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52억 마리 몰고 왔어요~"

이혜운 기자 2017. 10.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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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몰고 온 너구리
지난해 연매출 1050억.. 우동 국물·오동통한 면발, 기존 라면과 차별화로 인기

1982년, 첫 제품

1 ‘너구리’ 캐릭터 복장을 한 배우 공승연이 2017년 리뉴얼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농심 제공). 2 배우 이제니가 광고 모델로 나선 1999년 ‘너구리’. 3 1980년대 초반 ‘너구리’를 생산하던 안양 공장 전경.

1981년 봄, 농심 안양공장 제품개발 회의실. 신춘호 당시 사장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이만큼 굵은 면발에 시원한 우동 국물 맛 신제품을 한번 만들어 봅시다." 기존 제품과 형태와 맛이 전혀 다른 새로운 라면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연구팀이 즉시 개발에 착수했지만 굵은 면발을 만드는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10분 넘게 끓여도 면이 익지 않았고, 익힌 면은 면발에 힘이 없어 빨리 퍼졌다. 수백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듬해 가을, '이거다' 싶은 면발이 나왔다. 가로 2.1㎜, 세로 1.5㎜짜리 오동통한 '너구리' 면발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 맛을 살리기 위해 해물 수프 외에도 채소와 미역, 다시마 등을 따로 넣었다.

1982년 11월 첫 제품이 시판됐다. 소비자 가격은 200원. 이전까지 주종을 이루던 100원짜리 라면에 비해 고가(高價)였지만 돌풍을 일으켰다. 두 달 만에 매출 20억원을 넘어섰고, 1983년에는 150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우동 라면 시대를 열었다.

35년간의 인기 비결

35년간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농심 ‘너구리’가 올해 출시 35주년을 맞았다. 1982년 국내 최초 우동 라면으로 출시된 너구리는 기존 라면과 차별화된 우동 국물과 오동통한 면발로 농심이 시장 1위에 오르는 디딤돌이 됐다. 너구리에 이어 안성탕면(1983년)과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이 잇따라 나오면서 ‘라면 제국’ 농심을 일궜다. 출시 이후 올 상반기까지 너구리의 누적 매출은 1조8000억원, 누적 판매량은 52억개를 넘어섰다. 전 국민이 너구리를 100개 이상 먹은 셈이다. 현재 연 매출은 1000억원을 넘는다. 지난해에는 1050억원을 기록했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 라면 시장에서 너구리가 오랜 기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차별화된 맛이다. 너구리 국물은 미역·홍합·오징어 등 시원한 해물 육수와 마늘·양파·고춧가루의 깊은 맛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고기 육수가 대세였던 출시 당시, 너구리의 얼큰한 맛은 소비자 입맛에 깊이 각인됐다. 두꺼운 우동 면발도 화제가 됐다.

완도산 다시마 1만4000t

여의도 3배 면적의 완도산 다시마 사용 통째로 잘라 넣은 전남 완도산 다시마도 너구리 인기에 한몫했다. 농심 연구팀은 깊고 진한 해물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가정에서 국물 요리를 할 때 다시마를 활용해 육수를 낸다는 점에 착안, 다시마 산지를 누볐다. 농심 관계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본 결과, 국내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고 품질이 좋은 전남 완도산 다시마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따로 가공하지 않고 잘라 넣은 천연 다시마는 너구리의 상징이 됐다.

농심은 전남 완도 금일도의 건(乾)다시마를 매년 평균 400t 구매한다. 35년간 누적 구매량은 1만4000t에 달한다. 너구리 한 봉지에 들어가는 다시마 조각은 가로 5.5㎝, 세로 3㎝이다. 지금까지 사용한 다시마 조각을 펼쳐 놓으면 8.6㎢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한다. 김승의 완도금일수협 상무는 “너구리 판매가 다시마 소비로 이어지고, 완도 어민들의 소득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어촌 경제를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너구리 세계 70개국에 수출

너구리는 1986년 미국 시장 수출길에 올랐다. 이전까지만 해도 닛신식품 등 일본 기업이 한인 시장을 비롯한 아시안 시장을 선점했다. 일본 업체들은 할인 정책, 미투(me too) 정책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너구리 열풍을 막을 수 없었다. 농심 관계자는 “외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로 된 모방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건 이때가 처음일 것”이라며 “너구리는 미국 시장에서 한국 라면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너구리 포장지에 쓰인 ‘너구리’ 글자를 뒤집어 읽어 ‘RTA’ 라면으로 불리기도 했다. 너구리가 대미(對美) 수출의 발판을 마련한 뒤 안성탕면·짜파게티·신라면 수출도 순풍을 탔다. 현재 너구리는 세계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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