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공론화위 '국민과의 협치' 신선한 실험.. "책임 떠넘기기" 비판도

김판 신재희 최승욱 기자 2017. 10.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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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공론조사가 남긴 명암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0일 5, 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하고 해체됐다. 하지만 공론조사라는 방식이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는 적지 않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번 공론조사가 ‘국민과의 협치’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와 국회 등 정책 책임자들의 책임 방기와 대의민주주의 제도 훼손이라는 이유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이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문재인정부가 핵심 대선공약이었던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중단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은 점은 높이 평가됐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2일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일반시민과 전문가, 정부가 함께 논의하는 새로운 협치 모델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실험적 의미가 있다”며 “과거에 없었던 공론조사 결과를 정치권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감안하면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보수정권에서는 관심이 없던 공론조사를 문재인정부가 집권하자마자 수행했고, 의견 수렴도 잘됐다”며 “상당한 비용과 전문성이 요구돼 전임 정부에서는 엄두도 못 냈던 것을 성공했다”고 말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공론화위가 정부와 전문가, 시민 의견의 최대공약수였다는 점에서 ‘차선책’ 중에서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다.

특히 국가적 정책 결정에 시민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일부 보완했다는 점은 성과로 평가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공론조사를 통해 찬반 의견과 해외 사례 등 다양한 논리와 증거를 국민들이 접하게 됐다”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가미돼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태 교수도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국민 참여를 높이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공론조사 방식을 통한 정책 결정 실험은 일단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다양한 논란거리도 남겼다. 우선 정부와 국회가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민참여단의 대표성과 짧은 숙의기간 등이 앞으로 보완돼야 할 과제라는 지적도 있다. 공론화위의 결정을 100%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공론조사 방식이 무분별하게 확대 적용되면 정치권의 책임 방기 현상이 고착화될 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의민주주의제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권리를 이양해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인데, 우리는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에게 권리를 양도한다고 결정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것은 그들이 임기 내에 책임 있게 일을 하라는 것”이라며 “이를 시민참여단에게 미룬 것은 대의민주주의제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서경교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추출된 471명의 시민참여단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책임정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무엇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관료를 뽑느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참여단의 대표성 문제와 3개월이라는 조사기간의 한계,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 여부가 공론조사의 의제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서 교수는 “국민 전체가 논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대표를 뽑아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인데,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과연 국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번 조사가 숙의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탈핵이라는 큰 이슈를 놓고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신고리 원전 공사 진행 여부를 의제로 선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는 ‘작은 게임’에서 이길 것을 기대한 것 같은데 의제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공론조사 결과를 정부가 수용해야 하는지, 정부와 여론의 움직임과 공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조화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정치권이 공론조사 결과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도 숙제다. 박상병 교수는 “공론화위 결정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이 아니다. 공론조사 결론을 정부가 최대한 반영하되, 내용을 국회에 설명하고, 정치권 의견을 모아 결론을 내리는 것이 여론을 건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윤태 교수는 “공론화위 결정과 국민여론, 선출된 정치 지도자의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상호 견제 속에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글=김판 신재희 최승욱 기자 pa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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