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혼자이고 싶을 때.. 이 남자, 미술관으로 간다

정유진 기자 2017. 10.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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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가는 40~50대 남성들, 회화·건축 등 다방면 전시 즐겨
구매·경매까지.. 새로운 고객층

지난 14일 '테이트명작전―누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존 코플란스의 사진 '자화상'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던 조홍래(49)씨는 "누드전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여인들 실컷 보리란 '흑심'으로 왔는데 정작 나를 감동시킨 건 이 늙고 뒤룩뒤룩 살찐 남자의 누드였다"고 말했다. 몸의 털, 주름 하나까지 정밀히 드러낸 흑백사진 12장. 신문에 난 전시 기사를 오려두었다가 주말에 꼭 가본다는 조씨는 "삶의 궤적이 담긴 한 남자의 벌거벗은 몸이 어떤 문학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며 웃었다.

'한사의 서재'로 유명한 블로거 김동식(62)씨는 전남 해남에 사는 의사다. 미술 애호가인 그는 좋은 전시가 있으면 병원 문도 닫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온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도 매년 거르지 않고 찾는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은 뒤 블로그에 감상평을 올린다. "그림은 화가의 마음과 눈을 통해보는 또 다른 세상이자, 제 삶에 행복을 주는 원천이니까요."

◇미술관 行 '아재', 20대 여성보다 많다

미술관을 찾는 중년 남성이 크게 늘고 있다. 아내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오는 남자들이 아니다. 관람은 물론 미술 블로그를 운영하는가 하면 아트페어와 옥션을 찾아다니며 예술 취향을 적극 발산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테이트명작전’에서 존 코플란스의 사진 ‘자화상’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4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이 미술계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올랐다. /박상훈 기자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성인 남녀 1536명에게 '지난 1년간 미술관을 다녀간 적이 있느냐'를 묻는 조사에서 40대 남성의 31.4%, 50대 남성의 33.7%가 '그렇다'고 답했다. 20대 여성(21.0%)보다 월등히 높고 30대 여성(32.6%)과는 비슷하거나 높았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테이트명작전―누드'의 경우 티켓 구매자 10명 중 3명(33.1%)이 남성이었다. 사설 미술관도 남성 관람객 비율이 꾸준히 증가한다. 아라리오 인 스페이스 미술관의 경우 남자 관람객 비율이 29%, 디뮤지엄미술관은 21.4%였다.

아트페어에선 더 적극적이다. 2017아시아프의 경우 작품을 구입한 사람 10명 중 4명(43%)이 남성으로 40~50대가 대부분이었다. 지난달 열린 KIAF도 마찬가지.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30대에 미술관을 다니며 안목을 기른 뒤 40대 후반부터 그림을 구입하는 남성 컬렉터들이 확연히 늘었다"고 했다. 미술품 경매장에서도 쉽게 중년 남성들을 만난다. 서울옥션 최윤석 상무는 "미술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50~60대 남성들로, 퇴직을 앞두고 재테크를 하는 차원에서 그림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상 벗어난 "나만의 조용한 놀이터"

미술계에서는 "남성은 미술관의 새로운 고객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정원 대림미술관 홍보마케팅 팀장은 "화장품에 남성라인이 따로 있듯, 문화생활에서도 본인만의 색을 가지려는 남성들은 잠재성 큰 고객층"이라고 했다. 정나영 소마미술관 전시학예부장은 "취미 하나에 사로잡히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남성의 특성상, 전문가 이상으로 지식을 쌓고 탐문하는 애호가가 많아졌다"고 했다.

왁자지껄한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려는 남성들의 '조용한 놀이터'로도 미술관은 사랑받는다. 회사원 박석훈(45)씨는 "아무리 앉아 있어도 말 거는 사람 없으니 좋고, 그림을 바라보며 명상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뉴욕에서 30대를 보낸 회사원 최병근(41)씨는 "미국에선 혼자 전시를 보러 가고 강의를 듣는 남자들이 많아 지금도 혼자 미술관 다니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회화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등 여러 방면의 전시를 즐겨요. 힐링은 물론, 삶의 통찰을 얻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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