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 커 '짓던건 짓자' 공감..사고 위험에 '원전 축소' 동의

입력 2017. 10. 22. 20:26 수정 2017. 10. 23.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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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공론화 뒷얘기, 시민참여단 6명 인터뷰]

최종 결정에 영향 끼친 점
"중단쪽 전문가 설명 추상적
신재생이 만능이라 이야기해"
"원전 번 돈으로 신재생 개발
재개쪽 전문가 주장에 공감"

'재개·축소' 결정 이유는
"신재생 기술적으로 발전하면
그때 원전 대체해도 늦지않아"
"원전=안전 100% 확신 없지만
투자·매몰 비용 무시 못하니.."

'숙의민주주의' 겪어보니
"국회의원 통한 대의제보다
시민의견 직접 반영 긍정적"
"정책 수혜자·피해자는 시민
앞으로 공론화 활성화돼야"

[한겨레]

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단상 앞)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론화 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를 계속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이 막을 내렸다. 공사를 재개하자는 의견(59.5%)이 중단 의견(40.5%)보다 많았지만, 시민대표참여단 471명 가운데 과반수(53.2%)는 핵발전소를 현재 수준보다 축소해나가야 한다고 답했다. 시민참여단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한겨레>는 22일 시민참여단 6명을 인터뷰해 공론화 뒷얘기를 들어봤다. 전체 숙의과정에서 2박3일 합숙토론, 그중에서도 전문가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마음을 정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중단 쪽 전문가의 설명은 추상적이고, 재개 쪽은 구체적이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모두들 공론화가 시민이 참여하는 의사결정으로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시민참여단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최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점은 뭔가?

이연상 강연에선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였지만, 분임토의에서 전문가의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고 질문을 만들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했다. 특히 질의응답 때는 우리 조에서 제기하지 못한 질문을 다른 조에서 묻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원전을 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로 조급하게 대체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전문가의 주장에 공감했다. 신재생에너지를 키워서 단가가 싸지고 기술적으로도 발전하면 그때 원전을 대체해도 늦지 않는다.

최지혜 자료집에서 우리나라 원전을 계획대로 다 지으면 모두 29기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은 곧 포화되고 영구처분시설은 아예 없다. 원전이 처음 들어선 뒤 수십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전을 더 지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원영 1차 조사 전화가 왔을 때만 해도 정확한 지식도 없고, 어떤 게 더 나은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자료집, 온라인 동영상 시청 등 숙의과정이 시작되니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합숙토론에서 첫번째 전문가 발표를 듣고 나니 입장이 정해졌다. ‘원전은 기존에 있는 걸 줄이는 게 어려우니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낫다’는 전문가 발언에 설득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재개 입장이 우세했던 것은 중단 쪽에서 피부에 와닿지 않는 데이터를 계속 보여줬고, 뚜렷한 대안 없이 신재생에너지가 만능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해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 거 같다.

김영희(가명) 재개 쪽 전문가가 신고리 5·6호기를 안 지으면 기술이 쇠퇴하고 수출길이 막힌다고 하는데, 과장처럼 느껴졌다. 싼 원전을 두고 왜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하려느냐고 하는데, 무농약 유기농 음식이 비싼 줄 알면서도 사 먹는다. 먹거리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를 자동차 사고에 비유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송희연 합숙토론에서 재개 쪽 전문가의 발표를 들으면서 마음이 기울었다. ‘원전으로 번 돈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지원하겠다’, ‘신재생에너지가 제대로 준비된 뒤에 탈원전을 해야 한다’는 재개 쪽 주장에 공감했다. 중단 쪽에서는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면서 과도기적으로 엘엔지를 쓰자고 하는데, 이미 가스값이 바닥을 친 상태라고 생각한다. 전기요금이 뛸까 걱정됐다.

최찬웅 합숙토론, 특히 질의응답에서 전문가 설명을 들을 때 신고리 5·6호기가 없어도 예비 전력량이 충분해 전력난이 오거나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는 점이 설득력이 있었다.

-공사 재개 결정이 났지만, 시민참여단 다수가 향후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유가 뭘까?

최지혜 위험한데, 싸다고 계속 쓸 순 없다. 우리 세대는 몰라도 후손에게는 계속 짐이 된다. 발표를 들으니 선진국은 친환경에너지 발전 속도가 빠르더라. 우리도 개발하면 원전을 대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연상 장기적으로 탈원전이 맞다. 신고리 5·6호기를 짓더라도 기존 원전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해서 위험도를 측정하고, 노후 원전을 순차적으로 줄이는 게 맞다.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면서까지 가동하면 안전 측면에서 국민이 불안감을 느낀다. 다른 시민참여단 중에는 탈원전에 찬성하면서도, ‘신고리 5·6호기를 중단하더라도 탈원전 시기는 겨우 3년 앞당겨진다. 굳이 매몰비용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조원영 ‘신고리 5·6호기는 어차피 지은 건데 뭐 하러 중단하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0%까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왜 지금 당장 그만두나’ 등의 생각 때문에 재개를 선택한 사람이 많은 거 같다. 하지만 모두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통해 사고가 한번 나면 무섭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때문에 원전 축소에 동의하는 것 같다.

