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어지럼증 가볍게 봤다가 큰병 키운다..7년새 6배 급증

민태원 기자 2017. 10. 24. 0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디오 고글을 쓰고 회전의자를 옆으로 돌리거나 눕히는 등의 동작을 통해 환자의 눈떨림 현상을 체크함으로써 어지럼증을 진단하는 검사. 이석증의 경우 가만히 앉아 있으면 괜찮지만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하면 눈떨림이 나타난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중추신경계의 구조·기능적 이상에 의해서도 어지럼증이 생긴다. 소뇌에 자라는 종양(왼쪽 사진 화살표)과 뇌로 연결되는 목뼈 동맥이 좁아진 모습(오른쪽 사진 화살표)의 MRI 영상. 뇌혈관이 좁아진 상태로 방치하면 뇌경색으로 이어진다. 분당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 제공

지난해 어지럼증 환자 83만명 달해
단순 빈혈로 오해·오진 가능성 높아
대부분 전정기관·신경 장애가 발단
4명의 1명꼴로 뇌질환에 의해 발생
어지럼증과 발음장애 등 겹칠 때는
뇌졸중·뇌종양 가능성도 의심해봐야

“앉았다 일어나거나 갑자기 움직일 때 어질어질하다.” “걸을 때 중심을 못 잡고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내가 혹은 주위가) 빙글빙글 돌고 속이 메슥거리거나 토할 것 같다.”

보통 ‘어지럽다’고 느낄 때 하는 표현들이다. 잠깐 증상이 있다가 사라지기도 해 대부분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가기 십상이다. 빈혈 탓으로 잘못 생각하고 약국에서 철분제를 사 먹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러나 실제 빈혈에 의한 어지럼증은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지럼증이 자꾸 반복되거나 점점 심해지면 직장, 일상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치명적 질병의 경고등일 수 있어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어지럼증 진료(외래·입원) 환자는 83만8928명이었다. 2009년(57만5734명)에 비해 31.4% 증가했다. 특히 심각한 어지럼증으로 입원한 환자는 2009년 1만2850명에서 지난해 8만5255명으로 6.6배 늘었다. 입원 다빈도 질병 순위가 7년 사이 114위에서 15위로 껑충 뛰었다.

어지럼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노인인구 증가와 무관치 않다. 어지럼증은 대부분 속귀(내이)와 뇌의 문제로 발생하는데, 특히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속귀 기관은 나이가 들수록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처한 여러 스트레스 상황도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안중호 교수는 “최근 편두통이나 메니에르병 등으로 인한 어지럼증 환자들이 느는 추세”라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여러 신경 반응이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설명했다. 야근 등 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나 시험, 취업 스트레스가 많은 학생들이 병원을 많이 찾는다.

어지럼증, 70∼80%는 속귀의 문제

속귀는 바깥으로 보이는 귀(외이)와 다르게 두개골 안쪽 뇌(소뇌와 뇌간 사이) 깊숙이 자리한다. 여기에 소리를 듣는 청각 기능의 달팽이관, 평형 기능을 담당하는 전정기관(반고리관과 이석기관)이란 게 있다. 어지럼증의 70∼80%는 바로 이 전정기관과 뇌로 연결되는 전정신경에 장애가 생겨 일어난다. 대표적인 게 ‘이석증’이다.

최모(62·여)씨는 1주일 전부터 잠을 자다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껴 깨는 일이 잦아졌다.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럼증은 주로 오른쪽으로 돌아누울 때 생겼고 움직이지 않으면 1분 안에 사라졌다. 최씨는 이석증을 진단받았다. 의사는 “전정기관에 있는 이석(머리 기울어짐을 알아차리는 역할)이 노화로 변성돼 떨어져나왔다”면서 “이게 머리 회전을 감지하는 기관인 반고리관 안으로 들어가 자극함으로써 어지럼증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웠다가 일어날 때, 고개를 숙이거나 쳐들 때, 높은 곳을 보거나 선반 위 물건을 집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힐 때, 자다가 옆으로 돌아누울 때 어지럼증을 느끼는 게 특징이다.

대개 40대 이후 중장년층에게 많이 발생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어지럼증센터 최정윤(신경과) 교수는 “최근 연구 결과 골다공증이 잘 생기는 폐경기 여성에게 이석증이 많은 걸로 밝혀지고 있다”면서 “이석은 뼈와 같이 칼슘 성분이다. 골다공증이 심하면 뼈가 약해지는 것처럼 이석도 구조적으로 약해져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잘 떨어져나간다”고 설명했다.

