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어학사전, 성차별·여혐 예문 '범람'

심윤지 기자 2017. 10. 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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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시집 가면 조신…남자가 더 논리적…스토킹은 애정공세?
ㆍ사전 출판업체 내용 옮겨 써…네이버 측 “문제 표현들 수정”

한 달에 약 3000만명이 이용하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어학사전에 성차별·여성혐오적인 내용이 실려 누리꾼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일부 예문에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 등이 담긴 것이다. 네이버 측은 이용자들의 신고가 들어오면 문제의 예문들이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22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네이버 어학사전의 일부 예문이 여성을 남성에 비해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유순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사전에서 ‘조신하다’를 검색하면 ‘시집을 가면 조신해야 한다’는 예문이, ‘백치미’를 검색하면 ‘백치미가 있는 여배우’라는 예문이 나온다.

이 밖에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영어사전), “남자는 늠름한 남자가 제일이고 여자는 예쁘고 상냥한 여자가 제일이다”(일본어사전) 등의 예문도 찾아볼 수 있다.

외국어 대화 예시를 학습용으로 제공하는 ‘오늘의 회화’에는 젠더폭력에 무감각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게재되기도 했다. 지난 1월3일 네이버 측이 사설 어학원으로부터 공급받아 게재한 중국어회화 예문을 보면, A가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묻자 B는 “엉망진창이야. 내 전 남자친구가 줄곧 전화해서 날 괴롭혀”라고 답한다. 이에 A는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옛 애인에게 스토킹을 당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나도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한 누리꾼은 “아침마다 ‘오늘의 회화’를 보고 있는데 이 같은 내용을 접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심화시키는 예문들도 보인다. 영어사전에서 ‘기계(machine)’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상위에 노출되는 예문 300개 중 56개의 주어가 남자(the man)인 문장이다. “남자들이 기계를 고치고 있다” “남자들이 자재를 기계에 넣고 있다” 등이다. 반면 여자(the woman)를 주어로 하는 문장은 8건에 불과했고 내용도 “한 여성이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다” “여자가 재봉틀을 작동하고 있다” 등이다.

지난 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네이버 일본어사전 사용자가 ‘기어오르다’라는 뜻의 일본어를 검색한 결과를 갈무리한 사진이 올라왔다. 해당 단어의 이해를 돕는 예문으로 “여자는 비위를 맞추어 주면 기어오른다” “여자는 추어올리면 기어오른다” 등이 나왔다. 이 내용은 트위터에서 2만여건이 리트윗되는 등 논란이 됐다. 해당 예문들은 현재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삭제된 상태다.

네이버는 이용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예문들은 검색 결과에서 제외되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 측은 “어학사전 서비스가 사전을 제작·출판하는 업체들이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내용을 통째로 이관해 온 것이기 때문에 당시 예문들이 그대로 게재되고 있는 것”이라며 “사용자들이 꾸준히 성차별적 예문이 많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작업을 진행해 문제의 예문을 검색 결과에서 제외하거나 출판사 측에 알려 수정을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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