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이야깃거리로 만들자'.. 과학비평잡지 만드는 두 과학자

2017. 10. 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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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과학비평 잡지 '에피'
편집위원 전치형·최형섭 인터뷰
"과학비평은 옆에서 질문하는 것"

[한겨레]

지난 17일 오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과학잡지 <에피>의 편집위원 전치형(왼쪽), 최형섭 교수. 최 교수는 “앞으로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사회와 어떤 연관을 맺는지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세간엔 비평가를 ‘창작할 재능이 없어 비평을 하는 이들’이라고 낮춰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시각은 예술뿐 아니라, 과학계 내부에서도 통용되곤 한다. ‘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실패한 과학자’라고 생각하거나,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과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겐 기껏해야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 정도를 ‘허용’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감히 ‘과학비평을 하겠다’고 나선 잡지가 있다. 지난달 창간한 과학비평잡지 계간 <에피>다.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환경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가 자신의 숙원을 이뤄낸 결과물로,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지난 9월 나온 과학비평잡지 <에피> 창간호.

과학비평이란 뭘까? 지난 17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에게 물었다. 전 교수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학기술학(STS) 연구자이고, 최 교수는 ‘반도체의 역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술사 전공자로 <에피> 편집위원 중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 교수는 과학비평을 “옆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과학 콘텐츠는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 전문가들에게 스스로는 묻지 않을 질문을 던지고 사안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글을 쓰도록 촉매 역할을 한다.” 그리스어로 ‘옆’ ‘위’ ‘곁’ 등의 뜻을 가진 ‘에피’(epi)를 제호로 삼은 이유다. 전 교수는 “과학비평은 과학과 기술을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을 단순히 논문에 담긴 지식이 아니라 실험하고 분석하고 논쟁하는 사람과 조직의 문화라고 한다면 정치, 경제, 스포츠를 이야기하듯이 과학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과학을 현시대의 맥락에서 읽고 해석하고 논평하는 것이 과학비평이다.”

창간호부터 뜨거운 현안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과학 교과서의 젠더 편향성(우아영)과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을 비판(앤드루 러셀)하고, 정치적 유행어가 된 4차 산업혁명의 문제점(홍성욱)을 지적했다.

12월에 나올 2호는 ‘모델 오거니즘’을 열쇳말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초파리, 쥐, 토끼 같은 생물을 다루는 경험이 과학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묻는 글들을 여러 과학자에게 청탁해둔 상태다. 전 교수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노래나 영화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던데, 이것을 보면 창작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증도 풀리고 나아가 음원·영화 수익 배분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 않나. 과학이 생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과학비평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피>만이 아니라 최근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과학잡지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2015년 회의주의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과학잡지 <스켑틱> 한국판이 창간돼 정기구독자만 3천명에 이르면서 성인 독자 과학잡지 시장의 존재를 확인했고, 지난달 출판사 동아시아는 일본 갓켄교육출판의 <어른의 과학> 한국어판인 <메이커스: 어른의 과학>을 창간했다. 과학책 출간에 이은 잡지 창간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최 교수는 “2000년대 들어 황우석 사태,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등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사회적 논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 일이 많았다. 사람들이 사안을 두고 토론하며 과학을 접하기 시작했고 관심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최근에 좋은 글을 많이 쓰는 과학 필자들이 많아져서 독자들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과학이 규명해내는 구조가, 과학자가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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