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북풍몰이'로 장기집권·개헌 길 텄다

박석원 2017. 10. 23.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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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총선 자민·공명 압승

‘사학 스캔들’로 정권 붕괴 직전서

중의원 기습 해산 승부수 성공

북핵ㆍ미사일 위기 명분으로

“국난 돌파 위해 강한 외교” 주장

아베 “자민당이 개헌안 마련할 것”

올 여름 모리토모(森友) 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과 가케(加計) 학원 수의학부 신설 특혜 의혹 등 ‘사학스캔들’로 정권붕괴 직전까지 갔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극적으로 부활했다. 중의원 기습해산이란 ‘꼼수’를 극적인 선거압승으로 이끌어내면서 국민신임을 다시 받는 ‘묘수’로 성공시킨 것이다. 5년간의 장기집권을 재신임 받고 일본 우익의 숙원인 헌법개정의 동력을 다시 살려냈다. 아베 총리는 중의원 총선이 치러진 22일 "우리 당이 개헌안을 마련한 뒤 가능한 여러분과 논의해 나갈 것"이라며 "개헌론자를 다수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23일 오전 1시 25분 기준 아사히신문의 중간 개표 결과 자민ㆍ공명 연립여당은 311석을 차지하며 개헌발의에 필요한 3분의2 의석까지 초과 달성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집권 이래 국정선거(중ㆍ참의원) 5연승을 달성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는 희망의당을 이끈 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 도쿄도(東京都)지사의 전략적 실패였다. 제1야당 민진당을 통째로 흡수하며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다 총리후보로 직접 중의원선거에 출마하지 않음으로써 돌풍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야당분열만 초래했다는 점에서, 전통적 야권이 희망의당을 ‘자민당 보완세력(2중대)’이라고 공격한 게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아베의 승리는 무엇보다 북한발 핵ㆍ미사일 위기를 명분으로 한 ‘국난돌파 해산’ 주장이 먹혀든 결과이기도 하다. 이른바 ‘북풍(北風)몰이’ 전략이다. “외교안보는 아베밖에 없다”는 논리가 보수층에 주효한데다 자민당은 유세장마다 “긴박한 북한의 도발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수시로 전화통화가 가능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일본에 절실한 것은 강한 외교”라는 선거프레임으로, 미래 한반도 유사시 자민당 외에 어느 경험없는 정권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논리를 폈다.

아베 총리는 전날 저녁 “아베, 그만둬”라는 야유가 쏟아진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마지막 유세에서도 “북한 미사일이 최근 일본상공을 두 번이나 통과했다. 북한 위협에 절대 굴복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우익매체 역시 “중국 시진핑 주석이 창건 100주년인 2049년까지 초강대국 중국건설을 제시한 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며 ‘미중 역전’이 현실화하면 일본이 어떤 위치에 처하겠냐는 화두로 보수층 결집을 거든게 사실이다.

중의원 기습해산은 사학스캔들 국회 재심의를 피한 꼼수였지만 아베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재확인시킨 결과가 됐다. 야당분열의 어부지리를 확실히 챙겼기 때문이다. 무소속을 포함한 ‘여당후보 1명 대 야당난립’구도가 전체 289개(지역구) 선거구중 80%에 달한 226곳이나 됐다. 애초에 ‘아베 정권과 1대1 구도’가 불가능해 대세가 갈린 셈이다. 여기에다 고이케 지사는 민진당 진보인사 합류 ‘배제’발언이 여론에 ‘비호감’으로 찍히면서 결정적으로 몰락했다.

아베 총리는 향후 2주후 트럼프 대통령 방일 일정을 화려하게 치른 뒤 연말ㆍ연초 본격적인 개헌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커졌다. 우익야당인 일본유신회의 협력은 물론, 희망의당까지 개헌에 찬성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올 5월 2020년 신헌법 시행이란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지만 지지율 추락으로 동력이 사라진바 있다. 이제 2019년 여름 참의원선거 이전까지 시간을 다시 확보했으니 최종 국민투표 돌파까지 개헌엔진을 정교하게 돌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이케 지사 측도 아베 총리의 자위대 명기 주장과는 차별화된 개헌을 주장하고 있지만 같은 우익인사란 점에서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2000년 11월 중의원 헌법조사회 당시 “현행 헌법을 정지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데 기본적으로 찬성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입헌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공산당과의 연대에 반대해온 당내 보수진영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진보 정체성을 다시 세우게 됐다. 리버럴계는 불과 20일만에 선거를 치르며 예상밖으로 선전했다. 민진당 잔류인사와 무소속 등을 영입해 평화헌법 개악 반대 대열을 재정비할 작정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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