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연명의료 대란은 막아야 하는데..

입력 2017. 10. 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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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법)이 호스피스 영역부터 시행되고, 내년 2월4일부터 연명의료 영역에서도 시행된다.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 자녀들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우리나라에 ‘존엄사’ 또는 ‘웰다잉’으로 불리는 연명치료 중단 허용여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김할머니 사건’이 있은 지 10년 만이다. 연명의료 유보 또는 중단 결정이란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과 같은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소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연명의료법은 임종기 환자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정신은 법률 시행 과정에서도 중요시 돼야 한다.

법률 시행을 앞두고 관련 전문학회에서는 현행 연명의료법 내용대로 법률이 시행되면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연명의료 관련 법률이 없었기 때문에 일명, ‘보라매사건’ 여파로 살인방조죄 처벌에 대한 일부 위험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의사와 환자가족이 의논해 환자의 연명의료 관련 결정을 해 크게 문제가 없었다.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임종기에 있다고 판단되는 환자가 심장이 멎거나 호흡이 곤란하면 의사는 환자가족과 의논한 대로 자연스럽게 사망하도록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거나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았다.

환자가 사전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어떠한 의사표시도 하지 않은 경우 내년 2월4일 시행 예정인 연명의료법에서는 가족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의료진은 가족관계증명서와 가족 전원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임종기 환자에게 심정지, 호흡곤란 등의 응급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정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의료진은 임종기 환자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 이는 연명의료법의 입법취지에도 반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학회의 주장이다. 현행 연명의료법이 시행되면 과거에 그냥 사망했을 임종기 환자들을 이제는 살려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 부족으로 심각한 ‘연명의료 대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단언까지 하고 있다. 사전에 연명의료 결정 관련 의사표시를 하는 방법으로는 일반인이 건강할 때 혼자서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중에 의사와 함께 문서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 이 중에서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만 담당의사에게 작성을 요청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등 의식이 없거나 미약한 경우가 많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불가능한 경우가 상당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의사와 환자가 장래의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말기’ 또는 ‘임종기’에만 작성하도록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연명의료계획서는 환자가 ‘말기’ 또는 ‘임종기’뿐 만 아니라 말기 또는 임종기에 임박하다고 담당의사가 의학적으로 판단했을 때에도 작성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전문학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전문학회의 주장은 합리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환자가족 전원 동의로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환자가족이 맞는지와 환자가족 전원 동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편이고,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갈등은 대부분 환자가족의 경제적인 부담에서 시작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연명의료법남용 방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명의료 영역에서 연명의료법이 시행되려면 아직 3∼4개월의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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