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의 미래 쥔 러시아, IS 격퇴 이후 중동의 '키플레이어'로

김보미 기자 입력 2017. 10. 23. 15:14 수정 2017. 10. 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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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슬람국가(IS)의 상징적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를 함락시킨 시리아민주군(SDF) 소속 병사가 지난 20일 락까 시내 한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락까|AFP연합뉴스

러시아는 지난 2015년 9월 대테러전을 선언하며 이슬람국가(IS)의 발원지인 시리아에 공습을 단행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이번 개입으로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 17일 락까가 함락되고 3년에 걸친 IS 격퇴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미국의 예상은 빗나갔다. 시리아 출구전략을 모색 중인 러시아는 ‘IS 이후’ 시리아의 운명을 결정할 키를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중동 정세를 좌우하는 ‘게임체인저’가 됐다.

■‘시리아 미래’ 논의 제안…러시아의 출구전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소치에서 열린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 회의에 시리아의 모든 구성원들이 모인 민족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푸틴은 “시리아 내 테러리스트들이 곧 (모두) 소탕될 것이라는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며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지만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과정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고 타스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와 반정부군 사이에 협상이 지연되거나 정전협정 지역이 분단을 초래할 위험은 남아있지만 대테러전 이후 시리아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언급한 것이다. 지난 16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시리아 문제에 대해 “(러시아의) 작전이 마무리되고 있다. 이후 전망에 대해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병력은 철수하지 않는,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런 움직임을 두고 러시아 정부가 “시리아 개입이라는 ‘도박’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라며 향후 러시아의 역할에 주목했다. 특히 중동 국가들은 시리아 내전 이후 급속하게 커진 이란의 영향력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거취 뿐 아니라 이란의 역할을 조율할 유일한 위치에 있다.

■이스라엘·사우디에 러시아는 이란 막을 방패막

이스라엘을 찾은 쇼이구 장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만나서 논의한 핵심 의제는 이란이었다. 네타냐후는 회담 직후 트위터에 “이란은 시리아에서 군사적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이스라엘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이란은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고 썼다. 알모니터는 “러시아는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에서 특정 작전을 실행하는 이상의 군사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고, 러시아가 무기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우방이자 이란에 가장 적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시리아 문제에선 발을 뺀 미국보다 러시아와 접촉 중이다. 지난 4일부터 사흘간 모스크바를 방문한 살만 사우디 국왕은 이란이 시리아에서 영구적인 역할을 갖지 못하도록 주문했을 것이라고 터키 TRT방송이 보도했다.

러시아를 방문한 사우디 살만 국왕이 지난 5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회담하고 있다. 크렘린

40년 넘게 시리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단행한 데는 아사드 정권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이란의 설득이 결정적이었다. 시리아 개입은 냉전 이후 러시아가 외국에서 벌인 첫 군사작전이었다.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그동안 영향력이 거의 없던 중동에서 유연성과 개방성을 내세운 다자외교를 시작했다. 아사드 정권과 이란뿐 아니라 시리아 반군,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 카타르,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와 쿠르드, 리비아까지 사실상 시리아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했다. 이렇게 쌓은 강력한 중개력으로 푸틴은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이란·터키·시리아 정부가 함께 남서부 4곳에 정전 지역을 설정하는 합의도 이끌어냈다.

워싱턴 극동문제연구소 안나 보르쉬쳅스카야 연구원은 포브스에 기고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설득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 것처럼 사우디도 입장을 바꿀지 모른다”며 “이스라엘과 요르단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제 러시아와 안보를 논의해야 한다. 푸틴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서방과 협력할 수 있게 됐다”고 봤다. 특히 트럼프가 이란 핵합의를 불인증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이란은 중동 문제를 놓고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러시아, 실리 챙기기 넘어 중동 중재자 맡을까

국제사회의 퇴진 압박을 받던 아사드 정권이 IS 격퇴라는 명분을 얻어 자리를 보전하게 된 데는 러시아의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2년간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영토 대부분을 수복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격전지 동부 데이르에조르에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서부에 있는 자국 군사기지의 주둔기간을 올 1월 25년 더 늘려 최소 49년 주둔할 권리를 보장 받았다. 또 군사개입 이후 시리아를 러시아 무기의 시험장으로 활용해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에 수출을 늘렸다. 앞으로 시리아 주요 도시가 안정을 찾으면 러시아의 기업들은 재건사업에도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력과 경제적 여력을 감안하면 러시아가 종전 미국이 중동에서 해 온 역할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알자지라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존재감과 영향력을 보장받게 됐지만 시리아가 “장기간 갈등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가 진행한 최근 설문에서 러시아 시민의 32%가 “시리아가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키플레이어 행보에 나선다. 푸틴은 오는 11월1일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3자 회담을 갖고 시리아 문제를 논의한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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