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1406조 해법은 '규제혁파 → 성장' 통한 일자리 창출

황인혁,박만원,정욱,전정홍,김규식,이승윤,나현준,박윤예 2017. 10. 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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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I·LTV 강화 등 대출 누르기로는 '한계'
노동·산업·교육 등 개혁..비용 줄여야 빚문제 해결

◆ 외환위기 20년, 경제생태계를 살리자 ② ◆

최근 첫돌을 맞은 아이를 키우는 김현성 씨(35). 그는 최근 가계 빚 문제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결혼하기 전 모아놓은 자금과 양가 부모님의 도움, 그리고 대출 2억5000만원가량을 껴서 마포 근처에 4억원대 66㎡(20평) 규모의 전셋집을 마련했다. 매달 원리금 상환액은 약 250만원(10년 기준)인데, A씨 부부의 월 수입은 700만원가량이어서 아직은 감당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를 돌볼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데 월 150만원, 이에 더해 생활비까지 쓰면 한 달에 150만원을 모으기가 빠듯하다. A씨는 "앞으로 아이가 크면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교육비도 더 들 텐데 걱정"이라면서 "더구나 향후 금리가 오를 경우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가계부채'는 누적돼온 한국 경제의 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키워드다. 2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직장에서 내몰린 한계가구와 기업부실을 피해 '손쉬운' 영업에 나선 은행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가계부채는 환란 전 기업부채를 대신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더욱이 역대 정권들이 가계 빚으로 성장을 떠받치는 '부채주도 성장'에 나서면서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증한 가계부채는 지난 8월 말 기준 1406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단순히 총액이 커지는 차원을 넘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 문제다. 보유자산 축소를 이미 공식화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2월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아직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9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 금리가 1.52%로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 선을 넘는 등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빚더미에 앉은 고위험 가구에는 치명적이다. 한은의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0.5%포인트만 올라도 고위험 가구의 금융부채가 4조7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체감' 가계부채를 더하면 위험은 더욱 커진다. 특히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히는 '자영업자 대출'이 핵심 뇌관이다. 23일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금액은 총 480조2000억원이다. 자영업 차주 수는 143만명으로 1인당 평균 대출금액만 3억4000만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이 단순히 대차대조표상 '부채(liability)'에만 머물기보다는 제반비용(expense)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동안의 정부 대책은 '금융부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기준을 강화하고 대출자의 전반적인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도입해 대출 진입 장벽을 높이고 총량을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인센티브도 주로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더군다나 가계의 실질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종합적 처방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첫 종합대책이 나온 2004년 494조원에서 지난 2분기 1388조원으로 치솟으며 국내 경제를 짓누르는 '최대 위험'이 됐다. 특히 최근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서 '기준금리 인상→가계부실 심화→금융권으로 리스크 전이→실물경제 충격'의 시나리오까지 제기된다. 당장 대출 금리가 1% 오르면 추가 이자 부담만 연간 9조원에 달한다.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정부가 24일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둔 23일 전국 시중은행 지점들에는 대출을 문의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사진은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의 창구 뒤로 직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충우 기자]
전문가들은 기존의 금융해법 이외에도 노동, 산업, 기업, 교육을 총망라해서 가계부채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른바 가계를 구성하고 있는 생태계를 찾은 후, 이를 기반으로 가계부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발생 원인을 차단하는 선제적 대응책이다.

니어재단(정덕구 이사장) '한국경제 생태계 보고서'에 참여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 자체를 보기보다는 광역 교통망 부족이나 주거 불안에 따른 생활비용을 부채의 원인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결국 금융이 아닌 주거·교통이 가계부채의 해소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최고의 해결책은 가계소득 증대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성장과 일자리 분야는 민간 부문의 역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제반 여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택연금 활성화도 '노년층 소득 증대'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이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가구주의 자가보유율은 75.5%로 40대 미만 가구주(36.6%)의 2배에 달한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에도 불구하고 가입률이 여전히 1%대 초반에 머무는 등 선진국에 비해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김 교수는 "주택연금을 통해 노년층 소득이 늘어나면 가계부실이 감소될 수 있다"면서 "또한 이 같은 연금체계가 구축되면 노동자들이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게 되고, 이에 기업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창출돼 가계부채를 줄이는 선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계지출 축소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활물가지수는 지난 20년간 무려 84.5%가 상승해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68.1%)을 상회했다. 체감 물가를 낮추고 실질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신선식품 유통구조를 단순화해 거래비용을 낮춰 물가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한 40·50대 중년층의 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해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학 전공구조를 신산업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대학 전공을 이공계 위주로 재편해 보다 적은 돈으로 청년층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같이 사회안전망 확충과 더불어 규제, 노동, 교육개혁을 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 같은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도쿄 = 정욱 특파원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이승윤 기자 / 나현준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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