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조가 확인한 피해 간호사 5000명 넘어"

안광호 기자 입력 2017.10.22. 21:46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경향신문] ㆍ‘서울대병원 간호사 첫 월급 31만원’ 폭로한 최원영씨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씨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씨는 “병원의 ‘월급 갑질’도 문제지만, 줄 세우기와 부당한 인사발령 등 더 심각한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아무래도 수간호사가 되는 건 포기해야겠죠.(웃음)”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씨(31)가 6년 전 손에 쥔 ‘첫 월급’은 31만원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일하고 받은 월급치곤 말도 안되게 적었지만, ‘수습교육기간엔 다들 그렇게 받아왔다’는 선배들 얘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때만 해도, 모든 직장인들이 첫달 월급은 그 정도 받는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한 간호사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뭔가 잘못된 걸 알게 됐다.

“작년 말부터 우리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된 경력직 간호사 한 분이 노조 대의원인 저를 찾아와 월급명세서를 내미는 거예요. ‘첫 월급이 너무 적게 나온 것 아니냐’는 거죠. 그분과 함께 노조를 찾아가 법률자문을 구한 결과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19일 기자와 만난 최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자신과 동료 간호사들의 월급 내역을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2011년 3월 ‘31만2000원’이라고 쓰인 자신의 첫 월급 내역 밑에 한 선배 간호사가 1995년 받은 첫 월급 ‘16만9400원’이 찍힌 명세서가 눈에 들어왔다.

최씨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간호사들도, 노조도 무지했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출퇴근 전후로 3~4시간씩 오버타임(초과근로)을 해도 수당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 바쁘고, 힘들고, 윗분들 눈치보고 하다 보니, 노조 가입률도 저조하고, 기본적인 노동의 대가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거예요.”

최씨와 노조는 병원 측에 미지급분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이후 몇 번의 노사 협의 끝에 병원 측으로부터 최근 최저임금 수준에 맞춘 미지급분을 받았다. 하지만 임금에 대한 채권시효(3년)에 해당하는 간호사들만 소급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최씨는 최근 이러한 과정을 고발한 “난 시급 1490원짜리 노동자였다”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글의 반향은 대단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다. “윗분들한테 제대로 미운털 박힌 거죠. 어떤 사명감이나 영웅심리 때문만은 아니고요. 이런 현실이 너무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에요.”

병원 측은 이후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고 했지만, 병원 측의 이러한 행태는 무려 20년 넘게 이어져 왔다. 노조는 확인된 1995년 미지급분부터 최근까지 더하면, 피해를 입은 병원 간호사가 5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씨는 “병원 측이 ‘수습교육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언제부터 이런 ‘갑질’을 해왔는지 확인해서, 미지급분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도록 노조 차원에서 싸워 나갈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월급 문제도 심각하지만, 병원의 더 심각한 ‘갑질’은 따로 있다고 했다. 학연에 따른 병원 내 줄세우기와 부당한 인사발령(배치전환)이다.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최씨는 서울대병원 내에서 특별대우를 받았던 사람들에 속한다.

“저도 발령 직후부터 내과 중환자실에 1년 정도 있는데, 어느 날 혈액투석실로 옮기라는 거예요. 제 연차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조금 의아했어요. 혈액투석실은 밤 근무나 오버타임이 많지 않아 모두 선호하는 곳이죠. 중환자실이나 병동에서 고생한 다음 7~8년차나 돼야 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지난 6월 노조 전임을 맡기 전까지 무려 5년 넘는 동안 이곳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일을 했는데, 그건 제가 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최씨는 “수간호사와 바로 밑의 책임간호사 등 관리직 자리는 대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한다”고 말했다. 수간호사와 책임간호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부서가 정해지다 보니, 간호사들은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간호사들의 노조 가입률이 저조한 것도 이런 눈치보기 때문이에요. 이번 ‘첫 월급’ 문제에 대한 우리의 무지도 어쩌면 이런 점에서 기인했다고 봐야죠.”

병원 사람들만 쓰는 말인 이른바 ‘점오프’도 최씨가 꼽은 병원의 대표 갑질이다. ‘점오프’는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당일 휴무가 결정되는 걸 뜻한다.

“병동에 환자가 적은 날이면, 수간호사가 당일 전화나 문자로 해당 간호사에게 ‘오늘 쉬어라’ 하는 식이에요. 한 시간 넘게 출근했더니 다시 집으로 가라는 거죠. 그날은 물론이고 다음 하루이틀 일정이 모두 꼬이는 거죠. 문제는 이날 쉬면 다음에 쉴 수 있는 날 중 하루를 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씨는 1년 전에도 안팎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는 서울대병원의 직원 성과급제 도입을 놓고 병원과 노조가 갈등을 벌이던 때였다. 최씨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에 나이팅게일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구절을 인용해 성과급제 도입을 시도한 병원을 비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간호사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건강권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예요. 무료 도서관처럼, 공원처럼 필요할 때 언제나 찾을 수 있고, 가난하다고 해서 차별받으면 안되죠. 그리고 의료인들도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양심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고요. 그래서 1년 전에도 성과급제를 반대한 겁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