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취향]한옥 짓는 건축가는 아무데서나 자지 않는다

양보라 입력 2017. 10. 24. 00:02 수정 2017. 10. 2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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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건축사 참우리건축사사무소 소장 김원천
구도심, 오래된 호텔에서 현대 한옥 힌트 얻어
안도 다다오 걸작보다 초기작에서 더 영감 받아
‘참우리건축협동조합’이라는 2014년 탄생한 한옥 조합이 있다. 조합원 대다수가 40대 전통 건축(한옥) 명인으로, 70대 명장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전통 건축계에 비춰보면 어려도 한참 어린 청년 조직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만하게 볼 건 아니다. 조합원은 하나같이 20여 년 경력자며 경복궁·창덕궁 등 고건축의 보수 작업에 참여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조합이 짓는 한옥의 설계는 현대 건축을 전공한 참우리건축사사무소 김원천(41) 소장이 책임진다. 그는 전통 건축에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가미하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그 덕분에 이 혈기왕성한 조합은 2016년 서울시가 꼽은 우수 한옥인 북촌 지우헌(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 개인 별장), 경기도 포천 배상면주가의 술 저장고 등 실용적인 한옥을 선보여 왔다. 세계를 여행하며 ‘늙지 않는 전통’을 보고 미래 한옥의 가능성을 그려본다는 김원천 소장의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시 우수한옥으로 선정된 서울 종로구 가회동 지우헌. [사진 서울시]
Q : 한옥을 짓는 현대 건축가의 여행은 뭔가 달라도 다를 것 같다. A :
한옥 짓는 김원천 건축가는 되도록 구도심에서, 가능한 오래된 숙소에서 머무는 여행을 즐긴다. 사진은 2014년 방문했던 체코 프라하. [사진 김원천]
현대 건축을 공부했지만 늘 전통 건축에 끌렸다. 한옥은 건물 자체도 멋지지만 주변 환경을 끌어들이는 집이지 않나. 2001년부터 아예 한옥 짓는 목수로 나섰다. 현대 건축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전통 건축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신(新)한옥을 꿈꾼다. 가장 영감을 많이 받는 게 해외여행에서 묵는 숙소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숙소를 찾아다닌다. 호텔이든 도미토리(기숙사)든 현지인의 개인집이든 가리지 않는다. 여행하는 동네에서 가급적 가장 오래된 숙소를 찾는다. 낡은 건물이지만 그 안에 현대인이 무리 없이 지낼 수 있게 만든 장치를 본다. 가구는 무엇을 골랐는지, 현대인의 필수품인 냉장고와 에어컨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배치했는지를 본다. 2015년 일본 교토 여행 때 100년 넘은 일본 전통가옥(마치야·松屋)에서 묵은 적이 있다. 나무 여닫이문을 여니 욕실과 화장실 등은 신식이더라. 앞서 2014년 베를린여행 때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 있는 현지 독일인 집에 방문했다. 19세기 독일 옛집의 아담한 마당에 장독대를 뒀더라. 벽돌을 쌓은 담과 장독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교토 언덕길에 즐비한 일본 전통가옥 마치야. [중앙포토]
독일 베를린에서 방문한 현지 독일인의 집. 1850년 지어진 주택을 쓴다. 내부 구조와 실내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 김원천]
Q : 여행 중에 '이곳만은 꼭 들른다'는 곳이 있을까. A : 건축가는 건축물만 보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웃음). 웬만한 유명 건축물은 오히려 건너뛴다. 대신 여행을 떠난 동네에 내가 존경하는 건축가의 작품이 있으면 반드시 들른다. 다만 그가 대 예술가가 돼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제 야망을 한껏 부린 명작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물은 그 건축가의 풋내기 시절, 초기에 만든 작품이다.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첫발을 뗀 시절의 건축물은 왠지 모르게 순박하다. 소규모의 자본밖에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니 효율적으로, 그리고 영리하게 건축물을 완성해 나간 흔적이 보인다. 나는 한옥 가정집이나 한옥 사무실을 짓는 건축가다. 아무래도 투자금에 한계가 있는 개인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대 건축가의 초기 작품을 보면 힌트를 얻을 때가 많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1984년 일본 교토에 지은 상업건물 타임즈. [사진 타임즈 페이스북]
노출 콘크리트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관심 있는 사람은 그가 1984년 교토 중심가에 만든 오피스 건물 ‘타임즈’에 가보라고 권한다. 제주도 같이 너른 자연에 푹 싸여있지 않아도 그 복잡한 도심 한복판에 자연을 담은 건물을 만들어놨다. 운하가 코옆에 붙어있고, 발코니와 테라스도 여럿이다.
'장식은 범죄다'라는 말을 남긴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의 초창기 건축물인 빌라 뮐러. 체코 프라하에 있다.[사진 김원천]
Q : 한옥 건축가로서 꼭 방문해 볼 만한 한옥을 꼽는다면. A :
하회마을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하회마을 북촌댁 누마루. [사진 북촌댁]
요즘에 옛 가옥 자재를 뜯어다가 다른 장소에서 조립하는 고택을 자주 본다. 한옥의 생명은 환경과 건물 사이의 콘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주변과 동떨어지면 한옥은 그 매력을 잃는다. 아무리 도심 한복판에 짓는 한옥이라도 주변과의 어울림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집과 환경이라는 콘텍스트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장소는 아무래도 경북 안동이다. 하회마을을 전부 안다고 자신하지 말길 바란다. 대중에 일부 공간을 공개하는 하회마을의 대저택인 북촌댁에서 전통 한옥의 장엄한 매력을 발견해보길 권한다. 마루에 앉으면 하회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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