여행 산업도 등장했다.

지난 여름,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엔딩산업전'에선 320여 개 회사가 죽음을 준비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였고, 호황리에 마쳤다. 연세대 산업공학과 박희준 교수는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한국 또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고인을 추모하고 기리기보다 외적으로 신경 쓸 것이 많은 한국의 장례 문화 또한 바뀔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잘 죽고 싶은 사람들

죽음 산업의 성장은 삶을 잘 정리하고 싶어하는 마음과도 맞물려 있다. 죽음을 외면하기보다 죽음을 준비하며 남은 삶을 잘 채우고 싶어하는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여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웰다잉'이나 '힐다잉(heal+dying, 마음 편히 살다 잘 죽는 것)' 열풍은 이러한 관심이 녹아든 현상이다.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젊은이들이 임종체험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매달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임종체험을 하고 있다. 직장인서부터 노년층, 병이 있거나 자살을 생각할 만큼 삶에 지친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해본 후 삶을 돌아보고, 남은 삶의 계획을 짠다.

모두가 죽지만, 죽음을 맞는 형태는 다르다. 죽음 산업 성장의 이면엔 죽음을 준비하며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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