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뉴스 깊이보기] 중동 '反이란' 이합집산, '키플레이어' 된 러시아

김보미 기자 입력 2017.10.23. 18:29 수정 2017.10.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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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마주보고 있다. 살만 국왕은 러시아 무기 구매 의향을 밝히는 한편 시리아에서 커지고 있는 이란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 타스연합뉴스

이슬람국가(IS)의 쇠락, 이라크 내 쿠르드의 독립 시도 등으로 복잡하게 얽혔던 중동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반(反)이란 연대’로 재편되고 있다. IS 격퇴와 쿠르드의 독립시도 와해 과정 중에 확대된 이란의 영향력 고착화를 우려하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IS와의 싸움은 막바지로 이제 이란의 민병대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어 그는 ‘헤즈볼라 모델’을 언급하며 “이라크를 전복시려는 다른 이들, 특히 이란은 이라크를 영구적으로 약화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남아 있는 이란 세력이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처럼 고착화될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한 것이다.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이란의 혁명수비대 정예조직 ‘알쿠드스’를 겨냥한 것”이라며 “미국과 이라크는 궁극적으로 이라크 내 모든 전투부대를 단일(정부)군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틸러슨 장관은 21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과 이라크의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가 쿠르드 문제와 관련한 실무위원회를 꾸리는 자리에도 참석해 양국의 협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틸러슨과 사우디는 반이란 연대 강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에선 지난 몇년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과 동지가 같은 편이 되고 갈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라크 정부는 최근 쿠르드자치정부의 키르쿠크를 군사작전으로 장악할 당시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샤비)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또 지난 7월 IS의 최대 점령도시였던 모술 탈환 등 그동안 IS 격퇴전에서도 하시드 알샤비와 공동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리야드 | AP연합뉴스

미국과 이라크는 IS가 쇠락하면서 이제 이란 민병대와 일시적으로 맺었던 관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생겼다. 중동 전문 온라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키르쿠크 사태는 불안정해진 중동 내 ‘미 제국’의 위치를 보여준다”며 “터키, 쿠르드자치정부, 이라크, 사우디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었지만 이제 미국과 동맹이 군사력은 고사하고 ‘외교 우산’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미국은 대테러전에 손을 잡았던 쿠르드족 주민 1만명이 키르쿠크에서 이라크군의 공격으로 피란을 떠난 때 이라크 정부편에 서 있었다. 이 때 이란 알쿠드스의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는 쿠르드자치정부의 야권을 만나 작전에 앞선 논의에 전면에 나섰다.

사우디가 199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관계가 단절됐던 이라크와 지난 8월 27년 만에 국경을 열기로 합의하는 등 관계 복원에 나선 것도 이란에 대한 견제 목적이 크다. 수니파 대국인 사우디의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라크의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초청해 면담을 하기도 했다.

중동 전문매체인 알모니터는 “이란의 정적인 사우디와 이라크의 관계 강화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연합국들이 이란의 영향력을 막고, 이라크 쿠르드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을 지나 지중해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연결하려는 이란의 구상에서 이라크를 빼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란은 ‘대테러’ 명목으로 내전을 멈추지 않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며 시리아에서도 세를 확대해왔다. 시리아도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IS 격퇴전이 마무리되면서 역학구조가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엔 2년전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단행하며 ‘게임체인저’가 된 러시아가 있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주 자국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만났다. 이들 회담의 핵심 의제도 이란이었다. 사우디는 이란이 시리아에서 영구적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에서 특정 작전만 수행할 수 있도록 러시아에 주문했을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9일 시리아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인 민족대표자회의를 제안하며 시리아 출구전략을 구체화했지만 유일한 ‘이란의 방패막’이 된 러시아는 향후 시리아 운명의 쥐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다음달 1일 이란을 방문하는 것으로 기점으로 본격적인 키플레이어 행보에 나설 전망이다. 워싱턴 극동문제연구소 안나 보르쉬쳅스카야 연구원은 포브스에 기고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설득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 것처럼 사우디도 입장을 바꿀지 모른다”며 “이스라엘과 요르단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제 러시아와 안보를 논의해야 한다”고 봤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