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영화 '인천상륙작전'..국책은행의 26억은 단지 투자였을까?

박진호 기자 2017. 10.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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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기업은행 국정감사에선 예상못한 이슈가 불거졌다. 성공적인 흥행 실적을 세우면서도 당시 제작과정의 정부 우회지원 흔적으로 논란을 부르기도 했던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IBK기업은행이 모두 26억2천5백만원을 투자했는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었다. 시중은행이 한국 영화 제작에 투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나 배우, 또 작품성면에서 기대가 높다면 영화제작에 은행이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기된 의혹은 해당은행의 영화투자 관련 업무가 정상적인 판단보다는 정권차원의 일종의 '하명'이나 외압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 영화사 자료도착 전, 은행 투자 검토서는 완료? 

기업은행이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실의 요청으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기업은행이 제작비를 투자한 과정은 이렇다. 2015년 10월14일, 은행은 영화제작사에 이메일로 '제작비 예산서'와 '손익 분석표'제출을 요청했고, 제작사는 다음날 이를 제출한다. 기업은행 측이 이 영화 투자에 대한 '예비검토서'를 작성한 건 역시 이 날이었는데, 영화제작사가 자료를 이메일로 보낸 시간은 15일 오후 4시, 은행이 투자 예비검토서를 작성해 출력한 시간은 오후 1시46분이었다. 자료를 받기 전에 이미 검토서가 작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한가지는 영화제작사에서 보낸 자료의 함량 문제인데, "상당부분이 기획의도와 같은 보도자료 차원의 내용이었고, 투자검토의 근거가 될 수익확보 방안 등 재무적 성격의 자료는 예상 손익표가 제시된 1장 분량이었다"는게 국회의 지적이었다. 관객이 500만 명, 1천만 명 도달시 매출액 대비 투자수익율을 계산한 것인데, '흥행을 위한 마케팅 계획'이나 '관객 유치가 가능한 근거' 등 투자 요청시 필요한 필수적인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논란이 된 부분은 투자를 위한 '예비검토보고서'에 포함된 사업수지 분석이나 예상수익률 추정 등의 근거가 상당부분 기업은행 자제적으로 작성됐다는 점이다. 

● 투자 확정되기 전 '기업은행이 투자' 발표

영화 인천상륙작전 제작발표회는 2015년 10월30일에 있었는데 출연진도 공개하는 자리에서 영화제작사는 투자자로 IBK기업은행의 참여 사실을 발표한다. 기업은행이 이 영화에 대한 투자 여부를 논의하는 '심사협의회'는 11월 6일에 열렸고, 최종 투자계약서는 11월 9일에 작성했다. 단지 제작발표회 전날인 10월29일에 은행은 '문화콘텐츠 투자 실무협의회'의 심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제작사가 투자 심사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참여를 발표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이 나온다. 사실상 제작사는 기업은행의 투자를 주어진 조건으로 여기고 영화제작을 진행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서 추가로 지적된 사안은 배급사인 CJ E&M의 배급과 투자결정인데, 은행이 만든 '예비검토보고서'를 보면 '영화 배급사가 여름방학 최성수기에 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있지만, 10월29일에 열린 문화콘텐츠투자 실무협의회에 자료로 활용된 '투자분석보고서'에선 기업은행의 투자 검토로 CJ E&M이 투자와 배급을 결정한 것으로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박선숙 의원실의 지적이었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본 건은 당행이 투자검토를 시작하게 되면서 투자, 배급을 검토중이던 CJ E&M이 갑자기 투자규모를 늘리고, 배급시기를 최성수기로 확정하는 등 제작사와 프로젝트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함."

결국 공식절차 상으론 기업은행의 투자가 최종 확정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배급사는 이미 확정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 부실한 투자요청 서류는 영화계의 관행?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답변에서 '이미 전달인 9월부터 해당영화의 제작사와 투자에 대한 논의를 벌여왔다'고 해명하였다. 또 투자를 원하는 영화제작사의 관련자료가 부실한 것은 '한국 영화계의 대체적인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또 하나 의문이 제기된 점은 기업은행의 추가투자 결정이다. 은행과 제작사는 영화가 개봉하는 2016년 7월27일을 한달 앞두고 계약서를 변경했는데, '제작비 초과와 해외마케팅을 위한 추가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순 제작비가 15억 원 가량 늘어났고 그 근거는 '해외배우 진행 경비와 출연료 증가', 'CG 특수효과 추가' 등을 들었다. 어?게 보면 진행경비와 출연료는 기본적인 예산에서 계산됐어야하는 것인데, 국감에서 공개된 서류상으로 추적하면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기업은행은 6억2천5백만원을 선뜻 추가로 투자하게 된다. 2016년 6월22일, 영화 제작사가 기업은행에 보낸 '인천상륙작전 순제작비 증액 및 P&A비용 추가요청의 건' 공문의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8. 협조요청
(1) 순제작비 증액과 P&A 비용 증가는, 영화의 완성도 및 수익성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 이었음에 대하여 모든 투자가께 깊은 양해를 부탁드리며,
(2) 투자자께서는 본 공문 검토후, 최종 승인 여부를 회신하여 주시고, 이견이 없으시면, 첨부드리는 부속합의서(안)대로 날인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견 없으면 날인을 진행하도록 한다'는 문구는 추가 투자금을 유치해야할 제작사가 오히려 역학적 우위에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이른바 '갑'과 '을'이 바뀐 것 같다는게 국감 과정에서 나온 지적이었다.

● 국책은행까지 동원된 것일까? 씁쓸한 의문

기업은행 자료를 보면, 이 은행은 인천상륙작전 영화에 대한 투자가 있기 전까지 모두 11편의 영화에 46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온다. 한 편당 투자금 평균액은 4억2천만원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이전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한 사례는 '연평해전'인데 12억원이었다. 이 '연평해전'을 제외하면 투자금액은 3.4억원으로 줄어든다. '인천상륙작전'과 '연평해전'을 모두 포함한 기업은행의 영화 투자금액 총액은 72억2천5백만원인데, 이 두 영화의 투자금액은 36억2천5백만원으로 50%를 넘는다. 갑작스럽게 은행의 정책이 바뀌어 영화 투자규모가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계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흥행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영화제작은 은행의 투자유치가 그만큼 어렵다. 영화의 작품성과 관점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엔 정부가 지원하는 영화와 꺼려하는 영화가 있었고 그것이 국책은행이 이례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배경이 아닌지 하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국책은행의 역할이 건전한 애국심 고취와는 또 다른 곳에 있지 않은가?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파문의 또 다른 상처만 같아 안타깝다.    

박진호 기자jh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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