젊은층은 머리 외상 후 이석증을 앓기도 한다. 평소 활동적 스포츠를 즐기는 30대 후반 직장인 A씨(여)는 지난겨울 스키장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뒤 자세를 갑자기 바꿀 때 어지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깐씩 증상이 왔다가 사라져 병원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등산을 하다 하늘이 빙빙 도는 느낌과 함께 식은땀까지 흘리며 쓰러졌고 뒤늦게 이석증을 진단받아 치료 중이다. 머리에 심한 충격으로 이석이 떨어져나온 것이다. 안중호 교수는 “에어로빅에서 머리를 심하게 흔드는 동작을 할 때, 장시간 TV를 시청하거나 잠자면서 한쪽으로만 누워 있는 습관이 있는 사람한테도 이석증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머리 움직임에 상관없이 어지럼증이 지속될 땐 ‘전정 신경염’을 의심해야 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는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서 있거나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전정기관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전정신경에 생긴 염증이 원인이다.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생긴다. 요즘 같은 환절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감기 몸살을 크게 앓은 뒤 잘 걸린다.

30, 40대 여성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메니에르병’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지럼증과 함께 귀 안에서 소리가 나고 갑자기 잘 안 들리거나 귀에 물이 차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동반될 경우 의심해봐야 한다. 속귀를 순환하는 림프액이 과다 생성돼 전정기관과 달팽이관이 점점 부풀어올라 생기는 걸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예민한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

이처럼 속귀의 문제로 흔히 경험하는 어지럼증은 아주 심하더라도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인 질환이 원인인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약물이나 재활훈련, 생활습관 개선 등으로 치료된다.

뇌경색, 뇌종양 등 치명적 질병 ‘경고등’

취업준비생 B씨(28)는 2개월 전부터 어지럼증을 겪기 시작했다. 책상에서 갑자기 일어나거나 고개를 획 돌리면 어지럼증이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취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토익 시험을 볼 때조차 집중하기 힘들어지자 심각성을 느꼈다. 집 근처 병원에서 이석증 진단을 받아 약을 꾸준히 복용했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증상이 심해져 어두운 곳에 가거나 밤거리를 걸을 때면 휘청거리고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부축을 받아야 했다. 주변의 권유로 모 대학병원에서 MRI 뇌영상 검사를 한 결과 ‘소뇌종양’이 발견돼 충격을 받았다.

C씨(70)도 석 달 전부터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급기야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거나 물체가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MRI를 찍어봤더니 경추(목뼈)에서 뇌로 가는 혈관이 가늘어져 혈류 흐름이 좋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의료진은 “그대로 놔두면 뇌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B, C씨는 뇌의 구조적·기능적 이상에 의해 어지럼증이 찾아온 경우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 4명 가운데 1명은 뇌졸중(뇌경색)이나 뇌종양, 청신경종, 퇴행성뇌질환(소뇌위축증 등)이 원인이다.

문제는 속귀에 위치한 전정기관 이상으로 생기는 어지럼증과 증상만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의료진의 오진도 적지 않다. 따라서 속귀 장애에 따른 어지럼증을 진단받은 경우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뇌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뇌질환은 진단이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심한 경우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 특히 뇌경색이 발생하기 전 약 10%의 환자는 갑자기 어지럽고 비틀거리는 증상을 경험한다. 최정윤 교수는 “어지럼증을 보이는 뇌경색 환자들은 초기 MRI 검사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20%다. 감각마비 등 눈에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는 뇌경색에 비해 오진 위험이 배나 높다”고 지적했다.

어지럼증이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자세 불안, 발음 장애, 물체가 겹쳐 보이는 증상(복시 현상)과 함께 나타나면 MRI 검사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도 뇌경색일 가능성이 높다. 뇌종양일 경우에도 종양이 서서히 자라면서 어지럼증과 두통을 느끼게 된다. 주로 50, 60대에게 발병하지만 최근 젊은층 발병률이 높아지는 추세다.

뇌경색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지만 뇌종양은 뚜렷한 원인이나 예방책이 없다. 어지럼증과 함께 말이 어눌해지는 등 언어 장애가 나타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한다면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최 교수는 “퇴행성뇌질환도 초기에는 어지럼증이 경미하고 영상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조기 치료 기회를 놓치기 쉽다”면서 “영상검사 결과 정상이라도 눈 운동 장애가 있거나 팔·다리를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증상이 함께 나타나면 정밀 검진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