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의 '낭만' 때문에 주민들은 괴롭다

민수아 입력 2017.10.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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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집 재밌는 곳] 부산 지게골·호천마을

[오마이뉴스 민수아 기자]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은 북쪽으로 황령산, 남쪽으로 우룡산이 있다. 문현교차로에서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게골'이라 부르는데 이 지점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 역 이름도 '지게골역'이다. '지게'는 옛날 가옥에서 마루와 방 사이의 문이나 부엌의 바깥문을 말한다. 이 일대 지형이 양쪽 산에 에워 싸여 마치 방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생겼다고 지게골로 불러온 것이다. 지게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 문현동(門峴洞)이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촬영지 문현동 한성주택은 산비탈에 세운 계단식 구조 연립주택이다.
ⓒ 민수아
'쌈, 마이웨이' 남일빌라는 부산에 있다

지난 여름 많은 관광객이 지게골을 찾았다. 5월부터 7월까지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 <쌈, 마이웨이> 때문이다. 드라마 속 애라?동만?설희?주만이 사는 집 이름은 '남일빌라'. 드라마에서 그 빌라 주소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이지만 실제 촬영은 부산 남구 문현동 한성주택에서 이뤄졌다.

1980년대 문현2동 산비탈에 세운 한성주택은 4동으로 구성된 연립주택이다. 50여 가구가 살고 있고 드라마는 한성주택 2동과 3동 사이에서 주로 찍었다. 특이한 계단식 구조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마이웨이'를 가려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발랄하지만 불안한 삶과 잘 어울린다.

 드라마 속 ‘남일빌라’의 모습.
ⓒ 드라마 <쌈, 마이웨이> 화면 갈무리
 한성주택 2동과 3동 사이의 계단. 관광객들은 주로 이 계단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 민수아
한창 드라마가 방영되던 지난 여름에 견주면 종영 이후 관광객 수가 줄어든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성주택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때를 기다렸다가 멋진 풍경 사진을 찍는 '나 홀로 관광객'부터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 주인공처럼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까지, 대부분 젊은 학생이다.

영화·드라마 촬영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트장도 아닌 생활공간에 관광객이 찾아오면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한성주택 2동에 사는 김종오 씨는 "주로 조용히 사진만 찍고 가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끔 어린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소란스럽게 떠들 때가 있어서 주의를 주는 메모를 썼다며 대문을 가리켰다.

 드라마 속 ‘동만’의 집으로 나온 한성주택 대문에는 ‘대문 앞에서 사진 촬영은 좋은데 조용히 해주세요, 여기는 관광지가 아니고 개인 주택입니다, 부탁합니다’라고 적힌 메모가 붙어 있다.
ⓒ 민수아
한성주택 근처 푸른솔경로당에서 만난 문동환 씨는 "한성주택에 살지 않아서 소음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주민들 주차 공간에 관광객이 차를 대서 시비가 붙는 경우는 봤다"고 말했다. 문 씨는 "못사는 달동네에 사람들이 구경 오는 게 신기할 뿐, 특별히 불편한 건 없다"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쌈, 마이웨이> 등장인물들이 고된 하루를 위로하며 맥주잔을 부딪치던 장소였던 '남일빌라'의 옥상 '남일바'는 그들의 아지트로 자주 등장했다. '남일바'는 한성주택 옥상에 없다. 건물 외관이 보이는 장면은 한성주택에서 찍었지만 '남일바'가 나오는 장면은 호천마을의 한 주택 옥상에서 따로 찍었다.

호천마을은 부산시 동구와 진구의 경계에 있는 마을로 행정동은 범천2동에 속한다. 마을 이름 호천(虎川)은 범천(凡川)에서 유래한다. 이 지역이 산세가 험하고 삼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고 해서 범천(凡川)이라 이름 지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일바’.
ⓒ 드라마 <쌈, 마이웨이> 화면 갈무리
한편 일부 매너가 부족한 관광객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과 방영이 이어지던 지난 6월, 어느 관광객 커플이 호천마을 '남일바' 촬영지에 왔다가 드라마 촬영 소품에 자기 이름을 쓰고 간 것이다. 이를 한 스태프가 자기 사회관계망(SNS)에 낙서를 남긴 관광객의 실명을 거론하며 고발했다.
 촬영 소품에 낙서를 남긴 관광객을 고발한 드라마 촬영 스태프의 SNS.
ⓒ 인스타그램 화면 갈무리
이 촬영 스태프는 드라마 제작에 피해를 주는 관광객 문제를 말하면서 촬영지 주변 주민들이 겪는 문제도 언급했다. 관광객의 음주, 흡연, 소음 등으로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특히 야간에 방문하는 관광객 때문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이 있다. 기자가 호천마을을 방문한 지난 8일, 저녁 늦은 시간 사진을 찍던 한 관광객은 친구에게 영상통화로 '남일바' 야경을 보여주겠다며 큰 소리로 떠들기도 했다.
 ‘남일바’ 촬영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밤 9시 이후 출입금지’라고 쓰여있다.
ⓒ 민수아
부산진구 창조도시과 직원은 호천마을이 영화 촬영지로 다시 활용될 계획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을 고려해 계획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마을 인지도가 높아지는 건 긍정적이지만, 주민 불편이 분명한 일을 억지로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널린 빨래까지 찍어대는 '출사족'의 행패

호천마을 '남일바' 촬영지 바로 건너편 호산경로당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빨랫대가 나오지 않게 사진을 찍으라"고 주의를 줬다. 관광지의 사생활 침해는 최근 언론에서 다뤄지는 관광 이슈다. 지난 9월 '방까지 들어와 찰칵… 내 가난이 구경거리인가요'라는 <조선일보> 기사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드나드는 출사족(出寫族: 야외에서 사진 촬영하는 사람들) 문제를 지적했다.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 출연한 가수 이상순은 지난 7월 자기 페이스북에 관광객들이 프로그램에 나온 제주도 집에 찾아와 담장 안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어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 호천마을이 부산의 야경 명소로 알려지면서 사진을 찍으러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 민수아
호천마을 경계에 있는 안창마을과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등 마을재생사업으로 벽화를 그린 동네 중심으로 관광객에 의한 주민 사생활 침해 문제가 두드러진다. 2014년 <오마이뉴스>의 '안창벽화마을의 불편한 진실'은 마을의 토박이 주민이 기고한 글로 '타인의 개인 공간까지 멋대로 찍고 공유하는 일을 자신들의 추억이라 합리화하는 것은 행패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관광 자원화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좋지만 마을은 주민의 생활공간이다. 그들의 터전을 사진 속 소품으로 추억할 자유는 있어도 주민의 생활까지 엿볼 자유는 관광객에게 없다. 나의 낭만이 타인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관광객의 작은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