김영희 원전이 100%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공정률이 30%나 되는 등 투자 비용이 많으니 짓던 원전은 짓고 대신 노후 원전을 영구 중단하고, 아직 설계 단계에 있는 원전은 백지화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송희연 가장 두려운 건 핵폐기물이다. 폐기물을 처리할 부지 확보도 안 됐고, 폐기물 처리에는 돈도 많이 들어간다. 이런 것 때문에 원전 축소 의견이 많은 것 아니겠나.

최찬웅 원전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건 누구나 알지만 대안이 없어서 쓰는 ‘필요악’처럼 생각한 거다. 원전 사고는 치유가 불가능한 사고라서 다들 탈원전 기조에 동의한 거 같다.

-결론이 ‘재개’로 났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최지혜 내 결정과 달리 재개 결정이 났더라도 존중한다. 다만 시민참여단 바람대로 앞으로 원전을 축소해나갔으면 한다.

조원영 시원섭섭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존중한다. 숙의과정을 거쳐 우리가 정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도 강요할 수 없다.

김영희 좌절스럽고, 우울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수용할 수 있다. 숙의과정에서 배운 가장 큰 부분이 깊게 고민, 생각하고 나와 다른 주장도 경청하라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송희연 원하던 결과가 나왔지만 썩 기분이 좋진 않다. 전기가 부족하면 지금처럼 잘 살기 어렵고, 공장이 안 돌아가면 수출도 못 한다는 생각에 당분간 원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원전은 완벽하지 않다.

최찬웅 균형적인 결과가 나와서 안도감이 들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한 숙의 민주주의 실험이 성공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대의제 아래에서 국회에 결정을 맡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최지혜 국회에서 자꾸 공론화를 하면 안 되는 주제를 가지고 공론화를 했다고 트집을 잡는데, 의원들도 시민참여단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다.

이연상 이번 공론화도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 아닌가. 국회의원을 통한 대의제보다 시민의 의견이 직접 반영될 수 있었다고 본다. 국방 등 국가 기밀과 연결된 부분은 빼더라도 교육, 복지 분야 등은 공론화를 통해 정부 정책 참고사항으로 권고해도 좋을 것 같다.

조원영 국회에 결정을 맡겼다면 지금도 결론이 안 났을 거 같다. 중단이든, 재개든 ‘이쪽의 영향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하며 공정성을 의심했을 것 같다.

김영희 정쟁만 일어나지 않았을까. 국회의원은 정책 결정이 직업이니 시민참여단보다 더 길게 일주일, 열흘 동안 합숙토론 같은 프로그램으로 숙의, 경청 과정을 거쳐 정책을 합의하는 건 어떨까 싶다.

송희연 국회에 맡겼다면 3개월 만에 답이 안 나왔을 거 같다. 항상 당과 당끼리 싸우지 않나.

최찬웅 보통 결정은 국회의원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하지만 결정으로 인한 수혜자, 피해자도 일반 시민이다. 전문가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결정은 시민이 해야 한다.

-공론화 과정 전반에 대해 아쉬운 점은?

최지혜 시민참여단 표본이 전체 인구에 비례해서 모집을 하니까 원전이 몰려 있는 부산·울산·경남 쪽 지역 주민의 의견 반영이 어려웠던 거 같다.

조원영 시민 간 토론시간을 더 줬으면 했다. 주제에 대한 전문가 설명을 듣고 토의를 통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짧았던 게 아쉽다.

김영희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중간에 두세 번 모이고, 마지막으로 합숙을 하고 이런 식으로 기간이 더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재개 쪽은 생업이 걸린 문제라 절박한데, 중단 쪽은 상대적으로 준비를 덜 한 것 같다. 자신감이 없어 보였던 부분도 답답했다.

송희연 한국 인구가 5000만명인데, 그중 500명만 뽑은 건 너무 적지 않나 싶다.

최찬웅 팩트체크 같은 것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양쪽에서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대립될 때, 이 부분을 정리해줄 역할이 없다 보니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어 시민참여단이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었다. 시간 관계상 질문 횟수도 한정돼 있어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부분도 남아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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