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차이나타운 오늘도 별일 없더라

입력 2017. 10. 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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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 입구. 중국어 간판이 눈에 많이 뛴다.[박해윤 기자]

“대림동 근처로는 다니지 않아요. 몇 년 전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난투에 흉기난동까지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나던 곳이에요.”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모(51) 씨의 말이다. 재한 중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근처에 거주하는 일부 주민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지역이다. 게다가 최근 영화 ‘범죄도시’ ‘청년경찰’ 등에 중국 동포들이 조직폭력배나 범죄자로 등장하자 대림동 재한 중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차가워졌다. 2015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자 중 46.6%가 중국인 이주민들이 한국의 범죄율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는 비중도 전체의 29.7%였다.

하지만 대림동에 사는 주민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대림동 중국인 거리(차이나타운)가 크게 변했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인들의 공격적 태도가 누그러들었고 난동 사건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10월 14일 저녁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직접 찾아가봤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서울지하철 2,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디지털로까지 이어지는 1km가량의 거리에 중국 상점이 밀집해 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기 전부터 한국어와 중국어가 섞여 들렸다. 출구를 빠져나오면 중국어로 쓴 간판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간판 테두리에 작은 전구들이 달려 있어 꽤나 밝게 보였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림동 주민 중 중국인의 비중은 약 60%. 한국 속 작은 중국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간판도 중국어로 적혀 있을 정도다. 간판 아래 작게 적힌 한국어와 대로변의 표지판이 이곳이 한국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한국어 간판 보기 힘든 번화가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인 이주민이 모여 사는 곳은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가리봉동이 재개발되면서 주거비가 오르자 이들은 대림동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대림동은 가리봉동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당시 중국인들이 일하던 구로공업단지와도 멀지 않았다. 중국인이 몰려들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지구가 생기고 지금은 ‘중국화’됐다.

거리 초입에는 중국 과자를 파는 가게와 노점, 한국어로 메뉴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대림동에서 5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중국 동포 장모(40) 씨는 “요즘에는 중국음식을 먹으러 오는 한국인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거리 입구 쪽 가게에는 대부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점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노점 앞에서 만난 서울 영등포구의 이모(24) 씨는 “한 달에 한 번씩은 대림동 음식점을 방문한다. 일단 시중 중국음식점에 비해 가격이 싸다”고 했다. 이씨와 함께 이곳을 찾은 유모(24) 씨는 “음식 맛도 시중 중식당과 미묘하게 다르다. 지난번 함께 대림동을 찾은 중국 유학생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곳 중국음식은 본토 중국인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조금씩 걸어 들어갈수록 대림동의 ‘중국풍’이 진해졌다. 거리 초입을 지나 5분쯤 걸어가자 중국인이 자주 찾는 생필품·식료품 가게가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일부 상점은 매장 바깥까지 들리도록 크게 음악을 틀어놓았다. 다른 번화가와 차이가 있다면 들리는 노래가 전부 중국 노래라는 점. 이곳에서부터는 귀에 들리는 언어가 대부분 중국어였다. 간판에 아예 한국어가 없는 가게도 많았다. 식료품 가게의 구성도 달랐다. 거리 초입의 가게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식재료인 두부나 양념, 향신료 등을 판매했다면 여기에서는 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축한 오리고기와 닭고기, 오리알을 파는 가게들이 보였다. 개고기를 취급하는 한 정육점에서는 해체하기 전인 개고기를 매장 앞 냉장고에 진열해두기도 했다.

이 거리까지 들어온 사람의 절반 이상은 중국인인 듯했다. 문이 열린 식당 안에서 중국어로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혹 한국인 모습도 보였다. 이곳까지 들어온 한국인은 크게 두 부류다. 첫 번째 부류는 중국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구경을 다녔고, 또 다른 부류는 마치 잘 아는 동네에 온 것처럼 동행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인이 난동에 휘말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울 양천구의 조모(27·여) 씨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대림동에 중국식으로 조리하는 양고기 전문점이 있다는 내용을 보고 찾아왔다. 모르는 동네고 워낙 소문이 안 좋아 처음에는 조금 꺼렸지만, 인근에 사는 친구에게 ‘요즘은 다른 번화가만큼 안전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조씨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당시 대림동은 한 달에 200건 이상 강력범죄 사건 신고가 들어오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법보다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일부 재한 중국인의 다툼 때문이었다. 이들은 흉기를 들고 다녔고 시비가 붙으면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곤 했다. 지난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특별순찰팀을 꾸려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3주간 매일 순찰하며 범죄 예방 활동을 했다. 그 결과 사건도 크게 줄었다. 2015년 7월 4~22일 대림파출소에 총 106건의 강력범죄 사건이 접수됐지만 경찰의 특별순찰 이후 지난해 같은 기간 34건에 그쳤다.

