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금감원] 특혜 채용 돕고 인사 혜택.. 부당지시 거절 땐 '혹독한 대가'

류순열 2017. 10. 2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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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깨진 유리창, 왜 방치됐나 / 수년 전부터 잇단 채용 비리 / 윗선 한마디에 규정 바꾸거나..정원 늘리고 성적 조작해 뽑아 / 비밀 공유한 채 공동운명체로 / 공정성 무너진 '워치독' / 민원지시 'NO' 하면 승진 물먹어 / 국장급 인사, 지방사무소 전전 / "제도 개선 없인 또 반복될 것"
금융감독원이 위기다. 채용비리 등 각종 일탈로 신뢰가 바닥이다. 조직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금감원의 위기는 금감원만의 위기가 아니다. 금감원은 금융산업의 ‘워치독’이다. 무너진 기강은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을 준다. 금감원 기강이 보다 엄정해야 하는 이유다. 위기는 곧 기회다. 철저한 반성과 쇄신의 기회로 삼는다면 새 출발의 계기가 될 것이다. 금감원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짚어본다.

금감원 채용비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내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인 적폐”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경제관료 출신 원장과 수석부원장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발탁, 승진시키면서 이들의 지시라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원장과 수석부원장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채용비리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사례들이 적지 않다. 2004년 금감원은 신입직원 채용에서 ‘외국대학 출신 전형’을 처음 도입했다. 3명이 최종 합격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간부 K씨의 딸이었다. “잘 챙겨보라”는 원장(최수현)의 말 한마디에 규정을 바꾸고 성적을 조작해 특정인(임영호 전 의원의 아들)을 뽑아준 2014년 ‘금수저 특혜채용’이나 금감원 부원장을 지낸 인사의 청탁에 고무줄처럼 정원을 늘려 합격선 밖의 지원자를 합격시킨 2016년 채용비리는 십수년 동안 이어진 채용비리의 한 조각일지 모른다.


금감원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금감원 사람들은 말한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감독기구답게 직원 채용에서부터 공정성을 지키려는 원칙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이헌재 초대 금감위원장 겸 감독원장(1998년 3월∼2000년 1월)이나 윤증현 전 위원장(2004년 8월∼2007년 8월)의 처신이 지금껏 회자한다. 신입직원 채용과 관련 청탁전화가 빗발치자 이헌재 초대 원장은 “전원 시험성적으로 뽑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면접 과정에 외압이 행사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윤 전 위원장은 재임 당시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왔지만 일절 인사라인에 얘기하지 않고 채용 절차가 마무리된 뒤 결과를 통보하며 “아쉽게 이번엔 안됐네요”라며 위로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공유지의 비극’이 시작됐다. 주인 없는 공유지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와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의 실습장으로 변질되면서 풀 한 포기 남지 않는 곳으로 변해갔다. 대리인 문제란 주주에게 위임받은 경영인이 임기 중의 단기성과에 집착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 자원을 오남용하는 문제를 말한다. 지인의 청탁을 받고 부당한 지시를 내린 수뇌나 그 지시를 거부하기는커녕 규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이행하는 실무 라인 모두 ‘대리인 문제’의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비밀을 공유한 공동운명체가 되고 ‘밀명 수행’의 대가로 ‘승진 약속’ 등의 인사 혜택을 챙긴다. 채용비리 과정에서 인사라인 중 몇몇은 비밀을 공유하고 이익을 나누는 공동운명체가 되곤 한다. 인사담당 부원장보 시절 ‘금수저 특혜채용’을 주도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김수일 전 부원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총무국장, 부원장보, 부원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한 관계자는 “이런 식의 혜택을 노리고 인사팀에 가기 위해 줄을 대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한번 깨진 유리창이 즉각 수리되지 않으면서 나머지 유리창도 모두 깨져버린 상황.” 금감원 관계자는 현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불량배 놀이터가 되듯 금감원도 어느새 원칙이 무너지고 반칙과 특혜를 일삼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반칙과 특혜에 편승하는 것은 아니다. 수뇌의 부당한 지시에 ‘노’를 외친 사례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최수현 원장(2013년 3월∼2014년 11월) 시절 모 금융사 검사와 관련해 “적당히 봐주라”는 민원성 지시를 원칙과 규정에 따라 거부한 인사는 승진 인사에서 연거푸 물을 먹었다. 한 국장급 인사도 비슷한 케이스로 좌천돼 수년간 지방 사무소를 전전해야 했다.

금감원에 곧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단행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필요에 따라 채용기준을 맘대로 바꾸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제도상 허점을 그대로 놔둔 채 사람만 바꿔봤자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의 절절한 호소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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