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하며 금리인상.. '값싼 돈' 10년 길들여진 경제, 안갯속으로

방현철 기자 2017. 10. 23. 03: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발 新금융긴축, 회복세 약한 한국경제가 견뎌낼까]
경기회복세 뚜렷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성장·물가상승률 낮아
금리인상이 경제에 찬물 될 우려
위험가구 대출금리 더 크게 올라 150만 한계가구 '폭탄' 터질 수도
금리인상은 부동산 겨냥한 측면.. '베이비 스텝'으로 천천히 올릴 듯

미국을 좇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글로벌 금융 긴축(緊縮·유동성 축소) 사슬이 한국 경제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하는 것은 늘 있어온 일이지만, 이번 금리 인상은 과거 금리 인상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짧게는 지난 6년, 길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값싼 돈'에 길들어 있던 경제 주체들은 금리 인상이라는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한국 경제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금리 인상 약한 고리, '기업'에서 '가계'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기업보다 가계가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가계는 저축하고 기업은 돈을 빌린다'는 공식이 깨지면서 기업 부채보다 가계 부채가 훨씬 빨리 늘었고, 가계 부채의 질(質)도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많은 가계가 전례 없는 이자의 압박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2007년 1분기 612조원이던 가계 부채는 올해 2분기 현재 1388조원으로 10년간 두 배 넘게 늘었다. 금리가 오르면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한계 가구도 150만가구를 넘어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이 2조3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금리 인상기에는 신용도가 낮거나 부채 규모가 큰 위험 가구의 대출금리가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다. 한은은 대출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경우 고위험 가구의 금융부채가 4조7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약한 성장세… 금리 충격 견뎌낼까

과거 금리 인상은 예외 없이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거나 물가가 급등하는 시기에 단행됐다. 가령 한은이 마지막으로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2011년으로, 2010년 경제성장률은 6.5%, 2011년 물가상승률은 4%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 회복세가 미약하고 물가상승률은 낮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망하는 성장률은 올해 3%, 내년 2.9%로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2%, 내년 1.8%로, 한국은행이 정한 물가안정목표제의 하한선(2%)을 밑돈다. 경제 상황만 보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필요성이 별로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성급한 금리 인상이 미약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 국내총생산(GDP)을 0.05%포인트 끌어내린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리 인상 처방은 경기가 과열되거나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반등하다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쓰면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타깃은 집값 잡기?

한은이 연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정부가 추경을 하는 해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다. 정부와 한은의 경기 인식과 처방이 정반대로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금리 인상의 타깃이 한은 본연의 소임인 '물가 안정'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나 '가계 부채'에 맞춰져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이 약한 상황에서 굳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것은 자산(부동산) 가격 상승 억제 필요성과 향후 위기에 대응할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우 통화정책 수단을 가계 부채 해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김현욱 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어떻게 해서든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정부의 집착에 한국은행이 같이 춤을 추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건과 목표가 과거와 크게 다른 탓에 금리 인상의 양상도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과거 금리 인상기에 한은은 1년에 두세 번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렸지만, 이번에는 매우 느리고 신중한 '베이비 스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느린 금리 인상 행보로는 집값 잡기에 별 효과가 없을 수 있어, 한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