10년 넘게 대림동 인근에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민모(52) 씨는 “대림동에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중국인이 많을 때는 시끄러웠다. 중국에서 하던 대로 시비가 붙으면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고, 심지어 흉기까지 꺼내 들었다. 하지만 1~2년 전부터는 한국에 최소 1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국 문화에 익숙해져 폭력이 크게 줄었다. 경찰 순찰이 잦아진 것도 긍정적 역할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거리 입구에서 10분 넘게 걸어 들어가자 이제는 거의 한국어가 들리지 않았다. 노점을 하는 중국 동포 서모(34) 씨는 “이곳에서 1년 가까이 장사하면서 한국어를 써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여기까지 들어오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씨의 말처럼 이곳 노점상 주인은 대부분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거의 중국어였다.

이 중 유일하게 한국어로 ‘신장개업’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식당에 들어가봤다. 한국어 간판이 무색하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종업원이 거의 없었다. 중국어만 할 줄 아는 점원과 몇 분간 손짓발짓을 하다 결국 한국어가 가능한 점원이 와 겨우 주문을 했다. 식탁에는 대부분 중국인 손님이 앉아 음식에 술을 곁들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인도 간혹 눈에 띄었다. 중년 여성 2명과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 2명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식탁에는 빈 술병 몇 개가 보였다. 한 중년여성이 약간 취했는지 비틀거리다 술병과 술잔을 넘어뜨렸다. 그 바람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국 동포 남성들에게 술이 튀었다. 하지만 이들은 화를 내지 않고 깨진 유리를 치우는 것을 도왔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이 동네를 자주 찾는다는 중국인 유학생 손모(25) 씨는 “일부 중국인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한국인이 중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중국인 대다수는 오히려 한국인의 눈치를 본다. 한국에서 잘살려고 한국인들과 원만하게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1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미용실. 2 노점에서 고구마를 판매하는 모습. 3 슈퍼마켓 앞에 진열된 중국 과자들. 4 KEB하나은행 간판. 아예 한국어가 없다. 5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 6 만두를 파는 가판.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 곳곳에 이런 가판이 있었다. [박해윤 기자]

대림동 치안 이제는 중국인이 더 신경 쓴다 한국 속 중국이라지만 대림동에 오래 살아온 토박이 한국인도 있다. 적어도 10년 넘게 중국인과 부대껴 살아온 이들은 대림동이 더는 위험한 동네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대림동에서 20년 넘게 미용실을 운영 중인 박모(52) 씨는 “몇 년 사이 대림동 차이나타운의 상가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서울지하철 대림역 12번 출구 근처 가게는 권리금이 2억 원까지 한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여파로 이곳을 찾는 중국인이 줄어들자 상인들은 한국인 유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은 중국인 상인들이 나서서 치안 유지에 신경 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림동 인근 한 부동산공인중개사는 “중국 본토 투자자본이 빠지면서 뜨내기 중국인이 줄어들고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이 대림동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들은 대림동을 돈 버는 거리가 아닌, 내 아이가 자라는 곳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 인근에는 영등포구 대동초가 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에 다니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인 이민 2세다. 10년 전 대림동으로 이주했다는 중국 동포 양모(36) 씨는 “중국인(중국계 한국인)이 많이 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은 세련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제 대림동도 연남동처럼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이 모여 사는 곳이 됐으니 편견만 극복한다면 ‘제2의 연남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10일 서울지하철 2, 7호선 대림역 앞에서 ‘청년경찰’ 상영 관련 항의 집회를 열고 있는 중국 동포들. [뉴스1]

재한 중국인 범죄자 묘사 영화에 민사소송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 대림동과 재한 중국인을 우범지역과 범죄자로 묘사한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하자 중국 동포 및 재한 중국인들이 소송까지 불사하며 반발하고 있다. ‘청년경찰’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중국 동포 범죄조직은 가출 소녀를 납치해 난자를 적출, 판매한다. 극중 대사에는 대림동이 경찰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우범지역이라는 내용도 있다. ‘범죄도시’도 비슷한 설정을 보여준다. 영화 배경은 대림동이 아니지만 지근에 있는 구로구 가리봉동이며, 중국 동포 범죄조직이 각종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이다.

이에 재한동포총연합회,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 등 중국동포단체 42개로 구성된 ‘청년경찰 상영금지 촉구 대림동 중국동포와 지역민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소송에 나섰다. 공대위는 10월 11일 7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꾸려 ‘청년경찰’에는 손해배상 소송을, ‘범죄도시’와 관련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대위 관계자는 “‘ 범죄도시’도 ‘청년경찰’처럼 중국 동포를 혐오스러운 범죄집단으로 묘사했지만 민사소송을 진행하기에는 법리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 먼저 ‘청년경찰’에 대해서만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인권위에는 ‘중국동포 등 특정집단을 혐오스럽게 묘사한 영상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17년 11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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